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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휘 방경)의 탄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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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6-09-14 09:08 조회1,40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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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시조이신 충렬공(휘 방경)의 탄생지?

<조선왕조실록>

정조3년 己亥(1779, 건륭44) 8월 7일 戊午

 

수어사 서명응에게 남한산성에 대해 물으시다.


上曰: “十室之邑, 亦有忠信。 至於此州, 通計境內戶口, 則可謂萬戶之邑。 地靈、人傑, 本無古今之殊, 亦豈無人才乎? 以丙子時言之, 徐欣男不過私奴, 而當虜兵圍三匝之日, 單身抽出, 能得傳命於三南諸道;孟元賓, 特一閑散, 而聖祖行幸之時, 請獻其馬, 得以無事入城; 麗朝之金方慶、趙狷, 皆出於此地, 廣州一府, 足可謂人才之府庫。 近亦有異行奇才之名於鄕黨者乎?” 命膺曰: “臣見本州邑誌, 丙子前有魯恊者, 逢一異人於此地, 能逆覩丙子之亂云。 以此觀之, 世所不知之中, 豈無卓異之才乎?”

~생략~

임금이 말하기를, “열 집이 있는 고을[十室之邑]에도 또한 충신(忠信) 한 사람이 있는데, 이 고을로 말하면 경내(境內)의 호구를 통틀어 셈하면 1만 호의 고을[萬戶之邑]이라 할 수 있거니와 지령(地靈)·인걸(人傑)에는 본디 고금의 차이가 없으니, 또한 어찌 인재가 없겠는가?

~중략~

여조(麗朝)의 김방경(金方慶)·조견(趙狷)이 다 이곳에서 났으니, 광주(廣州) 한 부(府)는 인재의 부고(府庫)라 할 수 있을 만하다. 요즈음에도 향당(鄕黨)에서 이행(異行)·기재(奇才)로 이름난 자가 있는가?”...

~이하생략~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놀라운 자료입니다. 서명응은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말했을까요. 그리고 또 다른 자료에도 이런 내용이 있을까요?
우리 모두 여기에 관심 가져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