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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충렬공 김방경(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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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6-09-25 17:50 조회1,3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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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충렬공 김방경(3)

[矛] 창이다(干矛)

[단모(短矛)]: 김방경(金方慶)이 수군을 이끌고 진도(珍島)의 적을 칠적에 적의 병졸들이 배를 가지고 포위하여 김방경의 배로 뛰어 들었다. 김천록(金天祿)이 짧은 창으로 맞아 싸우는 사이 김방경은 포위를 뚫고 나왔다.

<高麗史 卷104 ‘列傳’ 第17 金方慶>

진도(珍島)의 적: 삼별초(三別抄)를 말함.


[金] 오색(五色)의 금으로 황색이 그 으뜸이 된다. 오행(五行)에서 서쪽에 해당하며 토(土)를 생한다.

[안동김씨(安東金氏)]: 고려시대 태사(太師) 김선평(金宣平)과 또 상락공(上洛公)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이다.

김선평(金宣平): 고려 태조때의 공신.

[김방경(金方慶)]: 자는 본연(本然),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상서(尙書)를 지낸 김효인(金孝印)의 아들이다. 음보(蔭補)로 견룡행수(牽龍行首)가 되었다. 당시 최충헌이 4세동안 국정을 잡고 있었는데 명경(名卿), 석사(碩士)라 할지라도 그의 지시를 받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김방경만이 왕실에 마음을 다해 풍모와 절도가 늠름했다. 진도(珍島), 탐라(耽羅), 일본을 정벌하여 여러 차례 큰공을 세워 이름이 천하에 알려졌다. 사람됨이 중후하고 엄정하고 굳세었으며,큰 일을 능히 결단하고 전고(典故)를 많이 알고 있었다. 모가짐을 삼가고 가다듬었다. 벼슬에서 물러나 집에 있을 때에도 집안 일처럼 나라를 걱정하였다. 나라에 큰 정사(政事)가 있으면 왕이 반드시 그에게 자문 하였다. 89세에 졸 하였다. 벼슬이 ‘중찬(中贊)’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아들 김흔(金忻)은 이름 아래에 보인다.

견룡행수(牽龍行首): 견룡은 임금의 시위와 궁궐의 숙위를 맡던 군대이고, 행수는 그의 우두머리를 말한다.


중찬(中贊): 삼중대광첨의중찬판전리사사(三重大匡僉議中贊判典理司事)의 약칭.


[種] 종류(種類)

[간해파종(墾海播種)]: 고종(高宗)3년에 몽고의 군사가 와서 서경(西京)을 노략질 하였다. 여러 성들은 위도(葦島)에 들어가서 관청을 유지하고 있을 때 김방경(金方慶)이 병마판관(兵馬判官)이 되었다. 섬 가운데 평탄해서 농사를 지을 만한 땅이 사방 십여리 가량 있었으나 바다의 조수가 밀려들어 개간을 할 수가 없었다. 김방경이 바다를 막고 파종을 하게하니 백성들이 처음에는 고통스럽게 여겼으나 가을이 되어 곡식이 잘 여물자 그 덕에 살아갈수 있었다. <高麗史 卷104 ‘列傳’ 第17 ‘金方慶’>


[矢] 진열하다(陳). 맹세하다(誓). 곧다(直). 또 활과 쇠뇌의 화살을 말한다. ‘모(牟)’

‘이(夷)’는 처음에는 ‘시(矢)로 썼다. 또 ‘똥(屎糞)’의 뜻으로도 쓴다.

[화시(火矢)]: 김방경(金方慶)이 진도(珍島)의 도적을 토벌할 때 불화살 네 발을 쏘니, 연기와 불꽃이 하늘에 넘실거렸다.

<高麗史 卷104 ‘列傳’ 第17 ‘金方慶’>


[暑] 덥다(熱).

[능한서(能寒暑)]: 김방경(金方慶)은 늙어서까지 더위나 추위에 병이 들지 않았다. 나이 89세에 죽었다. <東國輿地勝覽卷24 ‘安東大都護府 ‘人物>


[腐] 썩다(朽). 문드러지다(敗).

[선부(船腐)]: 김방경(金方慶)이 수군(水軍)으로 일본을 치는데 배가 썩고 양식이 떨어지고 또 큰바람까지 만나 패배하고 돌아왔다.

<高麗史 卷104 列傳 第17 ‘金方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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