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정간공 김영후(金永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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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6-10-09 14:25 조회1,452회 댓글0건본문
[重] 많다(多). 두텁다(厚). 신중하다(愼).
[침중(沈重)]: 김영후(金永煦)는 성품이 엄격하고 굳세었으며 침착하고 신중 하였다.
<東國輿地勝覽 卷24 ‘安東大都護府’ 人物>
김영후(金永煦): 1292~1361 고려의 문신으로 호는 균헌(筠軒)이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김방경의 손자이다. 여러 벼슬을 거쳐 충숙왕때 삼사우윤(三司右尹)이 되고 1341년에사신으로 원나라에 갔다. 그곳에서 심양왕(瀋陽王) 고(暠)의 모반에 동조하지 않고 충혜왕을 시종한 공으로 삼사좌사(三司左使)가 되었다. 후에 우정승(右政丞)에 이르렀다.
[官] 임금(君)이란 뜻이다. 섬기다(事)라는 뜻이다. 맡아 다스리다(職)라는 뜻이다.
[불위손구관(不爲孫求官)]: 김영후(金永煦)가 재상이 되었을 때 그의 손자 사형(士衡)은 나이가 이미 20세를 넘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왜 손자를 위해서 벼슬을 구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영후가 말하기를 “자제가 어질면 국가에서 당연히 쓸것이다. 어질지 못하면 벼슬을 얻었다한들 보전할 수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高麗史>
김영후(金永煦): 1292~1361 고려말기 문신, 본관은 안동, 호는 균헌(筠軒)이다. 1341년(충혜왕 복위2년) 6월 조적의 난으로 왕이 원도(元都)에 갔을 때 간신들이 변란을 꾸몄으나 왕을 시종한 공으로 삼사우사(三司右使)로서 일등공신에 봉해졌다. 좌정승, 우정승을 지냈고 복창부원군에 봉해졌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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