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登 智 異 山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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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작성일06-10-14 16:29 조회1,443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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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登 智 異 山 記 - 2006년 10월 7일(토)

 우리 민족의 대명절 추석날 오후, 일 년에 두 번 갖게 되는 나만의 연휴이다.대전을 지나 새로난 통영가는 길로 접어드니 산자락을 훑고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제법 음산하다.벽공의 하늘이 잠시 어두워지더니 이내 한가위 보름달이 떠오르고 백두대간의 끝자락이 겹겹이 둘러처진 지리산이 달빛에 서서히 그 위용을 드러내며 나를 유혹한다.

 1990년 추석에 노고단(1570)에서 출발하는 종주코스로 2박 3일을 다녀갔으니 벌써 십 수년이 흘렀다.세월이 흐른 뒤에 우연히 같은 계절에 다시 찾아오니 감회가 새롭다. 그 때 연하천과 장터목 산장에서 묵었었는데 조석으로 코펠에 손이 쩍쩍 달라붙어 취사를 할 때마다 몹시 어려웠었던 기억과 함께 같이 산행을 했었던 후배들의 얼굴들이 스쳐간다.

 빨지산의 은거지였던 동남쪽 중산리로 파고 들어가니 산장마다 다음날 산행을 위해 멀리서 일찌감치 달려와 여장을 풀고 있는 등산객들의 모습에서 학창시절 찾아왔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진 풍경을 엿볼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북적거리는 산행길이 싫어서 명절날에 찾아다녀도 붐비는 게 여전한 것을 보면 산을 오르는 동호인의 급증은 물론이고 오히려 작정을 하고 이 때를 준비한 가족단위의 모습에서 오붓함과 정겨움이 묻어나와 애정의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며 산장마다 문을 두드리다 포기하고 아예 매표소를 지나 꼭대기로 올라가니 벌써 해발 500m를 넘고 있다.

 하늘아래 매달려 있는 첫 집에서 겨우 자리를 얻어 몸을 누이니 낙원이 예 아니고 어디일까 싶다.새벽같이 일어나 비빔밥을 김으로 말아 점심을 준비하여 높고 푸른 하늘에 맞닿아 있는 천왕봉(天王峰,1915)을 향해 사뿐사뿐 발걸음을 한다.법계사(法界寺) 코스를 밟아 네 시간 만에 정상에 올라 파노라마로 펼쳐진 우리땅 남녘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 본 영봉들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는다.

 저멀리 노고단 쪽의 능선에서 반야봉(1732)을 넘어 세석평전을 지나 바람이 오고 있었다.그 바람을 따라 출렁거리듯 단풍잎들이 흔들리며 댓잎의 울음에 섞여 빨갛게 익어간다.태고적부터 지리산의 숲은 빗물을 걸러 남도의 옥토로 스며들게 하였고 그리하여 남녘의 너른 들판에서 기대어 살던 삼한과 가야 백제와 신라의 역사에서 장엄한 순간들을 지켜보며 숲을 살찌웠던 것이다.

 가야의 왕릉에 맥없이 끌려가 순장당하던 시녀의 눈에 고인 이슬을 보았을 것이고 비단을 실어오던 수나라 당나라의 상단들을 보며 꿈틀거렸다.또한 신라군의 무기를 만들던 야철대장의 덥수룩한 수염에 묻어난 그을음을 보며 통일신라의 꿈을 지켜주었으며 천 년 후엔 빨지산도 숨겨주었다.

 같은 길로 내려오는 게 싫어 하산길은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모여 장터를 이루었다는 장터목산장으로 우회하는 길을 택했다.계곡은 오랜 가을 가뭄으로 나의 맘처럼 말라 있었고 계곡 옆으로 비스듬히 생겨난 숲길을 따라 내려오며 번뇌를 떨쳐버리고 운전대를 잡으니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었다.

 인근에 있는 이영주(법명 성철) 생가터에 들러 고승의 성장기를 보고 조금 떨어진 도로가에 위치한 <목면시배지>를 견학하려 하였으나 날이 저물자 폐문을 하여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며 붓뚜껑속에 목화씨앗을 넣고 압록강을 건너 산청까지의 고행을 감내한 문익점의 솜보다 더 따스한 정을 느끼며 송광사(松廣寺)를 찾아 풍경소리를 들으며 곤한잠을 청한다.

 다음날 아침, 고즈넉한 산사로 가는 오솔길이 야단법석이다.갑자기 몰려든 인파의 무리로 복잡한 송광사를 나와 국도를 이용하여 선암사(仙巖寺)를 찾아간다.

 선암사에 도착하니 경내가 잠시 어수선하여 입장이 곤란하다고 일러준다.큰맘 먹고 왔는데 속이 상하고 만다.하여 되짚어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금새 뉴스에서 사찰내의 마찰을 일러주어 정황을 알 수 있었다.하지만 국도변 가로수의 감홍시처럼 빨간 태양아래서 머리를 숙이며 익어가는 황금들판을 바라보니 어느새 온갖 시름이 사라지고 있었다.

 내년 가을엔 또 어딜 찾아가지!. 풍성한 가을을 마음껏 즐기시길 기원합니다!.감사합니다.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아뿔사
지난 여름의 등 지리산기 제목을 놓쳤습니다.
그런데 어쩜 이렇게 맛갈나게 쓰십니까
2개월전의 감흥이 고스란히 배어나옵니다

김봉석(재옥)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봉석(재옥)
작성일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인근은 우리 안동 김문의 세거지입니다.매표소 전방 약 1km 지점 도로변에 익원공파 퇴장공(휘 한동)의 재각(저존재)이 있습니다.연산군 연간에 중산리로 입향하신 퇴장공의 후손들이 아직 몇 가구 살고있습니다. 워낙 오지이고 또 6.25를 전후하여 피 아간에 이루어진 피해로 살아남은 후손 거의는 대도시로 떠났습니다.원래 재각(저존재)은 모든 기록,전각과 함께 6.25때 소실되고 이후 다시 건립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