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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 어록 15 (1296년, 8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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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6-11-25 09:33 조회1,4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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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6년

이승휴의 단모부(旦暮賦) 에 대한 답글


■ 동안거사집 (이승휴 著, 삼척시 번역 간행)

   전에 붙여 준 고부(古賦) 1편을 받았는데, 늙고 병듦으로 해서 미처 답할 겨를이 없었다가, 이제야 화답하여 돈헌(돈=豚밑책바침=軒)에게 부쳐 보인다.

   천지(天地)가 높고 낮음이여! 씨줄로 삼고, 성현(聖賢)이 오고 감이여! 날줄과 같도다. 그 나가고 취함이 있음이여, 무리와 더불어 했도다.

   벼슬하지 않으면 산림에 있거나, 혹 강호에 있었고 세상에 나가서는 정승도 되고 장수도 되었도다. 박(剝)이 허물이 없음이여 육삼(六三)에 있도다.(1)(돈=豚밑에책바침한글자)의 길하고 좋음이여 구사(九四)에 있도다.(2)당(唐)의 요(堯)임금이 팔짱만 끼고 다스림이여! 칭송하지 아니함이 없었고, 허유(許由)3)가 귀를 씻음이여 또한 아름답게 여기는 바이다.

   오직 성명(性命)만을 회복하려 함이여! 그 명성(名聲)은 의식하지 않으며, 반드시 나가고 물러날 필요가 없음이여, 세상이 어지럽고 세상이 다스려짐으로 말미암았도다. 선현(先賢)과 후현(後賢)이 한 것이 혹 같기도 하니, 그때나 이때가 어찌 다르겠는가.지금 우리 성주(聖主)께서는 덕은 요(堯)임금과 같고, 마침 은사(隱士)가 있는데 성(姓)은 이(李)씨로다.

   조정(朝廷)에 설 만하면 조정에서 벼슬하고, 향리(鄕里)에 돌아갈 만하면 향리에 살았도다. 도통(道通)을 떨어뜨리지 아니하니 노자(老子)·장자(莊子)보다 더 깊고, 유학(儒學)의 문을 다시 열어 줌이여, 수사(洙泗)4)에 비길 만 하도다. 이미 청정함이여, 그 마침을 잘 마쳤고, 어찌 충의를 처음에만 시작하겠는가. 노을을 먹고 기(氣)를 먹음이여! 참다운 공부가 있었고, 경을 말하고 부처에게 예를 말함이여! 다른 일이 없었도다. 나의 공명(功名)같은 것이야 어찌 그대의 마음에 있겠으며 공(公)의 덕행(德行)같은 것은 곧 나의 뜻이로다.

원정(元貞)2년(충렬왕22년=1296년)2월


(1)주역의 박괘 육삼 효의 뜻으로 소인은 음을 버리고 군자는 양을 취하기 때문에 허물이 없다고 하였음

(2)주역 돈괘 구사효의 뜻으로 사욕을 버리는 군자이기 때문에 길하다고 하였음

(3)허유 : 요임금이 허유를 찾아가 천하를 물려 주겠다고 하자 허유가 오늘 별소리를 다 들었다고 하며 귀를 씻었다는 옛일이 있다.

(4) 공자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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