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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 官職考 01 (16세, 1227년, 양온서 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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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7-01-27 00:07 조회1,521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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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께서는 16세(1227년)에 功蔭1)으로 出仕하여 良醞署 同正2)을 시작으로 宦路에 오르셨습니다.


***功蔭1)

행장에는 三韓功臣을 지내신 선조 日兢 공의 功勳으로 인하여 출사하였다고 되어 있으나, 1225년 백부(김창)가 최우의 측근으로 正房에 들어가 인사권을 잡고 있었던 시기였으므로, 아마도 백부의 힘에 의하여 출사한 것이 아닌가 한다.


***良醞署 同正2)

고려시대 양온서라는  관청은 궁중 행사에 필요한  술과 감주를 관장하던 곳이며, 동정은 고려 시대에 육품 이하의 문관과 오품 이하의 무관에게 주던, 정직(正職)에 준하는 명예직으로 처음으로 벼슬길에 오르는 경우에 주었다


충렬공께서는 여러 기록에서 보듯이, 어릴때 조부(김민성)의 훈육으로 禮式과 典故에 밝았다고 하는데, 이로 인하여 궁중 예식에 쓰이는 술과 감주 등을 관장하던 양온서에 출사한 것이다.


충렬공은 1227년 양온서 동정으로 출사한 이후에 과거 급제를 뜻하였으나, 1231년 몽골의 침략이 시작되어 이후 39년간 전장에서 살다시피 하게 되었으므로 과거 시험 기회를 놓치고, 평생 과거 급제 못한 것을 한스러워 하였다고 한다.


조부는 문과 급제후 한림직사관을 역임한 것으로 보아 학문에 밝았음을 알수 있고, 아들들을 직접 가르쳐 1206년, 1208년에는 두 아들(김창, 김효인)은 문과에 급제시킨 바 있으며, 손자인 충렬공도 1212년이후 어릴때 조부 문하에서 典故와 과거공부를 하였던 것이다.


고려시대 개경의 제1의 번화가는 廣化門(황성의 정문, 동쪽)에서 남대가를 거쳐 십자가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광화문을 나오면 동쪽으로 향한 관도 좌우로 여러 관서들이 줄지어 있었다.


북쪽 길가에는 尙書戶部, 工部, 考功(고공사 라고도 하며 관리들의 공적과 과실을 검열, 심의하는 일을 맡는다. 건국 초기에는 司績이라고 하였다), 大藥局, 良醞局(술과 감주 등을 빚어 공급하는 사업을 맡은 부서로 뒤에 사온서에 합쳐졌다) 등이 열지어 있었는데, 모두 문을 길가에 내고 각각 관부 이름을 현판으로 걸고 있었다.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새로운 연재물, 충렬공의 관직 연구,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김발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발용
작성일

  또 대장정을 시작하셨네요.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