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관성씨순례2.(정산김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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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2-05-16 08:08 조회1,854회 댓글0건본문
● 분관성씨순례Ⅱ.(정산김씨)
1. 정산김씨 시조 휘 김복수(金福壽) 자 광유(光酉).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상기족보 pp39∼40)
---정산은 충청남도 청양군에 속해 있는 지명으로 백제 때에는 열기. 두릉. 윤성
등으로 불리웠다가 통일신라 때 열성으로 고쳤으며 고려초에 정산현이 되었다.
---정산김씨의 시조 김복수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 김은열의 15세손
김한(金漢)의 둘째 아들로 전한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조선조에서 현감을 지냈으나 무오사화(연산군 때 김종직
이 지은 조의제문을 문제삼아 신진사류가 훈구파에 의하여 화를 입은 사화)에
연루되어 정산으로 이거하였다가 다시 평안도에 정착 세거하며 광유로 개명한
후 전 거주지였던 정산을 관향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후 시조 복수의 현손 덕립(德立)이 무과에 급제하여 장군을 지냈으며, 그의
맏아들 득일(得鎰)은 통정대부(정3품 당상관의 품계)에 올랐다.
---그밖의 인물로는 정시문과에 급제한 진모(鎭模)가 찰방(각 도의 역참을 관장
하던 종6품의 외관직)을 역임하여 가문을 대표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정산김씨는 남한에 총 49가구
21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족보대전에서)
2. 정산김씨의 유래와 원류.(상기족보 pp41∼43)
---아(我) 정산김씨는 신라 대보공 휘 알자지자 시조께서 득성하신 후 장성하여
석탈해왕 손녀로 비를 삼으시고 계계승승(繼繼承承) 혈통을 이어받아 신라 천
년의 찬란한 역사 즉 신라 박 석 김 삼성이 요 순 우와 같이 양위해가며 치국
한 992년동안 총 56왕중 박씨가 10왕 233년 석씨가 8왕 172년 김씨가 38왕 587
년으로 17대왕 내물왕때부터 신라김씨의 왕위 세습권이 확립되었으며 기중 아
정산김씨 직계존속은 6왕(내물왕, 지증왕, 원성왕, 신무왕, 문성왕, 경순왕)으로
서 일백여년간 왕통을 이어온 왕자왕손의 후예로 신라 고려 조선조를 통하여
내려오는 이천년동안 수많은 명현과 장상열사를 배출하여 민족사상 유구한 광
영을 면면계승하여 오면서 자손이 흥왕하여 우리나라 성씨중 최대최다하며 오
백여본관된 김씨중 하나이다.
아 정산김씨는 신라 마지막 임금인 대보공 28세손 경순왕의 4자 대안군 휘
은열공의 3자 공부시랑 평장사 휘 숙승공이 안동에 정주하면서 시봉안동하시고
경순왕 8대손이며 휘 숙승공의 6대손인 충렬공 휘 방경장군을 중시조로 모시고
연면히 계승하여 오다가 려조말 충렬공의 4대손 공조전서 휘 성목공의 손자로
태종조에 역삼사 이조정랑 휘 익렴공의 차자로 단종조에 성균관 직강 휘 한공
의 차자로 태어난 충렬공의 8대손 휘 복수(자광유)공이 출세소시 등과하여 정
산현감(지금의 충남 청양군 정산면)으로 재임중 연산조때 두차례에 걸친 무오
갑자 양사화시 화를 입어 고향인 전의(조부, 증조부가 사시던 운주산 학당골)로
피신하였다가 기후 전의도 안거(安居)지지가 못되어 독자 휘 지공과 손자 휘
영필공을 데리고 북쪽 변방인 평안도 영변 연산지방으로 피신 정착하여 휘 복
수를 휘 광유로 개명하시고 본관 안동을 정산으로 개관하였으니 이때가 서기
1504년(갑자)을 전후한 시기이며 정산김씨의 시초이며 시조가 되시었다. 시조
휘 광유공의 증손 휘 윤걸공 때에 이르러 영변 약산동대의 신비속에 서기어린
오리면 세죽동 복지로 이거하여 청천강 남북간에 걸쳐 3, 4백호로 자손이 번성
하여 오다가 조국광복후 불행하게도 국토양단과 6.25 한국동란으로 대부분의
제종문은 삼팔이북에 이산잔류하게 되어 생사를 모르고 있으며 2, 3십여세대만
이 삼팔이남인 한국으로 6.25와 1. 4 후퇴의 거듭되는 전란을 피해 남하하여 천
신만고 끝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전국각지에 산재 거주하면서 각자 제2의 고
향을 만들고 현재에 이르렀다.
《다음은 분관성씨순례Ⅲ 사천김씨편 입니다.》
▣ 김영윤 -
▣ 김주회 - 잘 읽었습니다.
▣ 김항용 -
▣ 김영환 -
▣ 김태서 - 글 감사드립니다.
▣ 김재익 -
▣ 김발용 -
▣ 김태영 -
1. 정산김씨 시조 휘 김복수(金福壽) 자 광유(光酉).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상기족보 pp39∼40)
---정산은 충청남도 청양군에 속해 있는 지명으로 백제 때에는 열기. 두릉. 윤성
등으로 불리웠다가 통일신라 때 열성으로 고쳤으며 고려초에 정산현이 되었다.
---정산김씨의 시조 김복수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 김은열의 15세손
김한(金漢)의 둘째 아들로 전한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조선조에서 현감을 지냈으나 무오사화(연산군 때 김종직
이 지은 조의제문을 문제삼아 신진사류가 훈구파에 의하여 화를 입은 사화)에
연루되어 정산으로 이거하였다가 다시 평안도에 정착 세거하며 광유로 개명한
후 전 거주지였던 정산을 관향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후 시조 복수의 현손 덕립(德立)이 무과에 급제하여 장군을 지냈으며, 그의
맏아들 득일(得鎰)은 통정대부(정3품 당상관의 품계)에 올랐다.
---그밖의 인물로는 정시문과에 급제한 진모(鎭模)가 찰방(각 도의 역참을 관장
하던 종6품의 외관직)을 역임하여 가문을 대표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정산김씨는 남한에 총 49가구
21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족보대전에서)
2. 정산김씨의 유래와 원류.(상기족보 pp41∼43)
---아(我) 정산김씨는 신라 대보공 휘 알자지자 시조께서 득성하신 후 장성하여
석탈해왕 손녀로 비를 삼으시고 계계승승(繼繼承承) 혈통을 이어받아 신라 천
년의 찬란한 역사 즉 신라 박 석 김 삼성이 요 순 우와 같이 양위해가며 치국
한 992년동안 총 56왕중 박씨가 10왕 233년 석씨가 8왕 172년 김씨가 38왕 587
년으로 17대왕 내물왕때부터 신라김씨의 왕위 세습권이 확립되었으며 기중 아
정산김씨 직계존속은 6왕(내물왕, 지증왕, 원성왕, 신무왕, 문성왕, 경순왕)으로
서 일백여년간 왕통을 이어온 왕자왕손의 후예로 신라 고려 조선조를 통하여
내려오는 이천년동안 수많은 명현과 장상열사를 배출하여 민족사상 유구한 광
영을 면면계승하여 오면서 자손이 흥왕하여 우리나라 성씨중 최대최다하며 오
백여본관된 김씨중 하나이다.
아 정산김씨는 신라 마지막 임금인 대보공 28세손 경순왕의 4자 대안군 휘
은열공의 3자 공부시랑 평장사 휘 숙승공이 안동에 정주하면서 시봉안동하시고
경순왕 8대손이며 휘 숙승공의 6대손인 충렬공 휘 방경장군을 중시조로 모시고
연면히 계승하여 오다가 려조말 충렬공의 4대손 공조전서 휘 성목공의 손자로
태종조에 역삼사 이조정랑 휘 익렴공의 차자로 단종조에 성균관 직강 휘 한공
의 차자로 태어난 충렬공의 8대손 휘 복수(자광유)공이 출세소시 등과하여 정
산현감(지금의 충남 청양군 정산면)으로 재임중 연산조때 두차례에 걸친 무오
갑자 양사화시 화를 입어 고향인 전의(조부, 증조부가 사시던 운주산 학당골)로
피신하였다가 기후 전의도 안거(安居)지지가 못되어 독자 휘 지공과 손자 휘
영필공을 데리고 북쪽 변방인 평안도 영변 연산지방으로 피신 정착하여 휘 복
수를 휘 광유로 개명하시고 본관 안동을 정산으로 개관하였으니 이때가 서기
1504년(갑자)을 전후한 시기이며 정산김씨의 시초이며 시조가 되시었다. 시조
휘 광유공의 증손 휘 윤걸공 때에 이르러 영변 약산동대의 신비속에 서기어린
오리면 세죽동 복지로 이거하여 청천강 남북간에 걸쳐 3, 4백호로 자손이 번성
하여 오다가 조국광복후 불행하게도 국토양단과 6.25 한국동란으로 대부분의
제종문은 삼팔이북에 이산잔류하게 되어 생사를 모르고 있으며 2, 3십여세대만
이 삼팔이남인 한국으로 6.25와 1. 4 후퇴의 거듭되는 전란을 피해 남하하여 천
신만고 끝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전국각지에 산재 거주하면서 각자 제2의 고
향을 만들고 현재에 이르렀다.
《다음은 분관성씨순례Ⅲ 사천김씨편 입니다.》
▣ 김영윤 -
▣ 김주회 - 잘 읽었습니다.
▣ 김항용 -
▣ 김영환 -
▣ 김태서 - 글 감사드립니다.
▣ 김재익 -
▣ 김발용 -
▣ 김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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