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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 官職考 03 (서북면 병마녹사, 2군6위 별장, 낭장, 어사대 감찰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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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7-03-11 14:07 조회1,4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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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께서는 1230년대 전반, 시중 최종준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으며,


5) 이때부터 그 명예가 세상에 뛰어나, 외직으로 나가서 지금의 평안남북도 지역인 서북면(*북계) 병마녹사(綠事)가 되었다.


*이때는 몽골의 침략이 본격화된 시기였으므로 충렬공께서는 평안도 일원에서의 항몽전쟁, 부원배 세력과의 전투에 투입된 듯함.

이후에도 충렬공은 서북면 병마판관, 북계 병마사 등 서북면 지역을 여러차례 진무하면서 서북면 백성들의 인심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서북면은 충렬공의 정치적 배경 또는 후원지역이 됨.


*서북면은《고려사》 <지리지>에는 서경 ·안북대도호부 ·운주(雲州) 등 25개 방어군(防禦郡), 영덕진(寧德鎭) 등 12개 진, 강동현(江東縣) 등 10개 현이 기록되어 있다. ---


*병마사는 6개월을 임기로 춘하번(春夏番)과 추동번(秋冬番)으로 구분되었고, 임명 시기는 대체로 1~2월과 7~8월이었다. 병마녹사도 임기가 6개월인데 ...

 

*그 뒤에 몽골의 침략을 받자 서북면병마사는 대동강 유역의 석도(席道)에 두었다가 1269년(원종 10)에 가도(椵道)로 옮겼다. 1269년(원종 10) 최탄(崔坦) ·한신(韓愼) 등이 몽골에 투항하자 서북면에 동녕부(東寧府)가 설치되면서 북계가 일시 사라졌다가...



6) 내직으로 들어와서는 정7품 별장(別將)이 되었는데, 전에 대정, 산원으로 근무했던 국왕의 친위부대인 응양군(應揚軍)·용호군(龍虎軍)의 한 영(營)에 소속된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의 중앙군은 응양군(應揚軍)·용호군(龍虎軍)국왕의 친위부대인 2군과 좌우위(左右衛)·신호위(神虎衛)·흥위위(興威衛)·금오위(金吾衛)·천우위(千牛衛)·감문위(監門衛)전투부대인 6위로 구성되었는데, 각 부대는 1,000명 단위부대인 영(領)으로 구성되어 전체 45개의 영이 있었다.


8) 다시 정6품 낭장(郎將)이 되어, 어사대(御史臺)종6품 관직인 감찰 어사(監察御史)가 되어 궁중에서 사용하는 미곡을 관장하던 우창(右倉)을 관할하였다.


*원래 어사대는 정치의 잘잘못을 논의하고 풍속을 교정하며 백관을 규찰하고 탄핵하는 일을 맡은 관청인데, 감찰어사는 다른 관원들과 달리 정치를 논하는 대신 감찰방(監察房)에 따로 거하면서 관원에 대한 규찰과 제사 및 조회와 전곡(錢穀)의 출납 등을 감찰하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어사대의 관원은 중서문하성낭사(郎舍)와 함께 대간(臺諫)이라 하여 간쟁과 봉박(封駁), 서경(署經)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고, 불체포 ·불가범(不加犯) 등의 특권이 있었으며, 청요직으로 인식되어 선발 자격도 매우 엄격하여 대체로 과거출신의 문신 관료들로 충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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