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광산의 맺힘과 풀림(9)-토지지신이시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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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7-08-03 06:51 조회1,527회 댓글0건본문
7. 토지지신(土地之神)이시여!
이어 행사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양위(참판공, 승지공) 선조님께 먼저 인사를 올리고 나서 양 묘소 사이 위쪽에 임시로 만든 산신단(山神壇)에 제수를 차렸다. 오랜 기간 여유를 갖고 차분하게 준비한 덕에 모든 것이 손쉬웠다. 11시에 행사는 시작되었다. 먼저 종친 여러분들께 오늘의 행사 개요, 분정 원칙과 분정표를 발표하고 제관, 집사, 축관 등 6분에게는 제복을 입도록 했다. 약간의 주의사항도 전달했다. 분정과 약식 홀기는 다음과 같다.
<행사 준비>
<식전 유의사항 전달>
<제복 입기>
<초헌관 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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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제 분정표>
초헌관:태섭, 아헌관:상훈, 종헌관:태성, 집사:한용,태갑, 축관:항용, 집례:항용
<산신제 약식 홀기> (진설이 끝나면 초헌관은 제수를 점검하시오)
1)참신(모든 참사자들은 재배하시오)
2)분향 재배(헌관은 분향하고 재배하시오)
3)강신(헌관은 잔에 술을 받아 땅에 3번 나누어 붓고 재배하시오)
4)초헌관 헌작(헌관은 잔에 술을 받아 1잔만 올리시오.)
5)정시저(좌집사는 시저를 세 번 굴려 가지런히 하시오)
6)독축(참사자들은 모두 부복하고 축관은 독축하시오-모두 일어서시오)
7)초헌관 재배(초헌관은 재배하시오)
8)아헌관 헌작, 재배(아헌관은 잔을 올리고 재배하시오)
9)종헌관 헌작, 재배(종헌관은 잔을 올리고 재배하시오)
(운산대사님의 축원 독경)
10)낙시저, 퇴잔(좌우 집사는 시저를 거두고 잔을 물리시오)
11)고예성(축관은 ‘예성’ 이라 고하고 초헌관은 복창하시오)
12)사신재배(모든 참사자들은 재배하시오)
13)분축(생략)
14)음복(집사들은 헌관에게 음복주를 주시오)
15)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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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으로 제(祭)를 올렸다. 의식 절차는 약식 홀기로 진행했다. 참신(參神)에 이어 초헌관의 분향(焚香), 강신(降神), 초헌관 헌작(獻爵)이 있고 난 뒤 모두 부복(俯伏)했다.
<분향 강신>
<초헌관 헌작>
축관(祝官-필자)의 독축(讀祝)이 이어졌다. 약 4분간의 엄숙한 시간이었다. 모두가 정성어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엎드렸다. 축문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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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普光山 土地之神 告由祭 祝文>
維 檀君紀元 四千三百四十年(2007) 歲次 丁亥 二月 壬子朔, 十四日(양. 4. 1) 乙丑에 幼學 安東人 金泰燮은 삼가 告하옵나이다.
土地之神이시여! 일찍이 이곳에는 저의 十二代祖이신 贈嘉善大夫 吏曹參判 兼同知 經筵 義禁府事 弘文館提學 同知春秋館 成均館事 世子 左副賓客 五衛都摠府副摠管 行通政大夫 守忠淸道觀察使 兼兵馬水軍節度使 巡察使이신 安東金公 諱 素 선조님과, 十一代祖이신 通政大夫 承政院 左承旨 兼經筵 參贊官 春秋館 修撰官 安東金公 諱 龜萬 선조님의 墓所를 모시고 代代로 精誠으로 받들어 왔사옵니다.
그동안 土地之神님의 각별하신 保護와 도우심으로 본 墓域이 무사히 잘 保存되어 왔으며, 우리 後孫들도 神靈님의 커다란 恩惠를 입어 無事하게 지내왔음에 깊이 감사드리옵니다.
아뢰올 말씀은 本 墓域을 소재로 한 다소 폄하적(貶下的) 性格의 傳說들이 묘소 奉安 以後로 近洞에서 끊임없이 遺傳되고 있어 後孫으로서 그저 看過할 수만은 없기에 그 傳說 내용을 기초로 331年 前 이곳에 墓所를 造成하던 당시의 상황을 조심스럽게 追考해 보고, 만약 작은 허물이라도 있었다면 이를 告하고 神靈님의 善處를 구하고자 後孫여러분들과 함께 여기 모여 머리를 조아리고 있사옵나이다.
돌이켜 보건대, 이곳은 高麗中葉에 創建된 鳳鶴寺란 절이 있었던 곳이었으나 朝鮮朝 中葉인 1666년 參判公(諱 素)선조님께서 歿하시자 本 普光山 서쪽 아래인 沙梨面 荷島에 本宅을 두셨던 아드님 承旨公(휘 龜萬)께서 현 위치에 있던 鳳鶴寺를 閉寺하고 參判公의 墓所를 造成토록 하셨으며, 후에 承旨公께서도 이곳에 安葬되셨사옵니다. 이것은 朝鮮 初부터 朝廷에서 國家의 基本 理念으로 一貫되게 추진해 왔던 崇儒排佛 政策을 더욱 强力하게 施行하던 時期의 時代的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實施된 일이었사옵니다.
그러나 그 以後 近洞 사람들은 본 墓所 奉安 과정과 관련하여 虛浪한 說話를 만들어 傳說로 口傳하는가 하면, 近代에 와서는 각종 文獻에 이를 記錄되게 하다가 最近에 이르러서는 더욱 遊戱的이고 興味本位的이며 다소 惡意的인 내용으로 再構成하여 記錄, 流布하고 있사옵니다.
이 모든 과정을 보아 오신 土地之神이시여! 三百 三十 餘年 前의 일을 追考해 보는 오늘, 이 傳說 내용처럼 本 墓域 造成 過程에서 우리 선조님들이나 당시 勞役者들이 本意 아니게 이곳 鳳鶴寺와 관련된 분들과 이웃 여러분들에게 身體上 害를 입혔거나 心靈上 苦痛을 주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되옵니다. 이에 오늘 우리 후손들은 이 未確認된 傳說 내용이 事實일 수도 있다는 前提 下에 그때의 피해자들에 대해 人間愛的, 道德的 次元에서 진정으로 慰撫해 드리고자 하옵니다.
그리하여 간절히 祈願하오니 神靈님이시여! 過去 본 묘역과 관련하여 큰 被害를 입고 恨을 품었던 분들에서부터 아주 微微한 마음의 상처를 입은 靈魂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해 주시어 그 넋들이 天上界에서 平溫하게 安遊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옵소서.
그리고 오늘 여기 이렇게 感謝와 鎭魂의 祭禮를 올리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과 精誠을 불쌍히 여기시어 과거의 모든 일을 널리 理解하시고 嘉納해 주시옵길 머리 조아려 비옵나이다.
끝으로 本 墓域이 永久토록 保存되고 우리 後孫들이 子子孫孫 無事, 無病하고 安寧, 無窮繁昌할 수 있도록 굽어 살펴 주시옵길 간절히 기원하옵나이다.
삼가 간소한 祭需와 맑은 술을 올리오니 降臨하시어 歆饗하시옵소서.
2007. 4. 1.
參判公 十三代孫 幼學 安東人 金恒鏞 謹撰, 奉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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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축 장면>
<부복 모습>
<축문>
다음 아헌관(相勳)과 종헌관(泰成)의 헌작(獻爵)에 이어 보광사 운산대사님(金泰國)의 축원(祝願) 독경(讀經)이 이어졌다. 장삼(長衫)과 가사(袈裟)를 입은 스님의 위의(威儀)는 엄숙했다. 태고종(太古宗)의 독경은 일반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독경소리와 함께 울리는 목탁과 종소리는 새소리와 어우러져 은은하고 청아하게 묘역 전체로 번져 나갔다. 마치 산신을 공경스럽게 칭송하고 고인(故人)들의 넋을 진정으로 위로하는 듯 했다. 그리고 고예성(告禮成), 사신재배(辭神再拜)를 한 다음 음복(飮福)을 하며 서로의 복을 빌었다.
<아헌관 헌작>
<종헌관 헌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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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산대사님의 축원 독경>
<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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