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회 정기산행(동구릉) 보고_03 현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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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용,윤식 작성일07-09-18 23:15 조회1,593회 댓글2건본문
제46회 정기산행(동구릉) 보고_03 현릉
■ 비운의 왕세자, 준비된 군주 문종 : 현릉(顯陵)
수릉을 둘러보고 현릉(顯陵)으로 향합니다. 현릉은 세종대왕의 큰아드님이신 제5대 임금 문종(文宗 1414~1452년)과 현덕왕후(顯德王后 1418~1441년) 권씨의 능호입니다. 이곳은 건원릉 남쪽이지만 풍수지리로는 건원릉의 동강(東岡)이라고 합니다.
특이하게 왕과 왕후의 봉분이 서로 떨어져 있습니다. 능역(陵域)은 같으나 봉분이 서로 떨어진 동원이강(同原異岡) 형태입니다. 능을 바라보고 왼쪽이 문종, 오른쪽이 현덕왕후의 능입니다. 이 때문에 두 능 사이로 신도(神道)가 길게 조성돼 있습니다.
▲ 동원이강 형식의 능으로 왼쪽이 문종의 능, 오른쪽이 현덕왕후의 능이다.
참도가 시작되는 오른쪽에 판위(板位 : 신위를 준비하고 제례를 준비하는 곳)가 있고, 참도 안쪽에 홍살문이 있습니다. 홍살문은 정확한 규정이 없어서 윗부분의 살이 몇 개인지 명확하지 않고, 큰 의미도 없답니다. 진정임 선생의 설명에 따르면, 경우에 따라 중앙의 살을 중심으로 좌우의 살이 짝수이기도 하고, 홀수이기도 하답니다.
▲ 홍살문 앞에서 설명을 듣는 답사팀
▲ 홍살문을 지나서 왼쪽을 향해 90도로 꺾인 참도
참도는 중간에 왼쪽으로 꺾였다가 다시 위쪽을 향해 직각으로 꺾여 정자각으로 연결됩니다. 두 능이 떨어져 있는 까닭에 정자각 뒤편의 신도는 파릇파릇하게 깎은 잔디밭 사이로 뻗어나가 왕과 왕후의 능을 향해 둘로 갈라집니다.
▲ 두 번 꺾여 정자각으로 연결되는 참도
세종은 부왕 태종의 왕권강화를 토대로 태평성대를 열었습니다. ‘조선의 임금 중 최고의 CEO’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세종은 말년에 여러 질병으로 시달리자 신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왕세자인 큰아들 향(珦)에게 국가의 중대사를 제외한 서무(庶務)에 대한 섭정을 맡겼습니다. 이 때문에 문종은 1445년부터 세종이 승하하시기까지 섭정을 담당했습니다. 덕분에 문종은 왕세자 시절부터 현실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있었고, 평화적인 권력승계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일찍부터 정치 경력을 쌓은 문종은 1450년 37세로 보위에 오르자 언로를 활짝 열고, 고려사를 비롯한 각종 서적을 간행하는 한편 국방에도 힘써 군제 개혁안을 스스로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문종은 문무에 밝은 천재형 임금이자 백성들 마음도 어루만질 줄 아는 성군의 자질을 갖춘 분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완소남’인 셈인데, 애석하게도 병약했습니다. 이에 비해 동생인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은 집요한 권력욕으로 용상을 노려 조정에서는 항상 긴장감이 감돌았지요.
▲ <고려사> 표지
문종은 개인적으로 매우 불행한 분이기도 합니다. 왕세자 시절인 1441년 세자빈 권씨가 세손(훗날의 단종)을 낳고 3일 만에 산후병(産後病)으로 꽃다운 나이인 춘추 24세로 별세한 것입니다. 세자빈 권씨가 4살 위였으니 문종은 불과 20살에 깊고 깊은 슬픔을 아셨던 분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문종의 첫 세자빈인 휘빈(徽嬪) 김씨는 우군사지총절제사(右軍司知摠節制事) 휘 오문(五文) 할아버지의 따님으로 문종이 14살 나던 1427년에 국혼을 치렀습니다. 그러나 3년 만에 휘빈 김씨가 덕을 잃어 사가(私家)로 나가자, 3개월 뒤에 종부시소윤 봉려(奉礪)의 딸 순빈(純嬪) 봉씨(奉氏)가 세자빈에 올랐는데 순빈마저 불미스러운 일로 1437년(세종 19)에 폐서인되고 말았습니다.
그 뒤를 이어 세자빈에 오른 분이 바로 현덕왕후 권씨니 화산부원군 권전(權專)의 따님입니다. 두 세자빈으로 인해 왕실이 진통을 겪은 터라 성품이 단정하고 효심이 깊은 권씨는 세종과 소헌왕후로부터 남다른 사랑을 받았습니다.
세자빈 권씨가 세손을 품에 안기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자 세종은 경기도 안산시 치지고읍산[治之古邑山 : 옛 안산읍(安山邑) 와리산(瓦里山)]에 예장토록 했습니다. 이때는 세자빈이었으니 ‘능(陵)’이 아니라 ‘원(園)’의 묘제로 모셨겠지요. 조선왕조실록에 세종께서 “원경왕후보다 내리고 정소공주보다 1등을 더하게 하라.”고 한 것으로 보아 왕후에 버금갔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문종은 즉위 초에 권씨를 현덕왕후로 높이고, 능호를 소릉(昭陵)으로 격상시켰습니다. 곧이어 정국(政局)이 불안한 가운데 문종이 재위 2년 4개월 만에 춘추 39세로 1452년에 승하하자 현덕왕후는 동구릉으로 천장(遷葬)돼 문종과 합장되었습니다. 이 능이 바로 현릉(顯陵)입니다.
그러나 세자빈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후 판한성부사 권전이 졸하고, 아들 단종(端宗)은 숙부 수양대군에 의해 폐위되었습니다. 이후 단종 복위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현덕왕후의 어머니 아지(阿只)와 동생 자신(自愼)이 1456년에 역모죄로 사형당하고, 땅 속에 묻힌 권전은 서인으로 추폐((追廢)되었습니다. 아들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돼 끝내는 죽음을 맞게 됩니다. 따님 경혜옹주 남편인 영양위(寧陽尉) 정종(鄭宗)도 승려 성탄 등과 모반을 꾀하였다 해서 능지처참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현덕왕후도 종묘에서 신주가 철거되고, 평민의 예로 개장돼 강가에 묻히는 수난을 당했습니다.
그 뒤 남효온이 성종에게, 김극뉴가 연산군에게 각각 현덕왕후의 추복(追服)을 건의하고, 중종 7년인 1512년 소세양이 다시 추복을 건의했으나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종묘에 벼락이 치면서 재차 현덕왕후의 추복이 논의돼 임금의 전교(傳敎)로 뜻을 이루었습니다. 이리하여 현덕왕후는 다시 현릉 동쪽 언덕으로 이장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합장으로 모셨던 두 분의 능이 서로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원래 두 능 사이에 있던 나무들이 시들어 가면서 모두 말라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 사연을 알고 보니 두 분의 능이 더 애틋해 보입니다. 문종은 효성이 깊어 생전에 세종이 묻힌 영릉(英陵) 오른쪽 언덕에 묻히고자 했습니다. 당시 세종의 능은 지금의 헌인릉(獻仁陵 제3대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능인 헌릉과 제23대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의 능을 합쳐 부르는 명칭) 오른쪽에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물이 나고 바위가 있어 문종은 건원릉 동쪽에 묻혔습니다. 영릉은 조성된 후 얼마 되지 않아 옮겨짐으로써 현릉은 <국조오례의>의 규정을 따르고 있는 가장 오래 된 능이라고 합니다.
정자각 좌우에 수복방과 수라간 터가 주춧돌만 남아 있고, 수복방 위쪽으로 비각(碑閣)이 있습니다. 그 안의 비석은 문종의 능임을 알리는 능표이고, 신도비는 없습니다. 임금의 치적은 국사(國史)에 실리므로 굳이 사대부와 같이 신도비를 세울 필요가 없다는 뜻에서 문종의 능부터 건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 문종현릉표
▲ 문종현릉표 탁본(탁본 출처 :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
동쪽 돌계단을 통해 정자각에 올라서자마자 직사각형으로 잘 다듬은 넓적한 돌이 있고, 그 반대편에도 역시 같은 형태의 돌이 깔려 있습니다. 진정임 선생의 설명에 따르면, 임금이 친행 제향(親行祭享) 시 홍살문에 이르면 여(輿)에서 내려 좌우통례의 안내로 판위(板位)에 나아가 북쪽을 향해 선답니다. 이어 좌통례가 임금께 국궁사배를 계청(啓請 임금에게 아뢰어 청함.)하고, 찬의는 뒤따르는 백관을 판위 남쪽에 북향토록 해서 국궁사배를 하고 임금의 뒤를 따르게 됩니다. 이를 직배(直拜)라 한답니다.
▲ 건원능 정자각의 곡배 자리
그 다음 정자각에 오르면 서쪽을 향해 다시 국궁사배를 합니다. 이것이 곡배(曲拜)인데, 정자각에 깔린 돌이 바로 곡배 자리라고 합니다. 우리 일행은 모두들 유심히 넓적한 돌을 살펴봅니다. 전문해설사의 도움이 없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겁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설명을 들었으나 제가 요령부득인 데에다 보고드릴 내용이 늘어나서 지나치게 전문적이거나 사소한 내용은 줄이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일행은 먼저 현덕왕후의 능으로 올라갔습니다. 현덕왕후의 봉분에는 병풍석이 없이 난간석만 둘렀습니다. 왕후의 능은 병풍석을 두르지 않는다고 하는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 현덕왕후 능침. 병풍석이 없이 난간석만 둘렀다.
혼유석 바로 앞 중계에는 장명등을 놓고, 좌우에 문인석과 말이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오른쪽(동쪽) 문인석은 흥미롭게도 두 손으로 쥐고 있는 홀이 턱과 떨어져 있는데, 왼쪽(서쪽) 문인석은 수염이 홀에 딱 붙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진정임 선생의 설명을 들으며 이렇게 숨겨진 보물을 찾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 왕후능 좌ㆍ우 문인석
하계에는 양쪽에 무인석이 장검을 두 손으로 짚고 서 있는데, 머리 부분이 큰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주먹만한 눈이 퉁방울눈처럼 튀어나오고, 둥글둥글한 코도 손으로 쥐었다 놓은 듯해서 서슬 푸른 장군의 위엄보다는 민화에 나오는 장군 같아서 정겹습니다.
▲ 현덕왕후 능의 무인석. 얼굴 표정이 정겹다.
그리고 하계 아래쪽에 직사각형의 작은 돌이 하나 있습니다. 일종의 돌계단이라고 설명하시는데, 그보다는 대청마루 앞에 놓인 섬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여하튼, 아무렇게나 중계로 올라서는 게 아니라 이 돌계단을 밟고 올라서고 내려섰다는 걸 알게 합니다.
문종의 능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두르고, 혼유석 앞은 상계, 중계, 하계의 3단으로 조성했습니다. 상계에는 봉분 앞에 혼유석을 놓고, 석호(石虎 돌호랑이)와 석양(石羊 돌양)이 바깥을 향해 배치돼 봉분을 호위하고 있습니다. 이전 왕릉과 달리 병풍석에 방울과 방패 무늬가 없습니다.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은 4개입니다.
▲ 고석과 귀면 장식
중계에는 혼유석 바로 앞에 장명등을 배치하고, 좌우에 문인석과 말이 각각 1쌍씩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문인석은 복두 끝이 올라간 형태입니다. 복두(幞頭)는 관모(冠帽)의 일종인데, 고려시대에는 일반 서민들까지 착용할 정도로 일반적이었으나, 조선시대에는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국악 연주 등에서 악사들이 쓰고 있는 관모가 바로 복두입니다.
▲ 현덕왕후 능의 장명등
▲ 현덕왕후 능침 후경
문종 능의 병풍석을 좀더 살펴볼까요. 중앙에 사람의 형상을 새기고 나머지 공간에 구름무늬 즉 운채(雲彩)를 촘촘히 장식했습니다. 이것이 새겨진 돌이 면석(面石)인데, 중앙의 사람 형상을 자세히 보면 머리 부분에 뱀, 말 등 12간지(十二干支)가 하나씩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방위신상(方位神像)입니다. 진정임 선생의 설명에 현종들이 우르르 병풍석으로 다가가더니 봉분을 빙 돌아가며 ‘똑딱이 디카’를 꺼내 셔터를 누릅니다. 정말 신기하고 흥미로웠습니다. 보고용 사진촬영 담당이신 발용 현종께서는 우리 일행의 어수선한 사진찍기가 끝날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 현덕왕후 능에서 바라본 문종 능침
▲ 문종 능침 전경
▲ 문종 능침의 면석(面石)에 새겨진 구름무늬와 십이지신상. 머리 위쪽 관(冠)에 방위를 나타내는 짐승(뱀)이 새겨져 있다.
▲ 십이지신상 확대 부분. 말이 새겨져 있다.
병풍석 맨 위에는 기다란 사각 막대 형태의 돌이 돌출된 인석(引石)이 있습니다. 인석의 역학적 기능이 있을 텐데, 능역에 대해 자세히 몰라 안타깝습니다. 인석의 마구리 부분에는 각각 꽃이 하나씩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본 것은 해바라기[葵花]였는데, ‘백성이 임금을 바라본다.’는 뜻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인석에는 해바라기 외에도 모란이나 국화를 새기기도 한답니다. 병풍석을 비롯한 봉분의 석물에 대해서는 태조의 능인 건원릉에서 체계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진정임 선생에 따르면, 인석의 돌출부분은 1자, 봉분의 흙 속으로 들어간 부분은 6자 6치라고 합니다.
▲ 병풍석 위쪽의 인석(引石). 해바라기가 새겨져 있다.
▲ 병풍석과 난간석 사이에 깔린 박석은 36개로 치마처럼 넓게 펼쳐서 깐다.
▲ 문종 능의 무인석 관모 뒷부분. 복두가 위로 올라가 있다.
▲ 문종 능의 문인석. 얼굴의 수염이 이채롭다.
▲ 문종 능의 무인석. 퉁방울눈과 주먹코가 정겹다.
▲ 문종릉 봉분 주위의 석물들. 석호와 석양이 밖을 향해 배치돼 봉분을 수호한다.
절기는 가을로 접어들었건만 날씨가 맑아 한여름을 방불케 합니다. 그러고 보니 개경사 터에서부터 왕릉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작은 동산만한 왕릉을 오르내리다 보니 갈증이 심해져 갑니다. 앞서 가시는 진정임 선생은 가뿐하신 걸 보니 여장부가 따로 없습니다.
▲ 문종 능에서 바라본 왕후 능침
▲ 문종 능침 후경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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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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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실 대부님, 하남 대부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큰 실수를 막았습니다.
행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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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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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후기가 이어질수록 같이 못한 아쉬움이 더더욱 커집니다. 맘속으로 사배를 올립니다.
사진과 함께 자세히 설명을 해주시니 마치 동행한 것 같습니다. ^^ 눈망울이 툭! 아주 재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