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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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작성일07-10-06 17:52 조회2,573회 댓글4건본문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잊혀져 가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3
72년 10월,유신정권이 들어서면서 반공 이데올로기와 함께 충효사상을 고취하며 철권통치가 계속되었다.다들 그러했겠지만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옥상에도 <승일방첩>이라 적혀있던 양철판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 같은 크기로 고학년 남학생들에 의해 빨간색 페인트 글씨로 쓰여진 <멸공통일>이 솟아 올랐다.
교사 앞 화단의 회양목과 원추리를 뽑아버리고 시멘트 동상이 들어섰는데 그것이 내가 처음 본 이승복 어린이였다.초등학교 3학년 봄,담임선생님의 인솔하에 읍내로 단체 영화관람을 가게 되었는데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기회였지만 정작 나는 그 영화를 관람하지 못하고 말았다.
물론 앞서 교실 창문을 검정색 나이론 천막으로 가리고 <전쟁영화>를 보여 주었는데 요즘의 슬라이드 상영 수준이었고 "우리(아군,국방군)가 악조건 하에서 전우애와 충성심을 발휘해 극적으로 이기는" 재미 없는 뻔한 스토리로 다분히 초등학생들의 애국심을 불타게 하려는 의도에서 제작된 교육용 자료였다.
또한 지서 앞 공터의 큰 미류나무에 간이 접수대를 만들고 이동식 극장이 가끔 들어와 여배우의 노출 수위가 심상치 않은 것을 상영했는데 끝날 때까지 빗줄기가 그치지 않아 어린 나는 장마 때 촬영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제목은 고사하고 줄거리도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을 보면 감동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동네 칠성이형(본명은 더 험함)과 새마을 지도자 아저씨는 당시만해도 신여성이 짧은 원피스를 입고 사랑하는 남자를 회장딸에게 뺏기고 난 후 방앗간 기둥을 부여잡고 흐느끼는 장면에서도 군침을 삼켰고 영화가 끝나자 나름대로 아쉬웠던지 궐련을 하나씩 빼 물더니 연신 뻐끔거리며 내 뒤를 따라 수군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어찌하랴?,어릴적 시간 많을 때 동네 형들에 이끌려 한 번 뿐이었던, 밤나들이 삼아 보러 간 것이었기에 후회 보다는 추억으로 간직할 수 밖에 없질 않겠는가.
드디어 내생애 처음으로 정식 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가는 그날이 왔다.점심을 싸가지고 갔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오로지 그 제목은 지금도 또렷하다.<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였다.-훗날 반공의식이 조금씩 사라질 무렵엔 <나는 콩사탕이 싫어요!>로 각색되기도 한 바로 그 영화.
시오리를 걸어 남한강가에 닿았다.1,2반이 세 차례에 걸쳐 나룻배를 나누어 타고 강을 건넜다.한나절이 흘렀다.도강 후에 읍내로 이어지는 개활지에서 벌써 장을 보셨는지 어머니가 되돌아 오시며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어 주셨다.오일장은 한 달에 한 번 꼭 일요일이 겹친다고 가르켜 주신 어머니가 바쁜 짬을 내신 듯 싶었다.
나는 이열종대의 행렬에서 조용히 이탈해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나는 1반이었으므로 2반 담임선생님의 눈을 피하느라 시간이 지체됐다.
어머니가 타신 배는 이미 강을 건너고 있었다.
장꾼들이 많았었는지 마침 암소만 먼저 싣고 갔는데 어미를 잃은 송아지가 헤엄을 치기 시작했고 그 어미는 뱃전에서 크게 울었다.배가 흔들리며 어미 목에 달려있는 방울소리가 울음에 잠기더니 이내 잦아들었다.어느새 송아지가 도강을 했다.나는 그때까지도 네발달린 짐승은 개만 헤엄을 치는지 알고 있었다.노련하고 장난끼 많은 사공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득한 저쪽 나루에서 어머니가 강 건너 아들의 모습을 보셨다.요단강이 저기련가---멀리서 돌출된 바위 위에 솥뚜껑 만한 자라가 올라와 볕을 쪼이다가 사공의 삿대질에 목을 움추리고 가라 앉았다.잠영한 자리에 동그라미가 서너개 일다 사라졌다.
옥순봉으로 흘러가던 얕은 물길에선 아지랑이가 반들거렸고 옥빛 깊은 강엔 피라미들이 반짝거리며 튀어 올라 물비린내를 풍겼다.약이 올라 배가 가까이 오는지도 모르고 물수제비를 뜨다가 사공에게 야단을 맞았다.
훗날 고등학교 동창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아류작에 이승복 형으로 출연했다는 것을 알았고 제주의 밀감밭에서 우연히 진짜 평창에서 온 이승복 형의 친구 서넛과 동창을 만났었다.그들은 우리가 배운것처럼 이승복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다가 인민군(간첩)에게 아가리가 찢긴 것은 아니라고 일러주었다.난 조금씩 보태진 숨은 사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대통령이 육로로 방북을 하게된 지금,눈에 보이는 것들과 사라져 가는 모든 것들을 생각하며 글을 쓴다.부끄러워 지우려다가 신변잡기에 역사의 순간순간이 스며있다는 것을 이제야 인지하고 올려본다.
학창시절 <역학>에 관심이 많아 <잡기><비결><예언서><비서> 등을 많이 보았는데 지금 책제목은 기억하기 어렵지만 어느책에서 이 땅에 1950년<火戰-즉 6.25>이 그리고 1988년은 한반도에서 <世界人 大會-즉 올림픽인 듯>가 있을 거라고 이야기 한 후 그 말미엔 "동서나 남북은 언급이 없이" 그냥, 동강난 우리 한반도가 (2012년?)인가 2022년엔 하나가 된다고 하였는데 그땐 6.25 하나로 아리송 했고 88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신뢰를 갖게 되었다.
<@@@@>네글자로 된 얇은 책이었는데 여말인가 선초에 지은 것이었다.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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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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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님, 사랑합니다.(이렇게 '힘~쎈' 글 한 편 지어봤으면!!)
김진회(밀)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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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회(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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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시대 이데올로기 아닐까요?
이성복씨 친형 강릉전신전화국 퇴사
우암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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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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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복 사건이 거짖이란건가요? 지난 사실을 오도하지 맙시다.
김진회(밀)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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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회(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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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복 사건은 진실 입니다. 다만 아직 까지 잘못 전해진 기록도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