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담김시양문집(3)-상소문(의주부윤을 사직하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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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7-11-27 08:40 조회1,560회 댓글0건본문
의주 부윤을 사직하는 소(疏)-사의주부윤소(辭義州府尹疏)
출전 : <하담 김시양문집>(2001년. 하담문집발간추진회간. 181P)
계해(癸亥. 인조1년. 1623) 8월
삼가 이 달 초 7일 정부에서 뽑아 신(臣)에게 의주부윤을 주시었는데, 지금 적(賊)이 다니는 길의 요충(要衝)에 해당하는 관(關)으로 방어에 중요하기로는 의주(義州)가 제일이라고 여겨집니다.
조정(朝廷)에서 장수를 뽑을 때는 반드시 신중하게 분별해야 마땅한데, 천만 뜻밖에도 낭료(郎僚)중에서 신(臣)을 뽑아 2품(品)의 반열에 오르게 했으니, 어찌 신(臣)을 숨은 재목으로 여겨 그리하셨습니까. 조정의 뜻은 반드시 재주 있고 지모가 있어서 서쪽 요새를 방어하기에 충분하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지모[謀]라는 것은 마음속에 익혔던 것이 사건을 만나 발휘되는 것인데, 신(臣)은 신(臣)에게 지모가 있는지 없는지 일찍이 시험해 본 바가 없는데, 참으로 조정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臣)은 스스로 지모가 없다고 여기고 있고 일을 회피하는 데는 가까워도 반드시 신임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조정에서 잠시 신(臣)의 재주로 남을 부리게 해 보시면 남들이 쉽게 알아보고 말할 것입니다. 신(臣)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 궁하여 소홀하고 살져 둔하며, 눈으로 보아도 병서(兵書)를 알지 못하여 입으로 병략(兵略)을 얘기하지 못하며, 활로 과녁을 향해 화살을 퍼부으면서도 좌우를 분간 못하며, 말을 타면 안장에 붙어 있으려고 감히 채찍을 휘두르지 못합니다. 이는 정말 뭇 사람들이 함께 보았던 바입니다. 참으로 두예(杜預․주: 222-284. 자 元凱 西晋의 명장.京兆 杜陵人으로 司馬昭의 妹婿)의 용병술이 못되니 전쟁에 승리하는 데는 여러 장수에 미치지 못할 것이니 그 또한 위태로운 일입니다.
묘당(廟堂․주: 의정부)에서 신(臣)을 알지 못하고 천거를 하였으니 이는 잘못된 천거이며, 전하(殿下)께선 신(臣)을 아시지 못하시면서 직첩을 주셨으니 이는 잘못된 은혜입니다. 신(臣)이 만약 스스로를 알지 못하고 그것을 받는다면, 이는 염치없는 차지일 것입니다. 잘못된 천거를 받아들여 행여 잘못 은혜를 주시면 염치없이 차지하는 처지가 될 것입니다. 신(臣)의 낭패는 정말 국사(國事)에 어찌 걱정을 끼치지 않겠습니까.
신(臣)이 엿듣건대 선조조[宣廟朝]에 권반(權盼․주: 1564-1631. 문신. 자 叔達. 호 退齋. 본관 安東)이 5품(品)으로 의주부윤(義州府尹)에 논의되었는데, 선조[宣廟]께서는 직급의 차례로서 상당하지 못하여 난처해 하셨습니다. 하물며 신(臣)의 재주가 권반(權盼)에 미치지 못함에야. 설사 신(臣)이 하나의 성을 지켜서 큰 적을 막아 수훈(殊勳)을 세워 조정에서 상을 준 바라 할지라도 또한 아마 별안간 이 같은 지위에 이르지는 못할 것입니다.
신(臣)이 삼가 급제하여 첫 벼슬한 지 8년, 그리고 유배되었고, 그 사이 속대(束帶․주: 예복 입는 일, 즉 벼슬함)해서 반열에 나선 것을 헤아려 보면 채 15개월이 못됩니다. 북방 변방에 유배 된 지 7년, 남녘 변두리로 옮긴 것이 6년, 스스로의 분수를 먼 변방의 귀신이 되리라 하였는데, 어찌 일찍이 꿈에라도 힘껏 고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을 했겠습니까. 성인(聖人)같이 만물을 짐작하셔서 모두 살펴 발탁해 주신 은혜가 만 번 죽어도 갚음이 남도록 미침에 머리 조아립니다.
낭서(郎署)의 직을 지내다가 갑자기 옥당(玉堂․주: 홍문관의 직)을 더하여 주시니, 사사로운 홍은(鴻恩)이 남달리 넘쳐 나서 평소에도 항상 생각하기를 목욕을 하듯 깨끗이 하고 노둔(駑鈍)을 잘라 내겠다고 하였습니다. 밀이(密邇․주: 임금에게 가까이 함)하여 지척에서 위엄을 한번 바라보는 것이 빛나는 영광이었습니다. 비원(備員)이 사건을 물으며 국문과 옥사가 바야흐로 급한 때라, 본디 소원도 이루지 못하고 급히 곧 멀리 떠나게 되니 궁궐마당을 우러러 사모하려니 마음 가운데 초조합니다. 급암(汲黯․주: 전한(前漢)의 명신. 무제(武帝)때 회양(淮陽)태수. 자는 長孺) 습유(拾遺)의 소원을 알고 나서 애초에 회양(淮陽)으로 보낸 것은 박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臣)이 삼가 듣건대, 의주(義州)는 성초(星軺․주: 지위 높은 가마)가 지나다니고 사신이 경유하는 접경입니다. 중국에 대한 대책이 응당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조조[宣廟朝]에는 비로소 오로지 문리(文吏)를 쓰는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의주(義州)의 일이 용천(龍川)과 철산(鐵山)으로 옮겨지고, 의주(義州)는 다만 강변에 있는 하나의 큰 진(鎭)이 되어 있습니다.
신(臣)은 사건을 겪어보지 못한 백면서생(白面書生)으로서, 그것을 감당하여 어찌 조정(朝廷)에서 차견(差遣)하는 뜻에 저버리지 않고, 능히 적의 침입을 막고 외세를 막겠습니까. 신(臣)이 물불을 가리지 않아야 할 뜻을 모르지는 않사오나 그 불가함을 알면서 억지로 하다가 끝내 반드시 조정에 서쪽을 경계하는 염려에 영향을 끼칠까 매우 두렵습니다. 형편이 막히고 말이 궁박하여 머리를 들자니 스스로 울음이 받칩니다. 삼가 원컨대 전하(殿下)께서 비국(備局.․주: 비변사)에 물으시어, 빨리 거두시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 새로 명(命)을 주시면 공사(公私)간에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신(臣)은 황공하게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삼가 어리석어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나이다.
전하께서 답(答)하여 말씀하시기를,「소(疏)를 살피니 적을 방어하는 길이 재주와 지혜에 있지 어찌 궁마(弓馬)에 있겠는가를 잘 알겠노라. 죽을 때까지 지키어 버리지 말라. 오직 충의지사(忠義之士)만이 그렇게 할 수 있지, 어찌 다만 무신(武臣)만이 맡겠는가. 마땅히 사직하지 말고 속히 부임하도록 하여 조정(朝廷)으로 하여금 서쪽을 경계하는 염려를 없게 하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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