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담김시양문집(4)-상소문(체찰사 사직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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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7-11-28 08:59 조회1,997회 댓글0건본문
체찰사(體察使)를 사직한 차(箚)-사체찰사차(辭體察使箚)
신미(辛未. 인조 9년. 1631)
*출전 : <하담문집>(2001년. 하담문집 발간추진회 간. 186P)
삼가 이달 22일에 정부의 특명으로 신(臣)을 숭정(崇政)으로 특진시켜 체찰사(體察使)1)로 임명하셨습니다. 오늘날 체찰사의 임무는 참으로 막중한 책임입니다. 그 사람은 나랏일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오리까. 그러나 신(臣)은 감히 감당하지 못할 자임을 잠시 논하는 것은 접어두고, 다만 신(臣)의 답답한 마음과 황공한 정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삼가 천지(天地) 부모(父母)와 같이 조금이나마 살펴 주소서. 신(臣)은 단지 빈약하고 보잘 것 없고 못나고 어리석어 하나같이 사람 섬김을 깨우치지 못하였습니다. 성명(聖明)을 만나 뵙고 하늘같은 덮음과 바다와 같은 포용으로 모두 거두어 주셨고, 아울러 띠 더미를 쌓듯 남김없이 해 주셨으며, (저를) 여러 무리 중에서 뽑아 역력히 밝혀 화려하게 드러내어 주시어 금옥(金玉)의 반열에 갑자기 오르게 되었습니다.
저 개 같은 무리(청나라)들이 계속 엿보며 횡행해 오자 잘못된 은혜를 입어, (저는) 가장 중요한 병(兵)의 자리에 발탁되었으니, 이는 실로 평생에 꿈에도 이르지 못할 바이옵니다. 놀라고 황공하여 발걸음이 오므라들어 진심으로 봉장(封章)을 참으로 격식을 갖춰 올리지 못하옵니다. 힘써 몸을 구부려 열반에 나가려 해도 나귀의 재주이기에 이는 호리병을 그려 놓은 것과 한가지입니다.
지금 반년에 이르기까지 꾀한 바라고는 장부를 집어 이름을 부르며, 예에 따라 기록을 헤아리는데 지나지 않을 뿐이었고, 군정(軍政)에 보탬이 되도록 하나의 책략을 꾀하거나 하나의 계획을 바치지도 못하였습니다. 소심하게 벌벌 떨며 녹이나 받아 먹는다는 두려움을 항상 품고, 아무 것도 못했다는 꾸지람이나 들을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이번에 또 품계에 발탁되는 은총을 입어 숭반(崇班)에 올라 체찰사(體察使)의 칭호를 주시어, 명을 받으니 두려워 몸둘 바가 없고 헤아릴 바가 없습니다.
지금 현재 경열(卿列)에는 종사(宗社)에 공을 남길 만한 재주와 기량에 두루 우수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臣)은 조그맣고 외로운 자취로서 성격이 고집스럽고 바탕이 우둔하여 세상일에 통달하지 못하며, 그 재주로 말하면 추호도 잘하는 것이 없으며, 실적으로 논하면 조그마한 공로도 족히 하지 못하고, 세상 물정에 마땅하지 못하여 하찮은 것이 앞에 있더라도 눈길을 내려 버리며, 뭇 사람의 마음은 해괴하고 색다른 것을 구하려고 바라나, 실로 이러한 것들이 있음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삼가 선조(宣祖)대왕께서는 밝으시기가 해와 달 같으셔서 사람을 씀에 마치 저울과 같이 하며 40년간을 집무하셨지만, 단지 두 세 사람만이 차례를 밟지 않고 올려 썼는데, 이이(李珥. 주: 1536-1584. 자 叔獻. 호 栗谷. 본관 德水. 시호 文成), 노수신(盧守愼․주: 1515-1590. 자 叔獻. 호 蘇齋. 본관 光州. 시호는 文簡) 등은 모두 유림(儒林)의 종장(宗匠. 주: 經學에 밝은 사람)으로 조야(朝野)에 두터운 신망이 있었으므로 선조(宣祖)는 공론에 따라 그들을 썼을 뿐입니다. 신(臣)과 같이 내세울 공이 없으면서 홀로 사사로운 은혜를 입고, 일년 안에 자격을 올려 서열을 높여 여기까지 이른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관작(官爵)은 너무 분에 넘치고, 명성과 재주가 너무 가벼우면 천도(天道)에 어긋나서 귀신이 가득하여 나무랄까 두렵습니다. 신(臣)은 비록 지극히 어리석으나 또한 스스로 아낄 줄을 아는데, 어찌 감히 영광을 탐내기에 연연하여 몽매함을 무릅쓰고 조정에 수치를 끼침에 치달아, 도망하기 어려운 요물을 스스로 만들겠습니까.
삼가 바라옵건대, 전하(殿下)께서는 몹시 간절함을 굽어살피시어, 신(臣)에게 명령하신 글에 응하지 못하여 사양함을 간절히 이해하시어 명을 거두시고, 두터운 명성과 재주 있는 사람으로 바르게 고쳐 저의 직분에 안주하도록 하여 주시면 공사가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절실함을 이기지 못하여 방황하기에 이르렀사오며, 삼가 죽을 죄를 지었음을 아뢰나이다.
(전하께서) 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소(疏)를 보고 경(卿)의 간청함을 모두 잘 알았노라. 이제 이 발탁하여 임용함은 실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부합한 것이니, 모름지기 다시는 사임하지 말고, 모든 일에 더욱 힘쓰도록 하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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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체찰사(體察使) : 국가에 전란이 일어났을 때 임금을 대신하여 그 지방에 나아가 일반 군무를 총괄하는 직책. 재상이 겸직하는 것이 상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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