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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담김시양문집(9)-상소문(화폐 사용에 관한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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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7-12-15 14:54 조회1,3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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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錢貨)를 아뢴 차(箚)-진전화차(陳錢貨箚)


돈(錢)이라는 것은 도구로 쓸 수는 없습니다. 추워도 입을 수도 없고, 배가 고파도 먹을 수는 없으나 천하에 통할 수 있는 게 화폐인데, 옛날에는 화천(貨泉)이라 하였는데 그것이 근원이 되어 유포(流布)되었기 때문입니다. 샘(泉)이 막혀 흐르지 않으면 물이 썩어 마실 수가 없습니다. 요즘 이미 전폐(錢幣)를 만들었으나 그 흐름이 열리지 않아, 나라 가운데 퍼지지 못하여 죽은 화폐가 되고 있습니다.

상평(常平)에서 전(錢)을 주조한 것을 삼수(三手. 주: 射,殺,砲軍으로 임진왜란때 조직됨)에 십분의 일의 급료를 주었는데, 처음에 백성에게 걷겠다는 명령이 미처 있지를 않았으므로 삼수(三手)가 받은 돈이 모두 상평(常平)으로 가니, 상평의 쌀에는 한계가 있어 죄다 살 수 없자,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돈이 다니지 않게 된 것은 국가에서 돈으로 부세(賦稅)하는 제도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만 민간으로 하여금만 팔며 돌게 하면, 백성이 믿지 않을 것은 또한 사세(事勢)가 마땅합니다.

경기(京畿) 각 관(官)이 해당 조(曹)에서 듣기를 지난해 쌀을 받으며 돈으로 받겠다는 영(令)을 미처 받지 못 했지만, 이미 와서 납부한 자가 있어서 그 때문에 서울 근방에서는 돈을 무역하며 백성에게 세금을 내는 제도로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바깥 지방에서는 주조(鑄造)하지를 않고, 다만 서울 안의 돈으로 바깥 지방에 유포(流布)하도록 하면, 다만 돈이 바깥지방에만 가게 되어 제멋대로 하다보면, 그 값을 모두가 방납(防納. 주:貢物을 돈으로 납부하는 것)하려는 사람으로 하여 바깥 지방에서는 그 폐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신(臣)등의 뜻은 일년에 일본(日本)에서 오는 3만 근의 구리를 안동(安東), 전주(全州), 공주(公州) 등에서 주조하여, 서울 보다 조금 그 값을 높여 백성에게 고루 사게 하며, 또한 어느 정도의 색리[色]의 급료 중에서 얼마의 곡식 섬(石)과 돈을 서로 값을 쳐서 받도록 하고, 백성들에게 돈으로 바치게 하면 백성들은 세금을 더 내는 폐단도 없을 것이며, 나라의 본래의 쌀도 그냥 그대로 있게 될 것입니다.

돈으로 관에서 세금을 받으면 사다가 관(官)에 납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돈은 정체됨이 없이 통행할 수 있습니다. 관에 납부할 때에도 또한 포목 필이 기니 짧으니, 미곡이 깨끗하니 거치니 하면서 점검해서 퇴자 놓는 걱정도 없게 되어, 민심(民心)은 반드시 기뻐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서울과 지방의 값이 다르면 곤란하리라고 여기는데, 이는 모두 깊이 생각하지 않은 데서 나온 말입니다. 미곡(米穀)은 서울에서는 품귀하고, 지방에서는 흔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물건을 미곡으로 사고 팔면 지방은 흔하고 서울은 품귀 한데, 사관기록[史記]에 쌀 한 말에 관내(關內)가 7-8 전(錢)이면 관 밖은 14-15 전으로 관찰됨을 알 수 있습니다. 돈 값이 서울은 작으나 지방이 많으므로, 돈 있는 사람은 시골에서 미곡을 사고 곡식이 있는 사람은 서울에서 돈으로 바꾸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서울에서 쌀을 모으려하면 돈은 지방으로 돌아가게 되어 백성에게 세금을 내게 하면 백성은 관(官)에 내는 관납(官納)을 낼 수가 있게 되며, 관(官)은 백성에게 공급하여 두루 유통할 수 있어 정체됨이 없이 돈은 바야흐로 통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돈에 어찌 일찍이 정가가 있었습니까. 풍년 든 해에는 쌀이 3-4 전이고, 흉년든 해에는 쌀 한 말에 수백 전에 이르는데, 요즈음 민간에는 돈이 있지 못합니다. 돈이 국가에서 나오는 까닭에 그 값을 정해서 표준으로 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몇 년 뒤에 기다리다 보면 민간에도 있게 되어 화폐를 통용하게 되면 안정되게 두 가지가 아닌 값을 지킬 것입니다.

상감께서는 송도(松都)에서 주전(鑄錢)함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성인(聖人)이 생각하는 바를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바깥에서 주조하는 것이 민간에 폐가 될 것으로 여기지만, 서울에서 주조함에는 숯을 지방[外方]에서 구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서울에서 주조하는 폐단은 지방에서 주조하는 것보다 클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인심은 옛 것에 익숙한 것이 평상 때의 습속이어서, 새로 만든 것에는 해괴해 합니다. 국가가 잠시 한 가지 일을 설정하면 위로는 조정에 이르기까지 마음대로 떠들어대며 서로 이야기를 얽어 이르지 않음이 없어 마침내 동요(動搖)하기에 이르렀다가 뒤에는 그칩니다.

지난번 대동(大同)법이 행해지지 않고 호패(號牌)법을 도로 그만 둔 것이 모두 여기에 연관된 것이고, 전폐(錢幣)의 설치는 수 백 년 전에 나왔지만, 오랫동안 폐지하고 난 다음에는 백성에게 과세하는 제도를 세우지 못 했습니다. 돈을 구하러 다녀봐야 이는 오히려 그 근원을 막아버리면서 그 유통을 구하는 것으로, 이같이 말하자면 돈이 다니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 다시 없애는 시행을 하려면 무슨 일로 하여야겠습니까. 단지 팔짱만 끼고 해가 짐을 기다리며 앉아 있을 뿐입니다.

전폐(錢幣)의 시행은 처음에는 유통되는 화폐의 이해와 관계가 있었지만, 지금은 전환되어 국가의 가볍고 무거운 백성에게 과세하는 제도가 되었으므로, 지방에서 주조하는 것은 때때로 거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단단히 정하여 꼭 행하겠다는 뜻을 보여주실 것을 마땅히 감히 계(啓)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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