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군(金將軍)의 대첩비(大捷碑) 뒤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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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7-12-17 09:19 조회1,474회 댓글1건본문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지음-
옛적에 일찍 회서비(淮西碑)를 읽으며
홀로 한산두(韓山斗)의 문장을 사랑하였으니
꾀가 많은 신하와 용맹한 장수가 먹구름 같이 모이여
다만 수개의 고을과 승부(勝負)를 다투었네.
누가 우리 공(公)과 같이 외로운 성을 지키면서
능히 백만여(百萬餘)의 흉추(凶醜)를 물리치랴.
공(功)을 새겨 강(江) 머리에 우뚝하게 대첩비 세웠으니
천추(千秋)에 그 이름 사라지지 않으리라.
공(公)께서는 옛적에 우도(牛刀)로 한번 베기를 시험하니
백리(百里) 안에 군민(軍民)들이 부모(父母)처럼 생각했네.
관아(官衙) 일 끝나면 허리띠 늦추고 용천검을 보살피시었네.
한가하게 않았으면 가슴속엔 큰 울분을 토 하였네.
불길(不吉)한 별이 한 밤중에 자미성(紫微城)을 쏘니
견양들이 날뛰어 온 세상이 놀랐네.
이십사군(二十四郡)의 남자가 누구누구라던가?
치세(治世)를 잘하는 남자, 여자가 모두모두 우리백성이라네.
한 몸으로 나라를 지켜내니
나라에서는 도리어 장태수(張太守)로 삼았도다.
적의 세력은 장대하고 달무리 지는데
시석(矢石)이 분분(紛紛)하여 좌우(左右)가 어지럽더라.
의기(意氣)가 안한(安閒)하여 싸우지 않는 것 같이 보였고
거문고를 울리고 쇠고기와 술을 주면서 군사를 격려했네.
인정(人情)이 의지함은 태산(泰山)과 같고
모두가 목숨을 버릴 줄 알았으니 또한 훌륭하도다.
저들은 포악(暴惡)하나 우리는 의(義)로서 하니
오랑캐들 약(弱)하고 우리들 강(强)한 줄을 그대들은 믿었던가?
마침내 흉적(凶賊)들 조수(潮水)처럼 물러나게 되고
베어 죽인 시체(尸)는 삼대(麻)와 같고 언덕과 같았도다.
유성(流星)이 지나는 곳에 장성(將星)이 떨어지니
애석하게도 온 경내가 다투어 분주(奔走)하였네.
비, 구름이 처음으로 제거(除)되니 병몽(帲幪)도 걷히어
풍성한 공(功)과, 거룩한 의열(義烈)을 사람들이 입으로 전하네.
국가의 포증(褒贈)은 진운(縉雲)의 관직(官職)이며
인각(麟閣)에 웅장한 이름은 영구(永久)히 전해져서
서민(庶民)들은 자래(子來)하여
차아(嵯峨)를 바라보노라.
삼척(三尺)의 높은 글씨가 주먹같이 크기도 한데
우리 백성은 보는 사람마다 모두가 눈물지으니
날지 않는 비석 현수(峴首)에 머무는데
보는이 마다 손으로 만져보고 소매로 털어내니 석면(石面)에 이끼도 끼이지 못하는데
대(臺)를 시(詩)의 제목으로 삼아 사람들로 하여금 부(賦)를 쓰라하나
어찌 천균(千鈞)의 필력(筆力)으로 그 뒤에 쓰겠는가?
<註>
1. 한산두: 한퇴지의 높은 문장을 말함.
2. 牛刀: 큰 재주를 적은 일에 씀을 비유한 것임.
3. 龍泉劍: 칼 이름.
4. 犬羊: 미천한 왜적 무리들.
5. 병몽(帲幪): 가리고 덮히었던 것.
6. 진운(縉雲): 은전
7. 인각(麟閣): 나라에 공을 세운 공신의 사진을 걸어서 공훈을 길이는 집.
8. 차아(嵯峨): 산 같은 것을 우러러 봄.
9. 현수(峴首): 산머리
10. 부(賦): 시의 일종.
출전: 국역충렬실록(진주문화원)
댓글목록
관리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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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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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홈 <김시민>란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