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金得臣의 문학과 생애 12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2-06-08 23:09 조회1,496회 댓글0건

본문



金得臣의 문학과 생애 12





시문의 대가 백곡 김득신 -03

---김길자 (수필가, 증평문학회원, 한국문인협회이사)

---증평문화 제5집 (2001.12)







또한 어느해 10월, 조상 時享에 참례차 묘 앞에 올라간 득신은 마침 준비하여 가지고 간 향로 불이 꺼져서 묘지기가 묘막으로 불씨를 가지러 간 동안 초겨울 산꼭대기 모진 바람에 추위에 이기지 못한 나머지 祭酒로 가지고 갔던 술을 한잔두잔 하다보니 제주 술을 모두 마시고 말았다.





묘지기가 향로 불을 가지고 왔으나 술이 없는지라 친족을은 황망하여 이를 어찌해야 하느냐고 떠들어대었다.



득신은 천연스럽게 "신에게는 告由만 잘하면 그만이야" 하고는 향을 피우고 나서 "서산 낙일에 냉풍이 凄凄(처처)라. 후손이 불초하와 不堪寒氣(불감한기)옵기 제주를 절음하였사오니 不勝惶恐(부승황공)이로소이다." 하고 告由로 제주에 대신하였다는 것은 득신만이 할 수 있는 임기웅변의 기제라고 할 수 있다.









어느때 득신은 시붕을 찾아가려고 마부를 찾았으나 마부가 어디를 갔는지 행방을 알 수 없으므로 부득이 친히 나귀를 끌고 나섰다.



나귀등에 올라앉을 때부터 시를 생각하느라고 나귀를 채찍질하여 행방을 가리키지 않고 나귀가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귀는 바로 저희집 대문 밖 풀밭에서 한발자국도 가지 않고 그대로 풀만 뜯어먹고 있는 것도 미처 생각할 겨를없이 글 생각만 골똘히 하고 있었다.







나귀 등에 올라 앉아 폭양 밑에서 종일 시만 읊고 있는 것이 보기에 너무나 딱하여 거진 석양 때나 되어 날이 몹시 더우니 그만 들어오시라고 부인이 하인에게 일렀다.



그도 모르고 자기가 찾아 가려던 시붕의 집인 줄로만 알고 조심스럽게 따라 들어가서 대청 위에서 부인들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고 어째서 내실로 인도를 하는가 의심을 하면서 부채로 얼굴을 가리었다.



부인이 자기 집에서 내외를 하는 것이 하도 우스워서 "영감 여기를 뉘 집으로 아시고 이러는 것입니까. 우리 집이니 안심하시고 어서 들어오십시오" 하니



득신은 그때까지도 자기 집인 줄 모르고 "여보 마누라는 무슨 볼일로 이 댁에 오셨소?" 하였다는 것도 득신의 행상으로서는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늘 나귀 고삐만 들고 다니던 마부가 다른 하인은 시골로 농토를 주어 보내어 잘 살게 하면서 자기는 삼십년 동안이나 나귀만 몰고 다녀도 잘 살려줄 생각을 아니하므로 하루는 사랑문 앞에 가서 "영감마님 소인이 삼십년이나 모시고 다니었사오니 인제는 늙은 몸이라 나귀도 끌 수 없고 농토나 주시면 시골로 가서 살겠으며 만일 농토를 아니 주시면 소인대로 나가서 살겠습니다. " 하니



득신이 대답하기를 "네가 가고 싶거든 가려무나" 하고 말을 해 놓고 생각해보니 "얘, 네가 명세로구나. 난 누구라구. 네가 나의 글 채운 공분도 있고 정리도 다른 하인과 다른데 나를 두고 어딜 가려느냐. 북 배위 논 열 두락을 문서까지 줄 것이니 너의 아들에게 농사를 지어라 하고 너는 가지 말아라" 하였다.



이것은 혼탁한 분이 평생에 명쇠의 뒤만 익숙하고 앞은 잘못 알아보아 처음에는 하직을 하여도 무심하였던 것이다.

















▣ 김재원 -

▣ 김태서 - 글 감사합니다.

▣ 김항용 -

▣ 태영(문)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