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시군지순례 23-2.(연천군 : 숭의전 제향)

페이지 정보

김윤만 작성일02-07-03 07:29 조회2,785회 댓글0건

본문

■ 숭의전(崇義殿) 제향.(장철수 : 한국정신문화연구원교수) ■





▣ 숭의전 연혁. pp777~778.



--숭의전은 조선시대에 고려 태조와 일곱 왕을 제사 지내던 곳으로 미산면 아미리에



있다. 1392년(조선 태조 원년)에 전각을 창건하였으며, 1399년(정종 원년)에 태조를



모시고, 혜종(惠宗). 정종(定宗). 광종(光宗). 경종(景宗). 성종(成宗). 목종(穆宗). 현종



(顯宗)을 추배하였다. 1425년(세종 7)에는 신 왕조의 국가 이념인 주자학적 제례 체



계에 의한 4대 봉사(奉祀) 원칙에 의거 태조. 현종. 문종. 원종(元宗) 4위만 모시고



봄. 가을에 중사의 규모로 향사(享祀)하였다.



--1451년(문종 원년) ‘숭의전(崇義殿)’이라 명명하였으며, 고려조의 충신 정몽주(鄭夢



周) 외 15인의 16공신을 정배(庭配)하였다. 그리고 왕순례(王循禮) 등 고려 왕족의 후



손들로 하여금 이 곳을 관리하게 하였다. 1512(중종 7) 여름에 중종은 작은 소를 잡



아 제사를 지내게 했고, 1575년(선조 8) 정미 풍기 용천사에 모셨던 고려 태조의 진



영을 이안하였다. 선조 때는 고려조 왕씨(王氏) 후예에게 참봉을 제수하여 전각의 수



호와 향사를 지내게 하였다. 1731년(영조 7) 영조는 승지를 이 곳에 보내 제사 지냈



으며, 1789년(정조 13)에는 이 건물을 고쳐 지었다. 처음에는 사(使, 종3품)․수(守,



종4품)․ 영(令, 종9품)․ 감(監, 종6품)․여릉참봉(麗陵參奉, 종9품)을 1인씩 두었으



나, 뒤에 와서 사와 수는 없앴다. 1869년(고종 6)과 1908년(순종 2)에 걸쳐 중수한 바



있다.



--한일합병 후에 조선총독부에서 관리의 책임을 지고 왕손 후예로 참봉을 임명하였



으며, 경기도지사가 제관이 되어 3월과 9월 중정일(20일)에 봉사하였으나, 1950년 한



국전쟁으로 인해 전각이 완전 소실되었다. 1959년 음력 9월 20일 전지(殿址)에 감설



존위(敢說尊位)하고 봉사 하기 시작하여, 1971년 12월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223호)



로 지정되었다. 다음 해 국비로 기단(홍살문 포함)을 준공하였다. 1973년 10월 종재



(宗財)로 정전(正殿)이 복원되었고, 1975년 12월 국비로 배신청(陪臣廳)이 준공되었



다. 1976년 12월에는 국비로 이안청(移安廳)이 준공되고, 다음 해 12월에는 남문과



중서문(선단 포함)이 준공되었다. 1980년 12월 역시 국비로 장선(墻塇)이 준공되고,



1984년 12월에 국비로 전사청(典祀廳). 재실(齋室). 고직사. 화장실(부대시설 포함)이



준공되었다. 1987년 6월 국비로 선단(塇壇, 서문포함)․ 정전․ 어수정(御水井) 보수



및 석축 공사가 이루어졌고, 같은 해에 주차장 시설이 준공되었다.



--현재 개성왕씨 중앙종친회와 숭의전보존회는 매년 음력 3월 3일(청명)과 9월 3일



에 숭의전 춘추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숭의전보존회에서 전하는 안내문을 살피면 다



음과 같다.



--숭의전은 고려 태조를 모신 신전이다. 고려 태조께서 일찍이 태봉국(궁예)에 출사



(出仕)하실 무렵, 송악(개성)으로부터 철원까지의 중간 지점에 소재한 마전(麻田) 앙



엄사(仰嚴寺)에 자주 들르시곤 하였는데, 이곳이 산수가 수려하여 등극하신 후 이 절



을 원찰(願刹)로 정하셨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 초기 고려 왕손들이 무자비하게 참



화를 당할 무렵, 어느 날 이태조에게 고려 태조께서 현몽하시어 “나라를 찬탈한 것으



로 족할 것이지 어찌하여 나의 후손까지 명절하려는고”하고 꾸짖으면서 그에게도 큰



화가 마칠 것이라고 하시었다. 이태조는 뉘우친 나머지 무학도사에게, 고려 태조의



영혼이 그토록 영감(靈感)하다면서 석선(石船)이라 도 능히 부상시킬 수 있을 것이니



태묘에 모신 신주 위패를 석선에 실어 강물에 가라앉히라고 명하였다고 한다. 명을



따라 석선에 모신 바 놀랍게도 석선이 부상함으로 이태조는 무학을 이에 오르게 하



여 석선이 향하는 대로 모시라 하니 석선은 임진강을 역류하여 적성군 서방에 있는



신주강(新主江, 신지강), 현 숭의전으로부터 약 5km 상류 지점인 마산면 한 나루터에



도착하여 머무름에 이르렀다. 무학이 그 주변을 살펴보니 과연 명지(名地)인지라 이



곳이 모실 자리라 마음을 전하고 쇠닻줄을 매 두고 내려 나루터에 유(留)하던중, 한



밤중에 느닷없이 뇌성번개를 동반한 풍우(風雨)가 대작(大作)하며 천지가 진동하므로



참으로 괴이하게 여기었다. 다음 날 아침 나루터에 나가 보니 매여진 쇠닻줄은 하룻



밤 사이에 썩어 끊어지고 석선은 간데없이 사라져 보이지 않자, 무학이 황급히 각지



로 찾아 보니 현 숭의전 옆 잠두봉(蠶頭峰)에 닿아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이



곳을 살펴보니, 전의 곳과는 비교할 수 없는 명지임을 깨닫고 이 곳에 모시게 되었



다고 한다. 그 후부터 석선이 닿은 나루터를 일컬어서 ‘썩은 쇠나루’ 라고 부르게 되



었다고 한다. 드디여 묘우(廟宇)를 창건하려는데 기이하게도 앙엄사 주지에게 고려



태조께서 수차례 현몽하여, 이상하게 여기고 즉시 불상과 사찰의 제기구를 옮기고



살피려는데, 홀연 풍우가 대작하더니 사우(寺宇)가 쓸려서 강물속으로 떨어져 잠기게



됨에 이으러 이 터에 전각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마전군지(麻田群誌).





▣ 대제분정기(大祭分定記) 및 배치. pp779~781.



1. 분정기



--제향의 주체측은 개성왕씨 중앙종친회와 숭의보존회이다. 제향은 1년에 2번 행해



지는데, 춘향은 음력 3월 3일이고, 추향은 음력 9월 3일이다. 봉행 시간은 대체로 오



전 11시에서 오후 1시까지이다.



--1998년 10월 22일에 행해진 숭의전 대제의 분정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초헌관(初獻官) : 이중익(연천군수)



○ 아헌관(亞獻官) : 박재하(고려사 학자, 고려숭의회 이사, 전 서기관)



○ 종헌관(終獻官) : 왕교수(숭의전 참봉)



○ 봉조관(奉俎官) : 왕제용(전 숭의전 참봉)



○ 분헌관(分獻官) : 강호춘(진주강씨 중앙종친회 상근 부회장)



- - - - - - - - - 윤성태(파평윤씨 대종회 부회장)



- - - - - - - - - 김남두(언양김씨 대종회장)



- - - - - - - - - 김윤식(고산김씨 대종회장)



- - - - - - - - - 봉례관(奉禮官) : 왕제성(전 숭의전 참봉, 고려숭의회 이사)



○ 전사관(典祀官) : 왕교수 겸임.



○ 태축관(太祝官) : 유기주(문화유씨 대종회 부회장, 전 양천향교 전교)



○ 집례관(執禮官) : 안대환(통일안보 전문위원)



○ 사존관(司尊官) : 김현우(언양김씨 대종회 충남본부장)



○ 알자(謁者) : 왕윤현(성균관 사의)



○ 찬인(贊人) : 박무길(성균관 천학)



○ 봉향(奉香) : 장세덕(전교장)



○ 봉로(奉爐) : 이상목(함안이씨 종친회 사무총장)



○ 봉작(奉爵) : 왕연돈(개성왕씨 종친회 연천지회장)



○ 전작(奠爵) : 김형식(밀양김씨 대종회장)



○ 원(原)



고려기원일천팔십일년무인구월초삼일(高麗紀元壹千八十一年戊寅九月初三日)





2. 제향시 배치도.[생략]





3. 정전신위배치



북(北)



-△

太祖神聖皇帝(태조신성황제)





顯宗元文大王(현종원문대왕) 文宗仁孝大王(문종인효대왕)



- - - - - - - - - - - - - - - - - 元宗順孝大王(원종순효대왕)





---서문- - - - - - - - -중문- - - - - - - - -동문



서계(西階)- - - - - - 신도(神道) - - - - - -동계(東階)





4. 배신청신위배치(도표 게재 미숙으로 16공신만 나열함)



武恭公 卜智謙 文烈公 金富軾 忠烈公 洪儒 威烈公 金就礪 壯節公 申崇謙 文正公 趙沖



忠節公 庾금弼 忠烈公 金方慶 武烈公 裵玄慶 平章事 安祐 章威公 徐熙 樞密副使 李芳實



仁憲公 姜邯贊 政堂文學 金得培 文肅公 尹瓘 文忠公 鄭夢周



상(床)(진설도참조) 상(床) 상(床) 상(床)



북(北) ◁





▣ 제사행사법. pp782.



--제사 행사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를 11가지로 나누어 차례대로 살펴보면 다



음과 같다. 먼저 보법(步法)으로 층계를 상하(上下)할 때는 두 발을 합해서 연보(蓮



步)하고, 주선(周旋)할 때에는 단형(丹形)으로 하고 절선(折旋)할 때에는 방형(方形)



으로 한다. 묘중(廟中)에서는 단정히 두 손을 모으고 걸어야 하며 활개를 쳐서는 안



된다.



--배법(拜法)으로 좌수(左手)로 우수무지(右手拇指)를 잡고서 절한다. 묘(廟). 전(殿).



궁(宮). 능(陵)에서는 사배(四拜)하되, 헌관(獻官)은 정면을 향하지 않고 배(拜)하는



곡배(曲拜)를 행하며, 제집사(諸執事)는 정면을 향하여 배하는 직배(直拜)를 행한다.



묘(墓)에는 재배(再拜)하되 헌관과 집사가 다 직배한다.



--승강계법(昇降階法)으로 동계(東階) 및 태계(泰階)를 승(昇)할 때는 우족(右足)을



먼저 내고 강(降)할 때는 좌족(左足)을 먼저 내딛는다. 서계(西階)를 승할 때에는 좌



족을 먼저 내며 강할 때는 우족을 먼저 내딛는다.



--출입문법(出入門法)으로 정문(正門)과 동문(東門)을 입(入)할 때에는 우족을 먼저



내며 출(出)할 때에는 좌족을 먼저 내딛는다. 서문(西門)으로 입할 때에는 좌족을 먼



저 내며 출할 때에는 우족을 먼저 내 딛는다.



--포법(跑法)으로 포(跑)할 때는 우족을 먼저 굽히고, 입(立)할 때는 우족을 먼저 편



다.



--제물봉헌법(祭物奉獻法)으로 제물의 진설. 철퇴(撤退). 전작. 존작시에는 면수(俛首



: 가벼운 탈)하고 흉고(胸高)와 같이 봉(奉)한다.



--국궁법(鞠躬法)으로 신위(神位)나 신상(神床)앞에 서거나 지나갈 때에는 반드시 국



궁(鞠躬)한다.



--전수법(傳授法)으로 작(爵). 향(香). 노(爐) 등을 전수(傳授) 할 때에는 입자(立者)



에 대해서는 입(立)하고 좌자(坐者)에 대해서는 좌(坐)한다.



--집홀법(執笏法)으로 우수의 모지(母指)와 소지(小指)를 안으로 하고 다른 삼지(三



指)를 밖으로 하여 홀(笏)을 쥐고 좌수의 모지를 안으로 하고 다른 사지(四指)를 밖



으로 하여 우수를 덮어 싸되, 입시(立時)에는 배꼽에 대고 좌시(坐時)에는 가슴에 댄



다.



--봉출신주(捧出神主)에서 대왕위가 선이고 왕후위가 후이다.



--납신주(納神主)에서 대왕위가 후이고 왕후위가 선이다.





▣ 진설(陳設). 축문(祝文). 망기(望記). pp783.



○ 진설도



- - - - - - - - - - 신주 영정





조기 미나리 돼지고기 수수떡 멥쌀떡 대구포 잣 육포



- - - -도라지 소고기 메 조 밤 호두



- - - -닭 무 부추 수수 조 소금 대추 은행



- -<초> 소고기 <어주> 돼지머리 <어주> <초>





- - - - - - - - -향로 향나무 바구니



○ 축문



太祖皇帝(태조황제)



維(유)



高麗紀元壹千八十一年歲次 戊寅九月庚子朔初三日壬寅

(고려기원일천팔십일년세차 무인구월경자삭초삼일임인)



漣川郡守李重翼敢昭告于(연천군수이중익감소고우)



高麗太祖應運元明光烈大定 睿德章孝威穆仁勇勇烈

(고려태조응운원명광열대정 예덕장효위목인용용열)



神聖皇帝 伏以 順天應仁 再統三韓 東明舊壤 吾家靑氈

(신성황제 복이 순천응인 재통삼한 동명구양 오가청전)



固己國脈 乘統五百 鴻功偉業 永世不刊 時維仲秋

(고기국맥 승통오백 홍공위업 영세불간 시유중추)



謹以梁盛牲醴 式陣明薦(근이양성생례 식진명천)



尙饗(상향)





○망기(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씀)



望(망)



崇義殿(숭의전) 享大祭(향대제)





原(원)



高麗紀元壹千(고려기원일천) 十年月日(십년월일)



- - - - - - - - - - - - -崇義仰巖齋中(숭의앙암재중)





▣ 제사절차. pp784.



1. 취위(就位). 진시(陳視, 점시진설). 개독(開櫝). 헌조(獻俎)



○집례관과 봉례관이 사당으로 입장하여 마당에서 네 번 절한 후 손을 씻는다.



○알자와 찬인이 장하여 무릅끓고 네 번 절한 후 퇴장한다.



○찬인과 태축관 및 집사들이 사당으로 입장하여 마당에서 네 번 절한 후 손을 씻고



--사준과 봉작은 사당안으로 오른다.(*원래 대축관이나 태조대왕에 대한 제향이기에



--태축관이라 한다고 한다. 제보자 : 왕준한)



○알자,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봉조관이 사당으로 입장한다.



○알자가 초헌관을 이끌어 사당에 오른 뒤 제물을 살펴보고 내려와 다시 자리에 선



--다. 이를 ‘진시’ 혹은 ‘점시진설’이라고 한다.



○봉례관과 태축관이 사당에 올라 신주독을 열고 내려와 다시 자리에 선다.(음악)



○헌관들과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무릅을 끓고 네 번 절한 후 일어선다.



--(음악을 그친다)



○알자는 초헌관을 이끌고 사당에 오른다. 초헌관은 오르기 전에 손을 씻는다.(음악)



○제 집사 4인이 사당 안으로 오른다. 사당의 동계(오른쪽 계단)로 올라 각자의 위치



--에 선다.



○초헌관은 태조의 신위 앞에 서고 집사가 향을 세 번 올린다.



○태축관이 모시가 든 광주리를 초헌관에게 준다. 초헌관은 모시를 신위 앞에 올린다.



○초헌관은 현종의 신위 앞에 서고 집사가 향을 세 번 올린다.



○초헌관이 모시를 집어 태축관에게 주어 모시를 신위 앞에 올린다.



○초헌관은 문종의 신위 앞에 서고 집사가 향을 세 번 올린다.



○태축관이 모시가 든 광주리를 초헌관에게 준다. 초헌관은 모시를 신위 앞에 올린다.



○초헌관은 원종의 신위앞에 서고 집사가 향을 세 번 올린다.



○태축관이 모시가 든 광주리를 초헌관에게 준다. 초헌관은 모시를 신위 앞에 올린다.



--(음악을 그친다)



○초헌관은 사당을 내려와 다시 자리에 선 후 네 번 절한다.



○알자가 봉조관을 이끌고 전사청에서 돼지머리를 들고 나온다.



○봉조관이 사당의 가운데 계단을 먼저 오르고 봉작이 계단 위에서 돼지머리를 봉조



--관에게 전해 주면 봉조관은 사당 안에 있는 봉작에게 준다.



○봉조관은 사당 안에 올라 태조의 신위 앞에 돼지머리를 올린다.



○봉조관은 사당을 내려와 다시 자리에 선다.





2. 초헌례(初獻禮)



○알자가 초헌관을 인도하여 사당 앞에 서면 초헌관은 손을 씻는다.



○초헌관은 사당의 동계로 올라 어주 앞에 서쪽을 향해 서서 술을 살핀다. 이를 ‘감



--작앙제(監酌盎齊)’라고 한다.



○집준관(執罇官)은 술 항아리의 종이 뚜껑을 연다.(음악)



○알자는 초헌관을 이끌고 사당 안으로 들어가 태조의 신위 앞에 선다.



○집준관이 술을 떠서 어주잔(御酒盞)에 담아 봉작에게 주면 봉작은 초헌관에게 건



--네 준다.



○초헌관은 무릅을 끓고 어주를 받아 태조 신위 앞에 올린다.(음악을 그친다)



○모든 참제원들은 엎드린다.



○태축관이 헌관의 왼쪽에 끓어앉아 축문을 읽는다.



○알자는 초헌관을 이끌고 현종의 신위 앞에 선다.



○집준관이 술을 떠서 어주잔에 담아 봉작에게 주면 봉작은 초헌관에게 건네 준다.



○초헌관은 무릅을 끓고 어주를 받아 현종의 신위 앞에 올린다.



○태축관이 헌관의 왼쪽에 끓어앉아 축문을 읽는다.



○알자는 초헌관을 이끌고 문종의 신위 앞에 선다.



○집준관이 술을 떠서 어주잔에 담아 봉작에게 주면 봉작은 초헌관에게 건네 준다.



○초헌관은 무릅을 끓고 어주를 받아 문종의 신위 앞에 올린다.



○태축관이 헌관의 왼쪽에 끓어앉아 축문을 읽는다.



○알자는 초헌관을 이끌고 원종의 신위 앞에 선다.



○집준관이 술을 떠서 어주잔에 담아 봉작에게 주면 봉작은 초헌관에게 건네 준다.



○초헌관은 무릅을 끓고 어주를 받아 원종의 신위 앞에 올린다.



○태축관이 헌관의 왼쪽에 끓어앉아 축문을 읽는다.



○독축(讀祝)이 끝나면 알자와 초헌관은 사당을 내려와 다시 자리에 선다.



○초헌관은 네 번 절한다.





3. 아헌례(亞獻禮)



○알자가 아헌관을 인도하여 사당 앞에 서면 아헌관은 손을 씻는다.



○아헌관은 사당의 동계로 올라 어주 앞에 서쪽을 향해 서서 술을 살핀다.(음악)



○알자는 아헌관을 이끌고 사당 안으로 들어가 태조의 신위 앞에 선다.



○집준관이 술을 떠서 어주잔에 담아 봉작에게 주면 봉작은 아헌관에게 건네 준다.



○아헌관은 무릅을 끓고 어주를 받아 태조 신위 앞에 올린다.



○알자는 아헌관을 이끌고 현종의 신위 앞에 선다.



○집준관이 술을 떠서 어주잔에 담아 봉작에게 주면 봉작은 아헌관에게 건네 준다.



○아헌관은 무릅을 끓고 어주를 받아 현종의 신위 앞에 올린다.



○알자는 아헌관을 이끌고 문종의 신위 앞에 선다.



○집준관이 술을 떠서 어주잔에 담아 봉작에게 주면 봉작은 아헌관에게 건네 준다.



○아헌관은 무릅을 끓고 어주를 받아 문종의 신위 앞에 올린다.



○알자는 아헌관을 이끌고 원종의 신위 앞에 선다.



○집준관이 술을 떠서 어주잔에 담아 봉작에게 주면 봉작은 아헌관에게 건네 준다.



○아헌관은 무릅을 끓고 어주를 받아 원종의 신위 앞에 올린다.



○알자와 아헌관은 사당을 내려와 다시 자리에 선다.



○아헌관은 네 번 절한다.(음악을 그친다)





4. 종헌례(綜獻禮)



○알자가 종헌관을 인도하여 사당 앞에 서면 종헌관은 손을 씻는다.



○종헌관은 사당의 동계로 올라 어주 앞에 서쪽을 향해 서서 술을 살핀다.(음악)



○알자는 종헌관을 이끌고 사당 안으로 들어가 태조의 신위 앞에 선다.



○집준관이 술을 떠서 어주잔에 담아 봉작에게 주면 봉작은 종헌관에게 건네 준다.



○종헌관은 무릅을 끓고 어주를 받아 태조 신위 앞에 올린다.



○알자는 종헌관을 이끌고 현종의 신위 앞에 선다.



○집준관이 술을 떠서 어주잔에 담아 봉작에게 주면 봉작은 종헌관에게 건네 준다.



○종헌관은 무릅을 끓고 어주를 받아 현종의 신위 앞에 올린다.



○알자는 종헌관을 이끌고 문종의 신위 앞에 선다.



○집준관이 술을 떠서 어주잔에 담아 봉작에게 주면 봉작은 종헌관에게 건네 준다.



○종헌관은 무릅을 끓고 어주를 받아 문종의 신위 앞에 올린다.



○알자는 종헌관을 이끌고 원종의 신위 앞에 선다.



○집준관이 술을 떠서 어주잔에 담아 봉작에게 주면 봉작은 종헌관에게 건네 준다.



○종헌관은 무릅을 끓고 어주를 받아 원종의 신위 앞에 올린다.



○알자와 종헌관은 사당을 내려와 다시 자리에 선다.



○종헌관은 네 번 절한다.(음악을 그친다)





5. 분헌례(分獻禮)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이 태조. 현종. 문종. 원종 대왕에게 제를 지낸후 16공신들



--의 신위를 모셔 놓은 배신청에 헌관 4명으로 하여금 제를 지내도록 한다.



○찬인은 모든 분헌관들을 이끌고 배신청에 오른다. 각 분헌관들은 오르기 전 손을



--씻는다.



○신위 네분마다 하나의 제상을 받으며 네명의 분헌관들은 각각 네분의 신위 앞에



--한 잔씩 술을 올리게 된다.



○봉작이 술을 따라 분헌관들에게 주면 분헌관들은 제상 앞에 무릅을 끓고 앉아 네



--잔의 술을 올린다.



○술을 올린 후 분헌관들은 두 번 절을 하고 물러나 자리로 돌아 온다.



○모든 참제원들도 두 번 절을 한다.





6. 수조례(受胙禮). 철변두(撤籩豆)



○알자가 봉작과 태축관, 초헌관을 이끌고 사당의 동쪽 계단으로 오른다.



○초헌관이 계단위에서 서향하여 네 번 절하여 끓어 앉으면 봉작은 태축관에게 태축



--관은 초헌관에게 술을 준다. 초헌관은 제사 올린 고기와 술을 받아 마신 후 내려



--와 자리로 돌아온다.



○초헌관의 수조례가 끝나면 모든 집사들은 사당에서 내려오고 태축관과 봉례관은



--다시 올라가 제물을 치우게 된다. 이를 ‘철변두’라고 한다.



○수조례의 진설은 다음과 같다.



수조례조





- - - - - - - - - - - - - - - - - - - - -(북 : 北)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사당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조



- - - - - - - - - - - - - - - -태축관 ◎고기 초헌관



- - - - - - - - - - - - - - - - - - - - - -☆어주



- - - - - - - - - - - - - - - - - - - -봉작 알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서계== ==신도== ==동계==







7. 망료례(望燎禮).



○알자가 초헌관과 함께 사당의 북쪽 마당으로 가서 북쪽을 향해 서 있으면 태축관



--은 사당의 서계로 올라 사당 안에서 축문을 가지고 나온다. 초헌관은 축문을 받아



--한쪽 귀퉁이를 가위로 자른 뒤 불태운다. 이를 망료례라고 한다. 망료례가 끝나면



--자리로 돌아온다.(*축문의 네 귀퉁이 중 한 쪽만 자른뒤 태운다. 멀쩡한 모시를 다



--태우게 되어 아까운 마음에 조금씩 잘라낸다고 한다. 제보자 : 왕준한)



○알자는 돌아와 초헌관에게 두 번 절을 하고 헌관들은 사당 밖으로 나간다.



○헌관들이 나가면 봉례관과 태축관도 나간다. 집례 7인이 뒤따라 나간 뒤, 남은 집



--례 2인이 신주를 닫고 사당문을 닫는다.



○헌관을 제외한 나갔던 집례관들은 다시 자리로 돌아와 네 번 절한 후 다시 나간다



○봉송(奉送)은 몇 년전까지만 해도 공식적으로 행해졌었으나 현재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제례악은 녹음된 것을 사용하며 초헌례에서 고축할 때를 제외하고 행해지고 있다.





참고자료 1. 숭의전 신위 봉안.(도표 게재 미숙으로 내용만 게재)



太祖應運元明光烈大定睿德章孝威穆神聖皇帝 : 初代王



顯宗大孝德威達思元文大王 : 八代王



文宗剛正明*章聖仁孝大王 : 十一代王



元宗順孝大王 : 二四代王



참고자료 2. 숭의전 정배공신.(16 정배공신 게재 미숙으로 생략)





▣ 김태서 - 잘 보았습니다.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 김주회 - 잘 읽었습니다.

▣ 김영환 - 감사합니다.

▣ 김재익 -

▣ 김은회 -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