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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육백년사 (9) 김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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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회 작성일02-07-28 20:02 조회1,4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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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김노(金魯)

【생몰년】 1498(연산군 4)∼1548(명종 3)

【본 관】 안동(安東) 김(金)

【자·호】 경참(景參), 동고(東皐)

【저서·작품】 《이가서법(二家書法)》, 〈제안대군침묘비(齊安大君琛墓碑)〉(글씨), 〈성청송수침묘비(成聽松守琛墓碑)〉(글씨), 〈영상정광필묘비(領相鄭光弼墓碑)〉(글씨)

【시 대】 조선 중기

【성 격】 문신, 서예가



1498(연산군 4)∼1548(명종 3).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참(景參), 호는 동고(東皐)이다. 대사헌 유연재(悠然齋) 김희수(金希壽)의 아들로 조선 중기의 문신 · 서예가이다.

20세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525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부정자(副正字)에 초임되고 이어 검열 · 정자를 지냈다. 1530년 저작(著作)으로 재직 중 김안로(金安老)의 석방을 비난하였다가 김안로가 다시 권력을 잡자 문의(文義)에 유배되었다. 1537년 김안로가 사사(賜死)되자 다시 직제학에 기용되었으며 첨지중추부사로 재직하던 중에 사망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론(學論)에 밝고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왕희지 · 왕헌지의 전기(傳記) · 필적(筆蹟)을 가지고 학습하였다. 조정의 각종 전책(典冊)과 고관명사들의 비문을 많이 썼다. 부자가 모두 명필로서 그의 필적으로 글씨를 새겨 간행한 《이가서법(二家書法)》이 있으며, 경기도 광주의 〈제안대군침묘비(齊安大君琛墓碑)〉 · 파주의 〈성청송수침묘비(成聽松守琛墓碑)〉 · 〈영상정광필묘비(領相鄭光弼墓碑)〉 등이 그의 글씨이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國朝人物考, 湖陰雜稿, 槿域書畵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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