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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육백년사 (21) 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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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회 작성일02-07-29 06:39 조회1,4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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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김시헌(金時獻)

【생몰년】 1560(명종 15)∼1613(광해군 5)

【본 관】 안동(安東) 김(金)

【자·호】 자징(子徵), 애헌(艾軒)

【저서·작품】 《선조실록(宣祖實錄)》

【시 대】 조선 중기

【성 격】 문신



1560(명종 15)∼1613(광해군 5).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징(子徵), 호는 애헌(艾軒)으로 김제갑(金悌甲)의 아들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선조 21년(1588)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검열(檢閱) · 사간(司諫) · 전한(典翰) · 정언(正言) · 사인(舍人) · 겸보덕(兼輔德) · 집의(執義) 등을 역임하고, 선조 30년(1597) 동부승지(同副承旨) · 우부승지(右副承旨) · 충청도 관찰사를 거쳐 대사성에 올랐다. 그 후 대사간 · 우승지 · 좌승지등을 역임한 후 1602년 소모관(召募官)으로 경상도에 갔다가 호색(好色)한다 하여 유생들의 탄핵을 받고 오위 부사직으로 좌천되었다. 그후 복수사(復讐使)의 종사관으로 신립(申砬)이 전사한 탄금대를 돌아보고 나서 임진왜란 후의 민심을 순무(巡撫)하고 성책(城柵)의 수축을 명했으며, 이듬해 동지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04년 순천 군수, 다음해 병조 참의, 이어 좌승지, 1607년 양양 부사 · 병조 참판을 역임했다.

선조가 죽은 후 동지중추관사(同知春秋館事)로 《선조실록(宣祖實錄)》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광해군 3년(1611) 예조 참판을 거쳐 도승지에 올랐다. 역학(易學)에 밝았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첣尾錄, 國朝榜目

【관련항목】 김류(金濫) 이헌국(李憲國) 김덕기(金德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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