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육백년사 (22) 김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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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회 작성일02-07-29 06:52 조회1,644회 댓글0건본문
【성 명】 김득신(金得臣)
【생몰년】 1604(선조 37)∼1684(숙종 10)
【본 관】 안동(安東) 김(金)
【자·호】 자공(子公), 백곡(栢谷), 구석산인(龜石山人)
【저서·작품】 《종남총지(終南叢志)》, 《백곡문집(栢谷文集)》, 〈환백장군전(歡伯將軍傳)〉, 〈청풍선생전(淸風先生傳)〉
【시 대】 조선 중기
【성 격】 시인
1604(선조 37)∼1684(숙종 10).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공(子公), 호는 백곡(栢谷) 또는 구석산인(龜石山人)이다. 진주 목사 김시민(金時敏)의 손자로,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김치(金緻)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사천(泗川) 목씨(睦氏)로 목첨(睦詹)의 딸이고, 아내는 경주 김씨이며,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당시 한문 사대가인 이식(李植)으로부터 “그대의 시문이 당금 제일”이라는 평을 들음으로써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현종 3년(1662)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안풍군(安豊君)을 습봉(襲封)했다. 〈백이전(伯夷傳)〉을 억만번이나 읽었다고 하여 자기의 서재를 ‘억만재(億萬齋)’라 하였다. 문보다는 시, 특히 오언 · 칠언절구를 잘 지었다. 또한 시를 보는 안목도 높아 《종남총지(終南叢志)》 같은 시화도 남겼으며, 술과 부채를 의인화한 가전소설 〈환백장군전(歡伯將軍傳)〉과 〈청풍선생전(淸風先生傳)〉을 남기기도 했다. 문집으로 《백곡문집(栢谷文集)》이 있다.
【참고문헌】 栢谷文集, 終南叢志硏究(許敬震, 연세어문학)
【관련항목】 김양신(金良臣) 김하종(金夏鍾)
▣ 김재원 -
▣ 솔내 영환 -
▣ 태영/문 -
【생몰년】 1604(선조 37)∼1684(숙종 10)
【본 관】 안동(安東) 김(金)
【자·호】 자공(子公), 백곡(栢谷), 구석산인(龜石山人)
【저서·작품】 《종남총지(終南叢志)》, 《백곡문집(栢谷文集)》, 〈환백장군전(歡伯將軍傳)〉, 〈청풍선생전(淸風先生傳)〉
【시 대】 조선 중기
【성 격】 시인
1604(선조 37)∼1684(숙종 10).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공(子公), 호는 백곡(栢谷) 또는 구석산인(龜石山人)이다. 진주 목사 김시민(金時敏)의 손자로,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김치(金緻)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사천(泗川) 목씨(睦氏)로 목첨(睦詹)의 딸이고, 아내는 경주 김씨이며,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당시 한문 사대가인 이식(李植)으로부터 “그대의 시문이 당금 제일”이라는 평을 들음으로써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현종 3년(1662)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안풍군(安豊君)을 습봉(襲封)했다. 〈백이전(伯夷傳)〉을 억만번이나 읽었다고 하여 자기의 서재를 ‘억만재(億萬齋)’라 하였다. 문보다는 시, 특히 오언 · 칠언절구를 잘 지었다. 또한 시를 보는 안목도 높아 《종남총지(終南叢志)》 같은 시화도 남겼으며, 술과 부채를 의인화한 가전소설 〈환백장군전(歡伯將軍傳)〉과 〈청풍선생전(淸風先生傳)〉을 남기기도 했다. 문집으로 《백곡문집(栢谷文集)》이 있다.
【참고문헌】 栢谷文集, 終南叢志硏究(許敬震, 연세어문학)
【관련항목】 김양신(金良臣) 김하종(金夏鍾)
▣ 김재원 -
▣ 솔내 영환 -
▣ 태영/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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