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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안동김씨 분관성씨 ⑥ (영해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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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1-08-13 17:29 조회2,6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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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안동김씨 분관성씨 ⑥ (영해김씨)



김방경의 넷째아들인 김론(김윤)의 6세손인 김억민을 시조로 하는 영해김씨에 대한 자료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 김씨의 뿌리 (1998, 범우사)



시조 김억민(金億敏)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아들 김은열의 14세손이다.



김억민은 김철(金哲)의 손자다. 김철은 고려 말에 중랑장을 지내고 조선이 들어서면서 개국공신으로 안동군에 봉해졌는데, 태종1년 함흥에서 환도하는 이태조의 어가를 모시고 오다가 함남 단천으로 들어가 영대봉 밑에서 살았다.



김억민은 병조정랑을 거쳐 영해도호부 부사를 역임했다. 연산군때 화를 입어 다시 入北했다. 김억민은 중종7년에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 후손들이 김억민이 부사를 지냈던 영해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나왔다. 영해(寧海)는 경상북도 영덕의 옛이름이다.



김억민의 후손 가운데는 병조참판을 역임한 김처원(金處源)이 있고, 만호를 지낸 김기종(金基鍾)이 있다.



김억민의 15세손 김대욱(金大郁)은 1929년 원산 라이싱 석유회사 지점을 상대로 회사의 부당한 처우에 항거하여 노조간부로 활약했다. 15세손 김관용(金寬鏞)은 부산상고, 부산여고, 부산사하중 교장 등을 역임했다.







▣ 인터넷 검색자료



영해(寧海)는 경상북도(慶尙北道) 동북부(東北部)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우시군(于尸郡)을 통일신라(統一新羅)에 와서 유린군(有隣郡)으로 불렀고, 고려초(高麗初)에 예주(禮州)로 하였다가 서기 1259년(고려 고종 46) 덕원소도호부(德原小都護府)로 승격 되었으며 1397년(조선 태조 6)에 영해부(寧海府)가 되었다.



신라종성(新羅宗姓)인 영해 김씨(寧海金 氏)는 안동 김씨(安東金氏)에서 분적(分籍)된 계통으로서 해동(海東)의 명장(名將) 김방경(金方慶)의 7세손 김억민(金億敏)을 시조(始祖)로 한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그는 조선개국공신(朝鮮開國功臣)으로 안동군(安東君)에 봉해진 김 철(金 哲)의 손자로 진사시(進士詩)에 합격하고 병조 정랑(兵曹正郞)을 거쳐 영해 도부사(寧海都府使)를 역임한 후 연산군(燕山君) 때 화(禍)를 입고 향리(鄕理)인 함경도(咸鏡道) 단천(端川)으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억민(億敏)의 임지(任地)였던 영해(寧海)를 관향(貫鄕)으로 삼고억민(億敏)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함경도(咸鏡道) 학성군(鶴城郡)과 영흥군(永興郡) 일대에서 기반을 다져왔다.



그러나 1927년도에 간행(刊行)된「영해김씨족보(寧海金氏族譜)」가 북녘에 있는 까닭으로 시조(始祖)이하의 족파(族派)를 상고(詳考)할 수 없다.



오늘날 영해 김씨는 월남(越南)한 종족(宗族) 60여 세대(世帶)가 매년 한 자리에 모여 친목(親睦)을 다지고 있으며, 지금까지 밝히지 못한 시조(始祖) 이후의 세적(世蹟) 찾기에 노력하고 있다.



1985년 11월 경제기획원 인구조사결과에 의하면 영해김씨(寧海金氏)는 전국에 총 72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성촌

함남 영흥군 억기면 와우리, 미양리

함북 학성군 학남면 금산동







▣ 영해김씨가 생겨나기까지의 세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경순왕 김부 (金傅) (?-978)

② (4남)김은열 (金殷說) (?-1028, 현종19)

③ (2남)김숙승 (金叔承) ★구안동김씨 시조

④ 김일긍 (金日兢)

⑤ 김이청 (金利請)

⑥ 김의화 (金義和)

⑦ 김민성 (金敏成)

⑧ (2남)김효인 (金孝印) (1192 ?-1253)

⑨ 김방경 (金方慶) ★구안동김씨 중시조 (1212-1300)

⑩ (4남)김 론 (金 )

⑪ (2남)김영요 (金永曜)

⑫ 김 행 (金杏)

⑬ (2남)김 철 (金哲)

⑭ (2남)김성호 (金成浩)

⑮ 김억민 (金億敏) ★영해김씨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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