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방경의 가족 ④ (子孫-석사논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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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1-08-13 17:32 조회2,400회 댓글0건본문
김방경의 가족 ④ (子孫-석사논문 발췌)
충렬공 김방경 연구논문인 【고려후기 김방경의 정치활동과 그 성격】 (유선영 석사학위논문, 전남대학교대학원, 1993.8) 중에서 충렬공의 가족 및 혼인관계에 대한 내용을 발췌하여 게재합니다.
김방경은 첫 부인으로 朴益旌(박익정)의 딸을 맞이하였다. 기거랑지제고중서사인을 지낸 朴益旌은 무인집권기에 고급관인을 배출하여 세족으로 성장한 죽산박씨의 후예였고, 인천이씨 李藏用과는 사돈관계였다. 박씨는 3남3녀를 두고 김방경에 앞서 사망하였다. 박익정의 장남 暉(휘)가 李藏用의 딸과 혼인하였기 때문에 김방경의 처남(박휘)의 장인이 이장용이었다.
김방경는 재취로 孫씨를 맞아 1녀를 두었으나 손씨에 관한 자료는 발견되지 않는다.
또 서북면에 있을 때 김방경은 官妓와의 사이에 1녀를 두었다.
김방경의 큰 아들 瑄(★ 선의 오기인 듯)은 황조정대부사재경 薛仁儉(설인검, ★족보에는 설안으로 기록)의 녀와 결혼하여 전법판서 상장군에 올랐다.
둘째아들 (흔)은 활발한 정치활동을 하여 판밀직사사찬성사상락공에 이르렀지만 그의 혼인관계는 알 수 없다
셋째아들 恂(순, 1258-1321)은 문과에 합격하고 도첨의중찬 許珙(허공)의 녀와 결혼하여 중대광상락군판삼사사 보문각대제학 상호군에 이르렀다. 순의 장인 許珙은 최씨정권 말기부터 출세길에 올랐던 인물이었고, 공암허씨는 고려후기 권문에 속하였다.
김방경의 첫째사위인 趙 (조변)은 참지정사 趙季恂(조계순)의 아들인데, 황주조씨 조계순은 관직이 문하시랑평장사에 이르렀고 이 집안은 무인집권기에 세족으로서 기반을 갖추었다.
막내 사위인 평강 蔡洪哲(채홍철)은 뒤에 충선왕의 신임을 받아 찬성사에 올랐던 인물이었다.
김방경의 큰 손자 承用(선의 둘째아들)은 문과에 합격하여 첨의찬성사 元瓘(원관)의 녀와 결혼하였고, 밀직사 만호에 올랐다. 元瓘은 충렬왕대 中贊에 오른 元傅(원부)의 아들로 이 원주원씨는 원부 이래 크게 두각을 나타냈던 가문이다.
둘째손자 承澤(선의 세째아들)은 삼중대광 도첨의사 정승에 올랐다.
또 큰 손녀 ( 의 첫딸)은 찬성사 趙璉(조련)과 혼인하였는데 조련은 평양조씨 趙仁規(조인규)의 아들이었다.
또 恂에게서 난 세 손녀는 각기 무인집권기 무반을 배출하였고 충렬왕 때 찬성사를 지낸 청주정씨 정계(★정해의 오기인 듯)의 아들인 정책(판선공사사), 성리학을 수용한 감포(★남포의 오기인듯) 백이정(대광상당군), 원의 좌승상 아홀반의 아들인 야영돈(강절성참지정사)과 혼인하였다.
恂의 아들 永旽은 좌정승 판정치도감사에 이르렀다.
김방경의 증손자 厚(승용의 큰 아들)는 검교첨의평리 만호에 이르렀고 昴(승택의 큰 아들)은 찬성사 閔(삼수변蹟)의 딸과 결혼하였는데 상락군에 봉해졌다.
이상과 같이 김방경은 죽산박씨를 처가로 두었고, 그의 자손들은 공암허씨, 황주조씨, 원주원씨, 평양조씨, 청주정씨, 감포백씨 등 당대의 세력가문 및 원의 고위층과 혼인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혼인관계가 김방경과 그후의 안동김씨의 정치활동과 세력형성의 기반이 되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김방경의 성공에는 그의 혼인관계도 작용하였다. 그는 竹山朴氏(★김방경의 장인 박익정)를 처가로 두었고, 그의 자손들을 공암허씨(★김순의 장인 허공), 황주조씨(★김방경의 사위 조변, 그의 부 조계순), 원주원씨(★김승용의 장인 원관과 그의 부 원부), 평양조씨(★김흔의 사위 조련과 그의 부 조인규) , 청주정씨 (★김순의 사위 정책과 그의 자 정오, 정포), 염포백씨(★김순의 사위 백이정와 그의 부 백문절) 등 당대의 세력가문 및 원의 고위층(★김순의 사위인 원의 좌승상 아홀반의 아들 야영돈=별리가불화)과 혼인관계를 맺게 하였다. 그는 왕실과 권문세족, 그리고 원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함으로써 한때 막강한 권력을 장악하였고, 그의 후손들의 활동에 탄탄한 기반을 구축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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