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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일시 : 2002년 8월 10일 (토) 20:00-21:00 KBS 1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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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작성일02-08-13 21:36 조회1,5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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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과 후금사이의 실리외교 그리고 자강책



-철원 표충사로 줌인 13" (보다가)

-강원도 철원..

이곳에 포충사라는 이름의 사당이 하나

세워져있다.



-사당앞의 PD와 3" (보고)

-사당내부 4" -사당에 모셔져있는 인물은 조선시대

-영정줌인 10" 무장으로 대명지원군의 부장이었던 김응하..

광해군은 김응하를 추모하기위한 사당을

전국 곳곳에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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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인터뷰 (3 4153...인터뷰를 살릴지말지..좀 더 생각해봐야할 듯...)

김장군은 1618년..광해군 10년에 명나라의 요청에 의해서

강홍립원수의 휘하장군으로 3천명의 병사를 이끌고 명나라에 가서

천군과 싸우다 40세의 일기로 장렬히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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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앞의 두사람 7" -김응하는 후금군사와 싸우다 전사한 장군이다.



-비석 타이트 팬 10" -광해군때 세워졌다는 이 비석엔

김응하의 전투과정을 자세히 새겨놓았는데

-비석 읽는 틸다운 7" 당시 적이었던 후금의 군사들조차 경의를 표할정도로

그 모습이 비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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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 읽는 후손 목소리...손만 나온다.

버드나무밑에서 검하고 활이 다 하니까

검을 들고 싸우다가 노기가 충천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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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내부 14" -그런데 광해군은 김응하의 사당을

함경북도 종성과 경원등...

중국사신이 다니는 길목에 세우라고 명한다.

광해군에겐 어떤 다른 의도가 있었던 걸까..?



-충렬록 책 넘기면 유상과 그림들 13" -뿐만아니라 광해군은 김응하를 추모하는

책까지 펴내는데...

충렬록이란 이 책엔 김응하의 전투모습이

그려져있고..

-충렬록안의 시 11" 당시 조정대신들이 쓴

김응하 추모시도 실려있다..



-김응하 전투 모습 16" -명나라와의 전쟁을 피하려고했던 광해군이

이렇게 대명지원군으로 활약하다가 죽은

김응하를 대대적으로 추모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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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기 인터뷰

강대국과 약소국사이 외교에서 약소국은 사술을 펼수도 있다.

사술은 사기...명이란 대륙국가 후금이란 당시로선 오랑캐국가

이 사이에서 조선이 생존을 도모하려면 외교밖에 없다.

그래서 충렬록...사당 지은 건

조선의 투항이 의도된거라는 명의 의심을 제거하기위한 것이었다.







▣ 김재원 -

▣ 김윤만 -

▣ 김영환 -

▣ 태영/문 - 감사합니다.

▣ 김항용 -

▣ 郡/김태영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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