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봉공 김치 선조님 제주도 방선문 마애명 시 사진 소개>
페이지 정보
김항용 작성일02-08-23 07:04 조회1,578회 댓글0건본문
<남봉공 김치 선조님 제주도 방선문 친필 마애명 시 사진 소개>
1. 출전 : <제주도 마애명>(2000. 2. 제주도동양문화연구소 간. 51P)
2. 소재지 : 방선문은 제주도 제주시 오라2동(정실마을) 남쪽 오등동에 위치. 제주10경의 하나인 영구춘화로 불리는 곳이다.
3. 제작시기 및 평가 : 1609년(광해1년) 가을, 남봉공이 제주판관 재직시 방선문에 올라 지은 친필시로서 제주의 마애명 시중에 절창으로 손꼽히며 방선문에 남아 있는 마애시 중에서 가장 오래 전에 제작되었으며, 원형이 가장 잘 보존 된 것으로 유명하다.
4. 사진 자료 제공 : 2002. 8. 김익수(제). 자료제공
<원시 및 해석>
착石非神斧 쪼개진 돌은 귀신이 도끼질 한 것이 아니라
渾淪肇判開 혼돈(카오스)에서 처음 열리기 시작할 때 그대로이니
白雲千萬歲 흰 구름 속 오랜 세월을
仙俗幾多來 신선은 속세에 몇 번이나 다녀갔는가.
己酉 秋 金緻 기유년(1609) 가을 김치(金緻)
김 치(金 緻) 1577(선조10)∼1625(인조3).
조선의 문신. 자는 사정(士精), 호는 남봉(南峰), 심곡(深谷). 아버지는 부사 시회(時晦)이며, 증영의정 충무공 시민(時敏)에게 입양되었다.
1597년(선조30)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설서(設書)를 거쳐 1608년 사가독서(賜假讀書)를 했다. 광해군 때 사복시정(司僕時正)·이조참의(吏曹參議)·동부승지(同副承旨)·대사간을 거쳐 홍문관교리·부제학 등을 역임하고, 병조참지(兵曹參知)에 올랐다.
광해군의 학정이 날로 심해짐을 깨닫고 병을 핑계로 관직에서 물러나 두문불출하였다. 인조반정(仁祖反正:1623) 후 심기원(沈器遠)과 사전에 내통하여 벼슬길에 다시 올랐으나 한때 대북(大北)으로 몰려 유배되었다. 뒤에 풀려나와 동래부사 (東萊府使)를 거쳐 1625년(인조3)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고 안흥군(安興君)에 봉해졌다. 천문(天文)에 밝았으며 저서로 <深谷秘訣>과 시문집 <남봉집(南峰集)>이 전한다
▣ 김주회 - 익수 종친님! 한번 뵙고 싶습니다. 남봉공 김치 선조의 제주도 시절 이야기도 많겠지요. 남봉공 선조의 위 마애시의 書者와 刻者에 대한 자료도 있나요?
▣ 김항용 - 친필시를 각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각자는 미상입니다.
▣ 김재원 -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 郡/김태영 - 감사합니다.
▣ 聚善堂 金在益 -
▣ 김영윤 -
▣ 태영/문 -
▣ 김정중 -
▣ 솔내영환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