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학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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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2-10-31 02:11 조회1,600회 댓글0건본문
영남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민족문화연구총서2 <영남사림파의 형성> 이수건/영남대학교출판부/1996 pp56∼57에 우리 선안동김문이 경순왕의 후예가 될 수 없다는 즉 후손에 의해 경순왕의 후손으로 윤색되었다는 충격적인 학설이 있어 먼저 안사연 식구들에게 보고하는 심정으로 소개 합니다. 이에 대한 반론 및 적절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사료됩니다.
무신 집정시기에 등장하는 金敞<김창, 金孝恭(김효공)>. 金孝印(김효인) 형제와 효인의 자 金方慶(김방경)은 모두 안동인으로 그 원조는 敬順王 (경순왕)으로 되어 있다.(66) 김방경 가문도 본래 安東吏族(안동이족)에서 出仕(출사)하여 나중에 世族(세족)으로 발전함에 따라 後孫(후손)에 의해 그 先世(선세)의 由來(유래)가 윤색되었다고 본다.
충렬왕 때에 작성된 金璉(김련)의 戶口單子(호구단자)에 의해 김련의 妻外祖(처외조)인 김방경의 世系(세계)를 摘記(적기)하면 "金方慶本安東府, 父追本(封)中書令行征議大夫兵部尙書翰林學士充史館修 撰官知制誥孝印, 祖追封尙書右僕射掌冶署丞兼直史館敏成, 曾祖追封衛尉主 簿義和 . . . ." "김방경본안동부, 부추본(봉)중서령행정의대부병부상서한림학사충사관수 찬관지제고효인, 조추봉상서우복야장야서승겸직사관민성, 증조추봉위위주 부의화 . . . ." 와 같이 그의 先世(선세)가 寒微(한미)함을 알 수 있다.
許興植氏(허흥식 씨)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金方慶(김방경) 先世(선세)는 안동의 鄕吏 (향리)일 가능성이 크다.(67)
注(주) (66) . . . . 김방경 당대까지 안동을 왕래하고 그의 父祖墳墓(부조 분묘)가 모두 안동에 있다는 사실은 敬順王(경순왕)의 後孫(후손)이 될 수 없다는 傍證(방증)이 된다. 在京勢力(재경세력)인 敬順王(경순왕)의 後裔(후예)가 안동에 와서 鄕職(향직)을 담당할 사유가 없기 때문이다.
(67)허흥식,<고려호구단자의 신례(광산김련. 김진)와 국보호적과의 비교 분석>
(「사총」21.22집(강진철화갑기념한국사학논총), 1977)pp263-282.
▣ 지나가는 사람 - 황당한 학설입니다. 경순왕이 왕건의 사위로써 개경에서 벼슬을 했다고 하더라도 본향인 안동을 완전히 배제하고 살수는 없는 일입니다.
▣ 지나가는 사람 - 김방경이 산 시절은 거의 고려의 후기로 접어든 시점이라 많은 경순왕의 많은 후손들중에 세력이 약해져서 지방세력으로 남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 지나가는 사람 - 그리고 향리가 볼래 경순왕(호족)으로 부터 별개의 세력으로 보아서는 곤란합니다. ▣ 지나가는 사람 - 고려시대 향리는 조선시대 아전과 마찬가지로 중간계층으로 지방에서 신분상으로는 귀족에 비치지 못하나 지방에서는 큰세력으로 봐야 합니다.
▣ 지나가는 사람 - 중앙에서 지방관을 파견해도 주민들의 우두머리인 향리의 도움없이는 민정이나 군사적인 업무를 하기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 지나가는 사람 - 실질적인 권한은 향리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지방에 군사체제에서 도령중랑장이라는 관직이 있습니다. 무신의 직책으로 4품 장군의 참모고 호장은 민정을 담당하는 그지방 모든 향리의 우두머리입니다. 장군이 모든 군사적 행동을 독단으로 한다고 보면 오산입니다. 실질적인 군의 운영지휘권은 도령 중랑장5품이 가지고 있습니다. 군사적인 도발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빠르게 대처할수 있는 사람은 그방에서 오래동안 세거한 향리만이 할수 있습니다. 고려에서 강감찬 장군이나 부장인 강민첨장군은 진주강씨로써 중앙의 문벌귀족입니다. 그러나 진주강씨 후손들중에 고려시대 전반적으로 지방의 향리로 신분이 하향하는 않은 후손이 없다고 할수 없습니다. 고려사 중 열전을 잘 보시면 알수 있을겁니다.
▣ 지나가는 사람 - 경순왕의 후손이 김방경 분일까요 경주김, 울산 ,삼척,강릉등등 수없이 많은데 그중에 한명도 빠지지 않고 모두 성공한 귀족이라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 지나가는 사람 - 조선시대 선안동의파도를 보아도 융성한 집안과 그렇지 않은 집안이 있던것과 같았다 생각합니다.
▣ 지나가는 사람 - 조선시대 선안동김씨중에 모두 대과인 문과만 보고 잡과라고 천시했던 역학 의학 등등을 보아서 신분상으로 중인의 신분을 얻은 사람은 선안동김이 아니라는 말과 같습니다.
▣ 김주회 - 윤만 형님의 의견대로 충격적인 학설입니다.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연구 분석해야할 과제입니다. 김련이라는 사람은 누구이고, 충렬왕때 작성되었다는 김련의 호구단자는 현재 실물이 어디에 있나요?
▣ 김태서 - 잘 보았습니다.
▣ 태영/문 - 너무 흥분해서도 안 되겠지만, 속히 대책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우선 번개모임을 갖고 방법을 논의하는 것이 어떨까요?
▣ 김항용 - 좋은 자료를 알려주시어 감사합니다. 개인에 의해 작성되는 고려시대의 호구단지 하나가 그 당시의 가장 완전한 기록물로 볼 수도 없으며, 경순왕과 충렬공과의 세월의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으며, 당시의 기타 여러 공적, 신빙적 문헌들과 자료들을 고려하여 판단하지 않은, 일부분의 자료로 전체를 결론 지으려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발표라고 우선 일축하고 싶습니다.
▣ 솔내영환 - 역사에서 항상 이런류의 의견이 대두 됩니다. 이는 어쩌면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구요, 어쨋던 경순왕과 충렬공사이에 아직도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니 이도 연구할 과제라 생각됩니다.
▣ 김재이 - 잘읽었습니다
▣ 김재원 - ▣ 聚善堂,在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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