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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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郡/김태영 작성일02-11-29 02:22 조회1,6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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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2002-11-19[오후 8:42:23]



알렉스 헤일리의 가족소설 ‘뿌리(원제:Roots)’는 미국사회에 아주 재미있는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다인종(多人種)사회로서 그때까지만 해도 조상이나 가계(家系)에 대해 별 관심이 없던 그들에게 뒤늦게 조상찾기 운동을 벌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작품의 처음 주인공이었던 흑인노예 ‘쿤타킨테’와 그 후손들의 고달픈 인생 이야기에서 나름대로 어떤 자극을 받았던 모양이다. 이 작품이 TV미니시리즈로 방영되면서 미국은 물론 전세계에 폭발적 인기를 몰아왔던 20여년 전부터의 일이다. 아직도 그같은 열기는 가시지 않아 인터넷을 이용해 가계를 조사하고, 심지어 우리 한국인들처럼 족보(族譜)를 만드는 일까지 대유행이라고 한다. 그런 걸 보면 이미 수백년 전부터 족보를 지녀온 한국인들은 분명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다.



흔히들 문헌적으로 믿을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로 600여년 전인 1476년(조선조 성종7년) 간행된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족보 성화보(成化譜)를 들고 있다. 하지만 고려사(高麗史)를 보면 고려 때에도 이미 씨족계보(氏族系譜) 가첩(家牒) 족도(族圖) 등 고문서 형태의 족보 비슷한 것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역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민족답다 하겠다.



미국에 족보바람을 불러온 ‘뿌리’는 ‘쿤타킨테’에 이어 그의 딸과 그 후손들의 가족사로 엮어진다. 그래서일까, 미국사회에 유행하는 족보에는 부계(父系)와 모계(母系)가 다 수록된다고 한다. 그러나 몇백년 이어온 우리네 족보엔 여자들 이름이 수록되지 않는다. 철저히 남자 위주의 기록일 뿐이다. 가부장(家父長) 중심의 유교사회 전통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전통이라는 것도 시대가 바뀌면 변할 수도 있는 모양이다. 언제부터인가 여자들도 족보에 올리는 추세가 이는 것 같더니, 급기야 최근엔 전통적 문중으로 알려진 전주이씨(全州李氏) 최대계파라는 효령대군파에서도 여자 후손들을 족보에 등재키로 했다 하여 화제다. 분명 놀랍기는 한데, 그 정도로 놀랄 수 있다는 게 또 놀랍다. ‘아들 딸 구별말자’고 외쳐온 게 언제부터였더라. <박건영 (논설위원)>



京仁日報 <참성단>에서 옮김.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특히 고려시대에 이미 씨족계보, 가첩, 족도 등이 있었다는 내용,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 김재이 - 잘 읽었습니다

▣ 솔내영환 -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태영/문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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