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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김시민 장군 16 (진주성대첩 1592년10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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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12-17 04:56 조회1,4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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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김시민 장군 16 (진주성대첩 1592년10월10일)





김시민 장군의 인간상

김준기 (아우내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4. 진주성 대첩 - (9)1592년 10월 10일

⑥ 1592년 10월 10일



목사 김시민은 비장한 각오로 군중에 명하여 전투준비를 강화하게 하였다. 아침에 적병은 1만명으로 동문 신성을 공격하고 다른 1만명은 북문 밖에서 공격하였다. 인마의 절규와 총포의 폭음 등으로 살기가 가득하였다.



동문 신성으로 공격한 적병부대는 長梯(장제)를 가지고 괴이한 꾸밈으로 방패를 들고 성벽을 기어오르게 하고, 기병 천여명은 조총을 연달아 퍼붓고, 적장들은 검을 빼어들고 독전을 하였다.



우리 수성군은 비격진천뢰, 질려포, 현자총통과 대궁 등을 적시에 적소에 발사하고, 큰 돌과 火鐵(화철)을 던지며 불붙인 짚단을 난투하고 열탕을 내려 붓는 등 작열하는 전황이 계속되었다. 특히 비격진천뢰의 폭발로 많은 적병이 한꺼번에 쓰러지게 되니 적의 돌격이 좌절되기도 하였다.



이때에 목사 ★김시민은 동문 북격대에서 지휘하고, 판관 ★성수경은 동문 옹성에서 독전하였다.



또다른 1만의 적병부대는 옛 북문 밖에 돌격하여 왔다. 적병들은 장제를 메고 방패를 들고 성을 공격함이 노도와 같았다. 불시의 기습에 놀란 병사가 궤주하려 할때 전 만호 ★최덕량과 목사의 군관 ★이납, ★윤사복 등이 죽음을 무릅쓰고 왜군의 침공을 막아내기에 이르니 우리 군사들이 합력하여 백방수단으로써 적의 침입을 막았다.



노약자, 부녀자들까지도 기와쪽과 돌과 마른 갈대에 싼 화약과 불붙인 짚단을 내리 던지기도 하고 열탕을 퍼붓기도 그치지 않았다.



날이 밝을 무렵 적의 공격이 저지되기 시작하였고 치열했던 전투는 둔화되어 갔다. ★김시민은 끝까지 진두에서 지휘하여 적을 격퇴하였다.



이럴 즈음에 김시민은 적의 유탄이 왼쪽 이마에 박히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전투지휘가 급박한 때였다. 옆에 있던 곤양군수 ★이광악이 목사를 대신하여 전투를 지휘하였다.





난공불락의 진주성. 적의 기세는 완전히 꺽이고 그들 본영의 신호에 따라 퇴각하기에 이르렀다. 치열했던 전투는 끝이 나고 성밖의 격전장에는 적군 인마의 시체가 쌓여서 언덕을 이루였다.



이 싸움이 제1차 진주성 전투이며 아군의 대승으로 끝났다. 임진왜란 중의 대승리였던 이순신의 한산도대첩, 권율의 행주산성대첩과 더불어 김시민의 진주성대첩을 임란 3대첩이라 한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김발용 -

▣ 김태서 - 잘 읽었습니다.

▣ 태영/문 -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 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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