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강화도와 충렬공(4)길상면 상세탐구-유적 탐사
페이지 정보
솔내영환 작성일03-02-08 00:44 조회2,000회 댓글0건본문
강화도 길상면의 유적 탐사
삼랑성 三郞城
개요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연대 미상의 산성.
지정번호 : 사적 제130호
소재지 : 인천 강화군
크기 : 넓이 23만 9027.28㎡, 둘레 약 1km
종류 : 산성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사적 제130호. 넓이 23만 9027.28m2, 둘레 약 1km.
성의 축조 연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다만 단군(檀君)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로 그 이름을
삼랑산성(三郞山城) 혹은 정족산성(鼎足山城)이라고도 한다. 성곽의 축성 구조를 보면 잡석(雜石)으로
축조되어 삼국시대 석성구조(石城構造)를 보여 주고 있으며 고려시대에 보수(補修), 조선시대에
중수(重修)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문은 네 곳에 있으며 문루(門樓)는 남문에만 있어서 종해루(宗海樓)라 하였다. 또한 역조실록
(歷朝實錄)이 소장된 마리산의 사고(史庫)가 옮겨와 보존되었었다. 그리고 성내에는 유명한 전등사
(傳燈寺)가 있으며, 병인양요(丙寅洋擾) 당시에 프랑스군에 승리한 기념비로서 양헌수 승전비
(梁憲洙勝戰碑)가 서 있다.
이러한 삼랑성은 특히 마리산 전설과 더불어 단군신화와 관련되는 흥미있는 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http://msrv.yahoo.co.kr/enc/image/41/19541.jpg
전등사 傳燈寺
개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吉祥面) 정족산성(鼎足山城) 안에 있는 사찰.
종파 : 대한불교조계종
창건시기 : 372년
창건자 : 아도
소재지 :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 아도(阿道)가 창건하여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그 후 고려 제27, 28,
30대의 충숙왕(忠肅王) ■충혜왕(忠惠王) ■충정왕(忠定王) 때에 수축하였고, 1625년(인조 3)과
1906년에도 중수하였으며, 또 일제강점기에도 두 차례 중수하였다.
전등사라는 이름은 충렬왕(忠烈王:재위 1274~1308)의 비 정화궁주(貞和宮主)가 이 절에 옥등(玉燈)을
시주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때 정화궁주는 승려 인기(印奇)에게 《대장경》을 인간(印刊), 이 절에
봉안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 절에는 보물 제178호인 전등사 대웅전(大雄殿), 보물 제179호인 전등사 약사전(藥師殿), 보물
제393호인 전등사 범종(梵鐘)이 있다. 또 대웅전에는 1544년(중종 39) 정수사(淨水寺)에서
개판(改版)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목판 104장이 보관되어 있다.
전등사 대웅전 傳燈寺大雄殿
개요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있는 전등사의 법당.
지정번호 : 보물 제178호
소재지 :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전등사
시대 : 조선 광해군 13년(1621)
크기 :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종류 : 건축물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보물 제178호. 1621년(광해군 13)에 지은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八作)지붕이다.
정면 3칸은 기둥 사이를 각각 동일한 길이로 분할하고 세 짝씩의 빗살문을 달았다. 좌우 측면은 벽을
치고 있으나 앞의 한 칸만은 외짝 열 개의 문이 있다. 공포(뱀包)는 내부를 4출목(四出目), 외부를
2출목 내었으며 쇠서의 형태는 가늘고 약하게 길어지고 곡률(曲率)이 심한 편이다. 내부에는 장식적인
면이 좀 지나치게 발휘되었으며 대량(大樑)에 걸쳐 있는 충량(衝樑) 끝은 용두(龍頭)로 만들어져 있고
또 화려하게 채색한 천장 주위에는 온통 극락조와 연꽃 등의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불단 위의
닫집은 처마를 정자각(丁字閣) 모양으로 꾸미고 16포(包)나 되는 공포를 중첩해서 배열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부룡(浮龍) ■극락조 등을 매달아놓았다.
1916년 수리할 때 발견된 《양간록(樑間錄)》에는 1605년(선조 38) 불에 타버리고 1614년에 다시
불이 나 전소된 것을, 1615년에 개축하기 시작하여 1621년에 완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등사 대웅전 사진 http://msrv.yahoo.co.kr/enc/image/02/50102.jpg
전등사 석문 사진 http://msrv.yahoo.co.kr/enc/image/24/3724.jpg
전등사 범종 傳燈寺梵鐘
개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전등사에 있는 1097년(고려 숙종 2)에 만들어진 동종.
지정번호 : 보물 제393호
소장 : 전등사
소재지 :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높이 1.64m, 입지름 1m
종류 : 동종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보물 제393호. 높이 1.64m, 입지름 1m. 꼭대기에는 좌우에서 쌍룡이 등을 지고 웅크린 모습으로
꼭지를 이룰 뿐, 음통(音筒)은 없다. 용머리 주위에는 복판(複瓣) 16엽의 연꽃이 둘레에 새겨져 있고
연판(蓮瓣)과 연판 사이에도 판단(瓣端)이 있어 마치 중판처럼 보인다. 종신(鐘身) 상부에는 8괘가
나열되었고 종신은 수조(數條)의 횡대로서 상하 2구로 구분한 다음, 종선(從線)으로 상하가 8개의
사각형 3획으로 마련되었다. 간지(間地)와 곽(廓) 안에 명문(銘文)이 양주(陽鑄)되어 있으며
종구(鐘口)의 선(線)과 평행되는 소문대(素文帶)가 돌려 있고 이 소문대 위에 당좌(撞座) 4개가
새겨져 있다.
형태가 장중하고 조각이 웅경하며 소리도 청아하다. 전체적인 형태에서 개성 연복사종을 연상케
하며 중국종의 특징을 볼 수 있다. 명문(銘文)으로 보아 1097년 중국의 허난성[河南省] 백암산
숭명사의 종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로로 전등사에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전등사 약사전 傳燈寺藥師殿
개요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전등사에 있는 약사여래불을 모신 조선시대 중기의 건물.
지정번호 : 보물 제179호
소재지 :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전등사
시대 : 조선 중기
크기 :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보물 제179호.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다포집 계통에 속하는 건물로 정면 3칸에는
각각 기둥 사이에 공간포(空間包)를 한 개씩 배치하고 있으나, 측면과 후면에는 생략되어 대신
화반(華盤)을 두고 있으며 공포(뱀包)는 기둥 위에만 배열되어 있다. 건물 규모가 작아서 그런지
평방(平枋)을 사용하지 않고 공간포는 창방(昌枋) 위에 직접 놓여 있는데 이러한 점에서는 다폿집
형식을 다소 벗어났다. 공포는 안으로는 2출목이고 밖으로는 l출목이며 쇠서와 첨차(墅遮) 등의
형태는 같은 경내에 있는 대웅전의 그것과 흡사하고 건축연대도 대략 같은 시기로 짐작된다.
초지진 草芝鎭
개요
인천 강화군 길상면(吉祥面) 초지리에 해안선을 지키기 위하여 설치한 진.
지정번호 : 사적 제225호
지정연도 : 1971년
소재지 : 인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시대 : 1656년(효종 7) 설치
크기 : 면적 4,233㎡
종류 : 진(鎭)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1971년에 사적 제225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4,233m2이다.
1656년(효종 7) 강화유수(江華留守) 홍중보(洪重普)가 처음 설치하였다. 66년(현종 7) 병마만호
(兵馬萬戶)를 두었다가 1763년(영조 39)에 첨사(僉使)로 승격시켰는데 이 때의 병력은 병마첨절별사
(兵馬僉節別使) 1명, 군관 11명, 사병 98명, 돈군(墩軍) 18명, 목자(牧子) 210명, 진선(鎭船) 3척과
무기 다수가 있었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이 곳에서 프랑스 함대의 로즈 소장과
싸웠으며, 1871년(고종 8)에는 미국 아시아함대의 로저스 중장이 이 곳에 침입하였을 때 필사의
방어전을 전개하다 함락된 바 있었고, 1875년(고종 12)에는 일본 군함 운요호[雲揚號]와도 이 곳에서
교전하였다.
이 초지진은 모두 허물어져 돈(墩)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던 것을 1973년 초지돈만 복원하였다.
돈에는 3곳의 포좌(砲座)가 있고 총좌(銃座)가 100여 곳 있다. 성은 높이 4m 정도에 장축이 100m쯤
되는 타원형의 돈이다. 돈 안에는 조선 말의 대포 1문이 포각 속에 전시되어 있는데, 포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 홍살로 되어 있으며, 대포의 길이는 2.32m, 입지름 40cm이다.
초지진 포좌 사진 http://msrv.yahoo.co.kr/enc/image/50/50250.jpg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좋은 접근방법 이십니다.
▣ 김윤식 -
▣ 김윤만 -
삼랑성 三郞城
개요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연대 미상의 산성.
지정번호 : 사적 제130호
소재지 : 인천 강화군
크기 : 넓이 23만 9027.28㎡, 둘레 약 1km
종류 : 산성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사적 제130호. 넓이 23만 9027.28m2, 둘레 약 1km.
성의 축조 연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다만 단군(檀君)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로 그 이름을
삼랑산성(三郞山城) 혹은 정족산성(鼎足山城)이라고도 한다. 성곽의 축성 구조를 보면 잡석(雜石)으로
축조되어 삼국시대 석성구조(石城構造)를 보여 주고 있으며 고려시대에 보수(補修), 조선시대에
중수(重修)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문은 네 곳에 있으며 문루(門樓)는 남문에만 있어서 종해루(宗海樓)라 하였다. 또한 역조실록
(歷朝實錄)이 소장된 마리산의 사고(史庫)가 옮겨와 보존되었었다. 그리고 성내에는 유명한 전등사
(傳燈寺)가 있으며, 병인양요(丙寅洋擾) 당시에 프랑스군에 승리한 기념비로서 양헌수 승전비
(梁憲洙勝戰碑)가 서 있다.
이러한 삼랑성은 특히 마리산 전설과 더불어 단군신화와 관련되는 흥미있는 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http://msrv.yahoo.co.kr/enc/image/41/19541.jpg
전등사 傳燈寺
개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吉祥面) 정족산성(鼎足山城) 안에 있는 사찰.
종파 : 대한불교조계종
창건시기 : 372년
창건자 : 아도
소재지 :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 아도(阿道)가 창건하여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그 후 고려 제27, 28,
30대의 충숙왕(忠肅王) ■충혜왕(忠惠王) ■충정왕(忠定王) 때에 수축하였고, 1625년(인조 3)과
1906년에도 중수하였으며, 또 일제강점기에도 두 차례 중수하였다.
전등사라는 이름은 충렬왕(忠烈王:재위 1274~1308)의 비 정화궁주(貞和宮主)가 이 절에 옥등(玉燈)을
시주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때 정화궁주는 승려 인기(印奇)에게 《대장경》을 인간(印刊), 이 절에
봉안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 절에는 보물 제178호인 전등사 대웅전(大雄殿), 보물 제179호인 전등사 약사전(藥師殿), 보물
제393호인 전등사 범종(梵鐘)이 있다. 또 대웅전에는 1544년(중종 39) 정수사(淨水寺)에서
개판(改版)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목판 104장이 보관되어 있다.
전등사 대웅전 傳燈寺大雄殿
개요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있는 전등사의 법당.
지정번호 : 보물 제178호
소재지 :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전등사
시대 : 조선 광해군 13년(1621)
크기 :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종류 : 건축물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보물 제178호. 1621년(광해군 13)에 지은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八作)지붕이다.
정면 3칸은 기둥 사이를 각각 동일한 길이로 분할하고 세 짝씩의 빗살문을 달았다. 좌우 측면은 벽을
치고 있으나 앞의 한 칸만은 외짝 열 개의 문이 있다. 공포(뱀包)는 내부를 4출목(四出目), 외부를
2출목 내었으며 쇠서의 형태는 가늘고 약하게 길어지고 곡률(曲率)이 심한 편이다. 내부에는 장식적인
면이 좀 지나치게 발휘되었으며 대량(大樑)에 걸쳐 있는 충량(衝樑) 끝은 용두(龍頭)로 만들어져 있고
또 화려하게 채색한 천장 주위에는 온통 극락조와 연꽃 등의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불단 위의
닫집은 처마를 정자각(丁字閣) 모양으로 꾸미고 16포(包)나 되는 공포를 중첩해서 배열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부룡(浮龍) ■극락조 등을 매달아놓았다.
1916년 수리할 때 발견된 《양간록(樑間錄)》에는 1605년(선조 38) 불에 타버리고 1614년에 다시
불이 나 전소된 것을, 1615년에 개축하기 시작하여 1621년에 완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등사 대웅전 사진 http://msrv.yahoo.co.kr/enc/image/02/50102.jpg
전등사 석문 사진 http://msrv.yahoo.co.kr/enc/image/24/3724.jpg
전등사 범종 傳燈寺梵鐘
개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전등사에 있는 1097년(고려 숙종 2)에 만들어진 동종.
지정번호 : 보물 제393호
소장 : 전등사
소재지 :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높이 1.64m, 입지름 1m
종류 : 동종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보물 제393호. 높이 1.64m, 입지름 1m. 꼭대기에는 좌우에서 쌍룡이 등을 지고 웅크린 모습으로
꼭지를 이룰 뿐, 음통(音筒)은 없다. 용머리 주위에는 복판(複瓣) 16엽의 연꽃이 둘레에 새겨져 있고
연판(蓮瓣)과 연판 사이에도 판단(瓣端)이 있어 마치 중판처럼 보인다. 종신(鐘身) 상부에는 8괘가
나열되었고 종신은 수조(數條)의 횡대로서 상하 2구로 구분한 다음, 종선(從線)으로 상하가 8개의
사각형 3획으로 마련되었다. 간지(間地)와 곽(廓) 안에 명문(銘文)이 양주(陽鑄)되어 있으며
종구(鐘口)의 선(線)과 평행되는 소문대(素文帶)가 돌려 있고 이 소문대 위에 당좌(撞座) 4개가
새겨져 있다.
형태가 장중하고 조각이 웅경하며 소리도 청아하다. 전체적인 형태에서 개성 연복사종을 연상케
하며 중국종의 특징을 볼 수 있다. 명문(銘文)으로 보아 1097년 중국의 허난성[河南省] 백암산
숭명사의 종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로로 전등사에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전등사 약사전 傳燈寺藥師殿
개요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전등사에 있는 약사여래불을 모신 조선시대 중기의 건물.
지정번호 : 보물 제179호
소재지 :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전등사
시대 : 조선 중기
크기 :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보물 제179호.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다포집 계통에 속하는 건물로 정면 3칸에는
각각 기둥 사이에 공간포(空間包)를 한 개씩 배치하고 있으나, 측면과 후면에는 생략되어 대신
화반(華盤)을 두고 있으며 공포(뱀包)는 기둥 위에만 배열되어 있다. 건물 규모가 작아서 그런지
평방(平枋)을 사용하지 않고 공간포는 창방(昌枋) 위에 직접 놓여 있는데 이러한 점에서는 다폿집
형식을 다소 벗어났다. 공포는 안으로는 2출목이고 밖으로는 l출목이며 쇠서와 첨차(墅遮) 등의
형태는 같은 경내에 있는 대웅전의 그것과 흡사하고 건축연대도 대략 같은 시기로 짐작된다.
초지진 草芝鎭
개요
인천 강화군 길상면(吉祥面) 초지리에 해안선을 지키기 위하여 설치한 진.
지정번호 : 사적 제225호
지정연도 : 1971년
소재지 : 인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시대 : 1656년(효종 7) 설치
크기 : 면적 4,233㎡
종류 : 진(鎭)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1971년에 사적 제225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4,233m2이다.
1656년(효종 7) 강화유수(江華留守) 홍중보(洪重普)가 처음 설치하였다. 66년(현종 7) 병마만호
(兵馬萬戶)를 두었다가 1763년(영조 39)에 첨사(僉使)로 승격시켰는데 이 때의 병력은 병마첨절별사
(兵馬僉節別使) 1명, 군관 11명, 사병 98명, 돈군(墩軍) 18명, 목자(牧子) 210명, 진선(鎭船) 3척과
무기 다수가 있었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이 곳에서 프랑스 함대의 로즈 소장과
싸웠으며, 1871년(고종 8)에는 미국 아시아함대의 로저스 중장이 이 곳에 침입하였을 때 필사의
방어전을 전개하다 함락된 바 있었고, 1875년(고종 12)에는 일본 군함 운요호[雲揚號]와도 이 곳에서
교전하였다.
이 초지진은 모두 허물어져 돈(墩)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던 것을 1973년 초지돈만 복원하였다.
돈에는 3곳의 포좌(砲座)가 있고 총좌(銃座)가 100여 곳 있다. 성은 높이 4m 정도에 장축이 100m쯤
되는 타원형의 돈이다. 돈 안에는 조선 말의 대포 1문이 포각 속에 전시되어 있는데, 포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 홍살로 되어 있으며, 대포의 길이는 2.32m, 입지름 40cm이다.
초지진 포좌 사진 http://msrv.yahoo.co.kr/enc/image/50/50250.jpg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좋은 접근방법 이십니다.
▣ 김윤식 -
▣ 김윤만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