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할아버지와 강화 관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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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03-02-08 04:12 조회1,506회 댓글0건본문
김방경(金方慶)
자는 본연(本然)이며 안동인(安東人). 신라 경순왕의 원손(遠孫)이고, 아버지는 효인(孝印)이다. 성품은 엄의(嚴毅)하고 어려서 학문에 뜻을 두고 글씨를 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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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경(方慶)이] 내직으로 옮겨 병부상서추밀원부사(丙部尙書樞密院副使)가 되었다. 10년에 임연(林衍)이 원종(元宗)을 폐위(廢位)하고 안경공(安慶公) 온(溫)을 왕위에 세웠다. 이때에 세자(世子)는 몽고에 있다가 환국하는 길이었는데 의주(義州)에 이르러서 변을 듣고 다시 연경(燕京)으로 들어가 발병(發兵)해서 임연(林衍)을 토벌할 것을 청하였다.
세조(世祖)는 곧 맹격도(猛擊圖)를 파견하여 군사 2,000명을 이끌고 보내려고 하였다. 중서성(中書省)이 세자에게 말하기를 “지금 맹격도가 가서 오랫동안 서경에 머물게 되면, 임연(林衍)이 반드시 군량(軍糧)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마땅히 연(衍)과 한패가 되지 않은 자를 같이 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이때 방경(方慶)이 사신으로 가서 연경에 있었다. 시중(侍中) 이장용(李藏用)이 말하기를, “방경(方慶)은 두 번식이나 북계(北界)를 진수(鎭守)하여 이민(吏民)이 모두 경애하는 바이니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하였다. 세자도 그 말을 옳게 생각하여 곧 하명하여 같이 가게 하였다.
방경(方慶)이 말하기를 “관군이 서경에 이르러서 만약 대동강을 건너면, 왕경(王京)이 자연히 어지러워져서 어떤 변이 생길지 모르니 마땅히 제지(帝旨)를 받아서 강을 건너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세조에게 청하여 관군에게 대동강을 건너는 것을 금하는 조서(詔書)를 내렸다. 발군(發軍)하여 동경(東京)에 이르렀을 때 왕이 이미 복위되었다는 말을 듣고 다시 연경으로 돌아갔다.
이 해 10월에 서경병마사(西京兵馬使) 영기관(營記官) 최탄(崔坦)․한신(韓愼) 등 임연(林衍)의 반란을 핑계삼아 서경유수(西京留守)와 제주(諸州)의 수령을 죽이고, 서북 제성(諸城)을 들어서 몽고에 붙었다.
이듬해 1월에 몽고는 탄(坦) 등의 청을 받아 군사의 수를 증가시키고 맹격도를 파견하여 서경을 지키게 하였다. 방경(方慶)은 이들과 함께 서경으로 왔다. 부로(父老)들이 앞을 다투어 와서 방경(方慶)을 환영하고 울면서 말하기를 “김공(金公)이 있었더라면 어찌 탄(坦)․신(愼)의 일이 생겼겠는가.” 하였다. 탄(坦) 등도 또한 조석으로 와서 뵈었다. 탄(坦) 등은 몽고병의 힘을 빌어서 국가를 도모하려는 속셈이 있었다. 후하게 맹격도에게 뇌물을 주면서 이를 유혹하였다.
이보다 앞서 왕이 몽고에 입조(入朝)하였을 때 임연(林衍)은 왕이 군사를 몽고 황제에게 청하여 환국할 것을 두려워하여 이를 막고자 하여, 지론(指論) 지보대(智甫大)로 하여금 야별초(夜別抄)를 인솔하여 황주(黃州)에 주둔하게 하고 또 신의군(信義軍)을 파견하여 초도(椒島)에 주둔하게 하여 대비하였다.
탄(坦) 등은 이것을 알고 몰래 맹격도에게 말하기를 “연(衍) 등이 관군을 습격해서 죽이고, 장차 권토(捲土)해서 제주(濟州)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관인(官人)께서는 사냥한다는 핑계로 나가서 경군(京軍)의 왕래하는 상황을 본다면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반드시 관군을 막고 항거할 터이니 관인께서 이들을 쫓고 또 우리에게 서로 알리면 우리들이 곧 수군(水軍)을 이끌고 보길도[甫音島]․말도(末島)(모두 강화 근해에 있다.)로 진격할 것이다. 관인께서 군병을 이끌고 장구(長驅)해서 착량[窄梁:지금의 손돌항(孫突項) 강화 동남 갑곶[甲串] 하류 협애(狹隘)한 곳]에 임하면 그들은 진퇴(進退)할 갈이 없어질 것이다. 곧 장계를 황제에게 올리고 그런 다음에 이들을 친다면 왕경(王京)을 점령할 수 있을 것이고, 자녀옥백(子女玉帛)이 딴 사람의 것이 아닐 것이다.” 하였다.
※‘보길도’를 한자 ‘甫音島’로 적은 것으로 보아 강화도 옆의 ‘볼음도’를 가리키는 듯함.
탄(坦)의 내상(內廂)에 오득공(吳得公)이라는 자가 있어서 이 말을 듣고 몰래 방경(方慶)에게 고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방경(方慶)이 맹격도의 관사에 가자 제군(諸軍)이 모두 모였다. 맹격도가 방경(方慶)에게 말하기를, “객지 생활이 오래 되어 심심하니 오늘은 사냥을 할까 하는데 공(公)은 나를 따라가겠는가 아니 가겠는가.” 하고 물었다. 방경(方慶)은 “어느쪽으로 사냥을 가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대동강을 건너 황(黃)․봉주(鳳州)까지 갔다가 초도(椒島)로 들어가려고 할 뿐”이라고 대답하였다. 방경(方慶)이 말하기를 “앞서 제지(帝旨)가 있는 것은 관인께서도 알고 있을 터인데 어찌 강을 건너려고 하는가.” 하였다. 맹격도가 말하기를 “몽고 사람이 사냥을 일삼는 것은 황제도 잘 알고 계실 터인데 그대는 어째서 이를 못하게 하느냐.”고 하였다.
방경(方慶)은 “내가 사냥을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강을 건너는 것을 못 하게 할 뿐이다. 만약 사냥을 하려고 한다면 어찌 꼭 강을 건널 필요가 있겠는가. 만약 굳이 가려고 한다면 황제의 명을 받아서 해야 한다.”고 고집하여 듣지 않았다. 또 몰래 지보대(智甫大) 등을 타일러 속히 군사를 물러나게 하였다.
맹격도는 깊이 방경(方慶)의 충성심을 알게 되고 크게 존경하게 되어, 사실대로 고하여 말하기를 “왕경(王京)을 멸하려고 하는 자는 최탄(崔坦) 등뿐이 아니고, 그 밖에도 또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이 해 여름에 삼별초가 반(叛)하여 장군 배중손(裵仲孫) 등이 승화후(昇化侯) 온(溫)을 옹립하여 왕을 삼고, 또 방경(方慶)에게 선함(船艦)을 모두 모아서 공사의 재화와 자녀를 싣고 바다를 건너 남쪽으로 갔다. 왕은 참지정사(參知政事) 신은전(申恩佺)을 추토사(追討使)로 삼고, 또 방경(方慶)에게 명하여 병(兵) 60여 명을 가지고 몽고의 송만호(宋萬戶)의 병(兵) 1,000여 명과 함께 이를 추격하여 바다로 나갔다. 적선(賊船)이 영흥도(靈興島:인천 앞바다에 있다.)에 정박하는 것을 바라보고 방경(方慶)이 이를 공격하려고 하였으나, 송만호가 두려워하여 못 하게 하였다. 적(賊)은 떠나가서 드디어 진도(珍島)에 의지하여 주군(州郡)을 침략하였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윤만 -
▣ 김발용 - ㄱㅏㅁ사합니다.
▣ 솔내영환 -
▣ 김영윤 -
▣ 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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