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눈물』 연출자 김재형PD(2) <출연 섭외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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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3-02-20 06:05 조회1,997회 댓글0건본문
『용의 눈물』 연출자 김재형PD(2) <출연 섭외의 어려움>
- 무명 시절 스타로 키워준 배우가 나중에 출연 제의를 거절하면 『키워줬더니 그럴 수가 있는가』하는
감정이 들지 않습니까.
『제가 스타로 만들었다는 생각은 전혀 않해요. 단지 그런 그릇을 만들어 줬다는 거지. 제 작품을 통해
그 배우가 참 혼신의 연기를 다해줘서 박수를 받은 거지요. 그렇게 하는 것이 연출자의 의무입니다. 연출자는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 숨어서 해야 합니다.』
- 인간적으로는 괘씸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사람이니까 서운한 것은 있지만, 같은 재목을 갖고 밤낮 집을 지어봐야 똑같은 집밖에 더 짓겠습니까.
설계를 다시 해서 새로운 인재를 찾아 키우고 해야지요. 새로운 매력 덩어리를 찾아 잘 다듬어서 장가도
보내고 시집도 보내야 하는 게 연출자가 할 일입니다. 내가 너 키웠는데 내 말 않들어 하는 것은 구시대적
생각입니다. 이건 자유업이예요. 선택은 연출자가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연기자의 의사도 있는 겁니다.
아니꼽고 더럽다고 생각하면 연출 더 못해요.』
--민속촌을 찾은 날 이방원 역을 맡은 유동근씨를 잠시 만났다. 그 역시 김 PD가 출연 제의를 했을 때 처음엔
거절했다고 한다. TBC 23기 출신인 유동근씨가 탤런트로서 첫 주인공을 맡은 작품이 「꽂반지」라는 사극.
이 사극의 연출자가 다름아닌 김 PD였다. 유동근씨 스스로도 『그 때부터 화초에 물을 주듯이 저를 키워준
분』이라고 말할 정도.
--『사극하기 너무 힘들어요. 속된 말로 사극해 봐야 CF가 들어옵니까 어린 나이에는 왜 빨리 성장하고
싶은 욕망이 있잖아요. 한 때는 제가 국장님(김 PD를 지칭)으로부터 도망가려고 했어요.』
--드라마 「애인」 촬영 중간에 국장님이 오셨어요. 일산에 한번, 분당에 한번. 하루는 분당에 한번 오셨는데,
10M 앞에 배가 이만큼 나온 분이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까 국장님이예요. 당시 「애인」
연출자인 이창순 PD가 촬영은 좀 있다 할 테니까 가서 얘기를 나누라고 하는 겁니다.
--마침 석양이 걸렸을 때인데 국장님이 저에게 「동근아 저 석양이 얼마나 아름답냐」고 해요. 갑자기
웬 석양 얘기를 하시나 생각하면서 「아이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저 지는 석양이 난데, 내가 저렇게
멋있게 져야 하지 않겠느냐. 아무리 생각해도 방원역은 너다.」 하는 겁니다. 그래 제가 아무말없이 하겠
습니다. 했어요. 당시 「애인」이 한창 인기가 있어 영화를 포함해 작품이 정신없이 많이 들어 왔는데,
그 말 한 마디에 이방원 역을 하겠다고 했어요.
--김 PD는 배역을 정할 때 방원역과 방원의 처 민씨역(최명길)을 맡을 배우를 우선 결정한 후 나머지 배역
인물을 택했다고 한다. 정도전을 맡은 김흥기씨는 제의를 받자 이전에 정도전 역을 맡은 적이 있으니 이번
에는 이숙번 역을 맡겨 달라고 했으나 김 PD가 『이숙번은 너처럼 지적인 이미지가 아니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섭외도 어렵고, 시청율 높이기도 힘들고 하는 이런 이유들 때문에 사실 사극은 방송에서는 외로운 분야로
통한다. 유동근씨는 『연출자 김 PD를 한 마디로 하면 뭐라고 얘기할 수 있느냐』고 하자 『사극이란 외로운
분야를 30년 이상을 고수해 오신 분』이라고 했다.
『사실 이번 대하드라마는 모두가 기대를 않했습니다. 국장님이 이거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왜 그러십니까
하고 말리는 쪽이었어요.「찬란한 여명」이 그 저조한 시청율 속에서도 어려운 작업을 계속한 것은 사실
KBS니까 꿋꿋이 한 것이라고 봅니다. 시청율이 낮다고 대하드라마를 외면하고 맨 날 인기드라마만 따라가면
드라마의 질은 향상되지 못합니다. 「찬란한 여명」이 끝나고 어느 신문기자가 작품에 대한 칭찬을 해
줬을 때 연기자로서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더라고요.』
<출전 : 월간 조선/1997. 7월호>
▣ 김항용 - 감사합니다. 이런 자료를 어디서---
▣ 솔내영환 -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은회 - 잘 읽었습니다.
▣ 김영윤 -
- 무명 시절 스타로 키워준 배우가 나중에 출연 제의를 거절하면 『키워줬더니 그럴 수가 있는가』하는
감정이 들지 않습니까.
『제가 스타로 만들었다는 생각은 전혀 않해요. 단지 그런 그릇을 만들어 줬다는 거지. 제 작품을 통해
그 배우가 참 혼신의 연기를 다해줘서 박수를 받은 거지요. 그렇게 하는 것이 연출자의 의무입니다. 연출자는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 숨어서 해야 합니다.』
- 인간적으로는 괘씸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사람이니까 서운한 것은 있지만, 같은 재목을 갖고 밤낮 집을 지어봐야 똑같은 집밖에 더 짓겠습니까.
설계를 다시 해서 새로운 인재를 찾아 키우고 해야지요. 새로운 매력 덩어리를 찾아 잘 다듬어서 장가도
보내고 시집도 보내야 하는 게 연출자가 할 일입니다. 내가 너 키웠는데 내 말 않들어 하는 것은 구시대적
생각입니다. 이건 자유업이예요. 선택은 연출자가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연기자의 의사도 있는 겁니다.
아니꼽고 더럽다고 생각하면 연출 더 못해요.』
--민속촌을 찾은 날 이방원 역을 맡은 유동근씨를 잠시 만났다. 그 역시 김 PD가 출연 제의를 했을 때 처음엔
거절했다고 한다. TBC 23기 출신인 유동근씨가 탤런트로서 첫 주인공을 맡은 작품이 「꽂반지」라는 사극.
이 사극의 연출자가 다름아닌 김 PD였다. 유동근씨 스스로도 『그 때부터 화초에 물을 주듯이 저를 키워준
분』이라고 말할 정도.
--『사극하기 너무 힘들어요. 속된 말로 사극해 봐야 CF가 들어옵니까 어린 나이에는 왜 빨리 성장하고
싶은 욕망이 있잖아요. 한 때는 제가 국장님(김 PD를 지칭)으로부터 도망가려고 했어요.』
--드라마 「애인」 촬영 중간에 국장님이 오셨어요. 일산에 한번, 분당에 한번. 하루는 분당에 한번 오셨는데,
10M 앞에 배가 이만큼 나온 분이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까 국장님이예요. 당시 「애인」
연출자인 이창순 PD가 촬영은 좀 있다 할 테니까 가서 얘기를 나누라고 하는 겁니다.
--마침 석양이 걸렸을 때인데 국장님이 저에게 「동근아 저 석양이 얼마나 아름답냐」고 해요. 갑자기
웬 석양 얘기를 하시나 생각하면서 「아이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저 지는 석양이 난데, 내가 저렇게
멋있게 져야 하지 않겠느냐. 아무리 생각해도 방원역은 너다.」 하는 겁니다. 그래 제가 아무말없이 하겠
습니다. 했어요. 당시 「애인」이 한창 인기가 있어 영화를 포함해 작품이 정신없이 많이 들어 왔는데,
그 말 한 마디에 이방원 역을 하겠다고 했어요.
--김 PD는 배역을 정할 때 방원역과 방원의 처 민씨역(최명길)을 맡을 배우를 우선 결정한 후 나머지 배역
인물을 택했다고 한다. 정도전을 맡은 김흥기씨는 제의를 받자 이전에 정도전 역을 맡은 적이 있으니 이번
에는 이숙번 역을 맡겨 달라고 했으나 김 PD가 『이숙번은 너처럼 지적인 이미지가 아니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섭외도 어렵고, 시청율 높이기도 힘들고 하는 이런 이유들 때문에 사실 사극은 방송에서는 외로운 분야로
통한다. 유동근씨는 『연출자 김 PD를 한 마디로 하면 뭐라고 얘기할 수 있느냐』고 하자 『사극이란 외로운
분야를 30년 이상을 고수해 오신 분』이라고 했다.
『사실 이번 대하드라마는 모두가 기대를 않했습니다. 국장님이 이거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왜 그러십니까
하고 말리는 쪽이었어요.「찬란한 여명」이 그 저조한 시청율 속에서도 어려운 작업을 계속한 것은 사실
KBS니까 꿋꿋이 한 것이라고 봅니다. 시청율이 낮다고 대하드라마를 외면하고 맨 날 인기드라마만 따라가면
드라마의 질은 향상되지 못합니다. 「찬란한 여명」이 끝나고 어느 신문기자가 작품에 대한 칭찬을 해
줬을 때 연기자로서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더라고요.』
<출전 : 월간 조선/1997. 7월호>
▣ 김항용 - 감사합니다. 이런 자료를 어디서---
▣ 솔내영환 -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은회 - 잘 읽었습니다.
▣ 김영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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