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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영회(後耆英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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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회 작성일03-03-14 18:19 조회1,5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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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영회(後耆英會)의 서

 기영회(耆英會)가 생긴 지 오래다.

 당(唐) 나라 백낙천(白樂天)과 송(宋) 나라 문노공(文潞公)이 모두 낙중(洛中)의 모임을 가졌는데, 당시에 이를 찬미하여 그림으로 그려 전하였다.

우리 동방에서도 전조(前朝 고려를 가리킨다)가 전성할 때에 태위(太尉) 쌍명재(雙明齋) 최공 당(崔公?)이 늙어서 벼슬에서 물러난 사대부 7인으로 더불어 두 분의 하

던 일을 추모하여, 비로소 해동기영회(海東耆英會)를 만들어 매월 열흘마다 한 번씩 모여 오직 마시고 읊조리는 것으로 즐길 뿐, 세간의 시비득실을 말하지 않기로 기약

하였었는데, 그 뒤에 이를 계승하여 하는 자가 부처를 숭배하는 자리로 만들어서 늙은이들로 하여금 번거로이 자주 절하게까지 하였으니, 자못 천명을 알고 미혹되지

않는 군자의 우유자락(優遊自樂)하는 뜻을 상실한 것이다. 지금 영사평부사(領司平府事)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이공(李公)이 집에 소장된 옛 책을 열람하다가, 그 선

인이 간직했던 쌍명재의 기로회도서(耆老會圖序)를 얻고 개연히 흠모하여, 당시 훈업과 덕망이 있어 대중의 존경을 받는 이 10인을 맞이하여 회(會)를 만들고 ‘지금부

터 70세 이상으로 덕망과 작위를 함께 갖춘 이라야 입회(入會)를 허락하되, 이미 정승 이상을 지낸 이는 나이에 구애 않기’로 약속하여 영구히 지켜 잃지 않을 것을 기

약하였다. 회중(會中)의 예식은 모두 쌍명재의 옛 규제를 모방하여 아래와 같이 갖추 기록하고 나에게 지문(誌文)을 요청하였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서원공(西原

公)은 태위(太尉)의 미생(彌甥 자매(?妹)의 손자)으로, 그 청아한 덕량과 높은 풍치는 선열을 빛냈고 또한 기영(耆英)을 불러 모아 다시 이 회를 일으켜, 사귐에 서로

경애하고 화목을 이루어 그 낙을 같이하며 화기애애하고 예도가 흡족하니, 국가의 원기(元氣) 배양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지금부터 이 회의 전승은 의당 우리나라 국운과 함께 무궁한 장래에 전해지리라. 영락(永樂) 2년(태종 4, 1404) 3월 일




▣ 김윤만 -
▣ 김태서 - 잘 보았습니다
▣ 김주회 - 귀한 자료 잘 보았습니다. 출전도 함께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김은회 - 양촌 권근 문집중에서 입니다.
▣ 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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