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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약재잠 -이달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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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3-24 21:23 조회1,9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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惕若齋箴      李達衷

毋不敬 毋自欺 馭朽索 攀古枝 進知退 安思危 厲無咎 念在玆
무불경 무자기 어후삭 반고지 진지퇴 안사위 려무구 념재자

공경하지 아니함이 없어야하며
스스로 속임이 없어야한다.
썩은 새끼로 말을 다루듯(조심)하라 *1
마른 나뭇가지에 매달린듯(조심)하고*2
나아갈 때 물러설 줄을 알아야 하고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면
불편한 일이 있어도 재앙되는 일이 없을 것이니
생각이 (늘) 이에 있으라

*1(썩을 새끼를 갖고 여섯 마리 말을 다루듯 위태롭고 조심된다. -書經-)
*2(東晉의 명사들이 모여서 위태로움에 대해서 시를 짓는데, 그 중 한 사람이“백살된 노인이 높은 나무의 마른 가지에 매달려 있다”고 했다)


이달충(李達衷)
?~1385(우왕 11). 고려말의 유학자■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지중(止中), 호는 제정(霽亭). 첨의참리(僉議參理) 천(#천45)의 아들이다.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를 거쳐서 공민왕 때 전리판서(典理判書),감찰대부(監察大夫)를 역임하였다.
1359년(공민왕 8) 호부상서로 동북면병마사가 되었다. 호부상서로 있던 1360년 팔관회 때 왕의 노여움을 사서 파면되었으나, 훌륭한 학자였으므로 1366년에 밀직제학으로 다시 기용되었다. 신돈이 전횡하던 때에 그에게 주색을 일삼는다고 공석에서 직언한 것이 화근이 되어 다시 파면되었다.
신돈이 주살(誅殺)된 뒤에 계림부윤(鷄林府尹)이 되었고, 1385년(우왕11)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에 봉하여졌다.
저서로는 《제정집》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김구용과 사돈(아들 김명리의 장인)이며,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돈독한 사이였음

 




▣ 김주회 - 이달충은 김구용과 돈독한 사이였으며, 김구용의 아들 김명리의 장인! 기억하겠습니다.
▣ 김윤만 - 직제학공(맹헌), 참의공(중서), 사인공(계우) 할아버지의 외할아버지임을 처음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윤식 - 대부님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만 척약재명과 척약재찬 번역문도 아울러 가르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김은회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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