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무인 이야기>-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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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3-04-27 18:44 조회1,492회 댓글0건본문
강화도 천도는 무신정권 유지책
첫 권이 나온 지 근 이태 만에 <고려 무인 이야기> 2~3권이 ‘최씨 왕조’라는 다소 논쟁적인 부제를 달고 나왔다.
첫 권 <4인의 실력자>가 이의방-정중부-경대승-이의민 등의 무인 집권 성립기의 쿠데타와 권력투쟁의 ‘현장’을 버무렸다면, 두 권으로 묶인 <최씨 왕조>는 최충헌-최이(=최우)-최항-최의로 이어지는 최씨 일가 4대에 걸친 세습 집권기를 아우른다. 1196년에서 1258년에 이르는 62년 세월이다. 2~3권을 가르는 기점은 몽골 침략기 고려 정가를 달궜던 ‘강화도 천도’라는 사건이다.
왕도 마음대로 바꾼 무인들은
왜 스스로 왕이 되지 않았을까
삼별초가 정말 대몽항쟁 주역일까
<고려 무인 이야기최씨 왕조>의 얼개는 기본적으로 정치사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통사류, 개설서와는 다르다. 지은이의 말을 뒤틀어 말하자면 이 책은 딱딱한 씨앗에다 싱싱한 과육으로 생기를 돋운 ‘이야기하는 역사’라 할 만하다.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 사료를 비롯해 기존 연구성과들이 이 책에 녹아 있지만, 지은이가 글을 써내려가는 방식은 기존 연구성과들을 한껏 씹은 뒤 ‘이야기하듯’ 풀어내는 식이다. 더구나 이야기꾼의 이야기체는 아주 단정한 단문들인데, 이 짧은 문장들은 속도감 있게 이어지며 길다란 이야기를 한 호흡 안으로 녹여내는 만만찮은 힘을 보여준다.
고려의 무인 집권기 무인 실력자들은 “국왕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권력의 정상에서 1170~1270년 100년 동안이나 통치”했다. 그들은 마음에 안들면 마음대로 왕을 갈아치웠다.
이 책을 꿰는 관심사는 아주 대중적인 것이다. 그들 무인들은 왜 왕이 되지 않았을까 또 왕이 되지 않았으면서도 어떻게 통치권을 자식들에게 세습하기까지 했으며 게다가 오래도록 집권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은 그 질문의 한 대답을 당시 고려 주류 집단, 곧 문벌 귀족 체제가 무인 집권기에도 왕성한 힘을 발했다는 데에서 찾는다. 그들은 왕은 자주 바꿨지만 ‘역성 쿠데타’로까지 나아갈 수는 없었다. “최씨 집권자들이 당대의 지배 정치세력과 그들의 제도 어느 것 하나 변화시키지 않았으며, 최씨 일가가 장기집권한 것은 역설적이지만 그랬기에 가능했다.” 최충헌은 전임자 이의민을 주살하고 국왕 명종을 손아귀에 넣는 쿠데타를 일으킨다. 그리고선 그가 꾀한 것은 문신 귀족들과의 제휴였다. 그에게 적은 문신들이 아니라 무신들이었던 것이다.
<최씨일가 세습집권 62년
딱딱한 사료 이야기하듯 풀어>
때로 ‘사실’과 ‘상상력’ 혹은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넘나드는 이 책의 맹점은 이야기꾼의 ‘경쾌한 듯 냉정한 시선’에 가려진다. 이 시선은 등장 인물들에 대한 미화나, 당대에 대한 몰입을 경쾌하게 거절한다. 가령 그 일단은 이런 것이다. 최충헌의 아들 최이는 고종 19년인 1232년 개경에서 강화도(=강도)로 천도를 단행한다. 국왕 등 여론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뤄진 천도의 명분은 대몽항쟁에 있었다. 최이 정권 이후 최씨 ‘왕조’는 강화도에서 끝까지 몽골 복속을 거부했다. 그렇다면 최이 정권은 자주적 정권이고, 천도에 반대했던 화친파는 사대주의적이었나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당시 몽골과의 화친으로 불안하나마 평화가 유지되던 즈음이었으니 천도는 몽골에게는 ‘저항’을 의미했다. 그것은 몽골의 대대적 재침략과 살육을 뜻했다. 지은이는 최이의 천도는 “정권 유지 차원에서 이뤄진 조치”였으며, 당시 민심을 거스른 것이었다고 말한다. 민심은 천도에 대한 저항으로 거세게 반발했다. 게다가 싸우지 않았으되, 복속하지도 않았던, 최이 정권의 대몽항쟁의 이중성! 최씨의 강화도 정권은 대몽골 항쟁에서 중앙 군을 동원한 전면전에 나서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대몽골 전투는 지방군이나 현지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강화도와 최씨 정권은 평화를 구가했는데 그것은 한반도 본토가 처참하게 살육되고 유린당했던 ‘피의 대가’였다는 것이다. 1231년 침략해 30년 동안 이어진 전쟁에서, 몽골은 강화도 정권의 항복을 받아내려고 더욱더 한반도 내륙에서 살육을 자행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 “최씨 정권에 아부했던 문인” 이규보 등 최씨 정권의 수명을 늘이는 데 한몫했던 문인 집단 얘기, “삼별초는 대몽항쟁의 주역의 전혀 아니며, 이들은 대부분 수도 강화도만을 지키는 정권 수호 역할에 더 충실했다”는 기술, 강화도 정권의 내륙 백성들에 대한 가혹한 조세 수취로 오히려 농민들이 몽골 군대를 환영했다는 사서 기록도 흥미롭다.
시리즈의 마지막 4권에는 최씨 정권 붕괴 이후 그 붕괴의 주역이던 무인 김준 등의 이야기가 담기게 된다고 한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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