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125) 서거당시 신문 발췌(28-29일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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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5-29 17:38 조회1,526회 댓글0건본문
오직 비분통탄!
범인은 엄중취조
채 육군총참모장 담
생략
시내 요정 자진휴업
선생의 유덕을 추모
생략
자유, 통일에 헌신
백범서거와 유엔한위 공한
공보처 발표
생략
이총리 일행 귀경
김구옹 유해에 배례
생략
長城이룬 조객의 장사진
송죽같은 선생의 애국심 상징
인산인해의 조객 40만명
눈물에 잠긴 경교장
행인의 발걸음도 힘없어
神明도 굽어보라!
백범선생을 추모하는 조문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 경교장은 앞뜰이나 뒷동산이나 문자 그대로의
눈물의 저수지로 변한 감이 없지 않았다. 가까운 곳은 고사하고 멀리 지방으로부터 선생의 영전에
배례키 위하여 수일의 비싼 여관요금을 치루어가며 일대의 영웅이 마지막 떠나시는 길손를 환송키
위한 사람은 물론 나이 어린 소학생까지도 친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죽음과 같이 통곡하는 광경이야말로
선생이 아니시면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우리 대한 나라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정경이었는데 어찌하여
이 위대한 지도자는 왜놈마저 없는 이 땅에서 왜놈의 총탄에서 생존하여 온 것이 말하기도 부끄러운
동족의 흉탄으로 쓰러지게 되었단 것인가. 참으로 하늘도 땅도 알길 없는 울어도 한이 없는
통탄지사인 것이다.
그날 그날의 생활에 피로한 노동자들도 가난한 주머니를 털어가며 양초 한갑, 보리차 한봉지, 담배
서네갑을 사들고 조문하는가 하면 여학생들은 어울리지도 않는 교복에 몽상을 머리에 하고
[선생님, 선생님]하고 우는 소리는 차마 들을 수 없으며 밤이 깊어가는 경교장 앞을 지나가는
사람도 들려오는 울음에 맞추어 어깨에는 하나의 힘도 없이 발을 지향없이 옮기는 것이었다.
특히 김상옥義士의 유가족으로 오래도록 그 행방을 밝힐 수 없었던 김태옥씨는 선생 서거의 비보를
듣고 28일 저녁 금일봉과 함께 경교장을 심방하였는데 해방을 몰랐던 수많은 선열유가족들이 속속
조문중이라 한다.
선생은 쓰러졌으나 선생이 남기고 가신 위대한 자주통일정신과 온 민족의 가슴에 흐르는 민족의
순수한 혈액은 썩어지지 않을 것이다. 민족과 선생은 살아 계실 때나 떠나 가셨을 때나 오직
한결같이 건강하게 고국산천에 넘처 흐르고 선생의 조국통일의 정신은 우리 인민의 영원의
신조로서 만대에 계승될 것이다. 선생은 흉탄에 쓰러졌으나 우리 민족은 이제는 또다시 동족의
총에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남은 단 하나의 길은 민족의 적에 대한 끊임없는 싸움 싸움뿐일
것이다. 선생을 애도히 여기며 그 뒤를 따르는 무수한 인민들의 충혈된 눈과 눈 소리 없이 굳은
악수로 매쳐져 가는 경교장 안의 뜨거운 입김과 탄식은 결코 선생으로 하여금 안도코 떠나게 하는
노래 아닌 민족의 장송곡일 것이다. 한번 백범선생 서거의 비보가 들리자 물밀 듯 경교장으로 모여
오는 조문객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거니와 29일 오후 5시 현재로 기명된 조문객의 수만 무려
40만명의 다수에 달하고 있다 한다. 이같이 경교장은 조문객의 홍수로 대혼잡을 이루고 있음에
비추어 장의위원회에서는 이 혼잡을 완화하기 위하여 29일부터 장의 전날까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조문하여 주기를 요망하고 있다.
조문객 시간 배정
사회단체는 3,4 양일
고 백범김구선생의 유해는 금 29일 입관하기로 되었다 함은 기보도한 바 있거니와 김구선생의
참변의 비보를 접한 각계인사들의 조문으로 경교장은 대혼잡을 이루고 있어 장의위원회에서는
이 혼잡을 피하기 위하여 29일부터 5일까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조문하여 주시기 바란다 한다.
*입관절차 29일 3시-5시 殮
5시-6시 入棺
*조문시간 29일 상오 각계대표인사
하오 일반인사
30일 정부각기관 및 각정당 대표인사
1일 각종교단체인사
2일 각학교대표인사
3-4일 사회단체대표인사
5일 發靷
슬프다 太極旗여!
弔旗됨을 누가 願했나
거인은 영원히 가다. 하늘 빛나는 혜성이 홀연히 땅에 떨어지듯 백범 김구선생은 유언 한마디
없이 고이고이 잠들었다. 가슴을 뚫는 듯한 눈동자, 불을 뿜는 듯한 입술도 한발의 흉탄으로
성벽처럼 굳게 다쳐지고 검은 동상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민족의 통곡이 우뢰와 같이 남북을
통하여 진동하는 작 29일로 옹의 가신 3일째를 맞아 검은 구름이 얕이 드는 서울거리 골목마다
집위에는 태극기가 휘날리었다. 김구옹의 급서에 대한 국민들의 슬픔을 표시하는 조기이다.
늙은이도 젊은이들도 태극기를 향하여 묵례하고 눈동자에는 한줄기 눈물이 아롱졌다.
▣ 김태영 - 우리국민 모두의슬픔인 당시의 백범선조님의 서거에 관한 언론자료 잘읽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윤만 - 동서고금을 통해 위인의 죽음은 남다른 면이 있나봅니다.
▣ 김주회 - 귀한 자료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태서 - 잘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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