寄軒(기헌) 金琦(김기)의 丁生傳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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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6-06 03:11 조회1,690회 댓글0건본문
寄軒(기헌) 金琦(김기)의 丁生傳 (05)
■ 연세어문학 제5집 (1974,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p15
失意의 美學 -미발표 한문소설 丁生傳 考- (송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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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 作品論
(1) 흔한 人生의 이야기
본 작품의 前半은 언제나 있을 수 있고 또 있는 흔한 人生의 이야기로 시작됐다. 주인공 정생이 鄕班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은 곧 주인공이 이 작품이 형성된 당시 사회에서는 가장 많은 수의 양반 계층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로 내세워 짐으로써 그런 계층의 인생을 이야기로 전개해 가려는 작자의 작품의도에서 나왔다고 봐야겠다.
본 작품이 형성된 영,정조대는 이조의 양반 계급이 그 계층성을 비교적 固定化한 시기로서 정권 圈內에서 집권세력으로 등장해 있거나 비록 圈外에 있더라도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소위 國班層과 이런 層과는 달리 중앙 官路에는 많이 진출하지 못했고 또 정권 圈에 크게 영향을 주지도 못했던 鄕,土班層으로 분립형성돼 있었다고 보여진다.
이렇게 볼 때, 鄕班층에 속한 사람은 비록 개인적 인격이나 재능을 훌륭하게 소유했다 하더라도 이른바 그 출세의 前程은 한계성이 명확하게 보이는 것이며 여기서 鄕班층의 士類는 위대한 소망이나 웅지를 품기보다는 주어진 여건에 적응하며 평범한 생활을 영위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인공 정생은 주위 사람들이 期以早達했는데도 한번도 출세의 뜻이나 꿈을 가져보는 일이 없었으며, 이렇게 무료한 일상생활을 渡日해야 하는 정생이 吏曹書吏의 딸과 혈기에 내맡긴 연애에 빠지는 것은 인간의 성욕본능적 所使라기보다 보상심리의 필연적 작용으로 인한 행동으로 보아야 하겠다.
본 작품은 이조시대 소설에서 거의 일률적으로 나오는 주인공의 출세욕이나 출세행적이 전혀 이야기되지 않고 있으며, 다만 자신이 저지른 연애의 후유증을 수습할 능력도 없는 그런 무력한 書生으로 정생은 그려지고 있다.
그는 출세욕이나 수습력만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자신의 평범한 생활, 곧 처자 俯育이나 식생활까지도 자력으로 해결하지 못하여 고모 권상서 부인의 보호로 유지되는 것이며 그 고모가 죽자 생활을 유지할 수 없어 낙향하여 빈궁의 생활을 겪는 것이다.
만일 정생이 최소한의 경제생활이라도 해결해 갈 수 있는 爲人이었다면 그의 半生 이후의 생의 방향이나 서리 딸에게 丈夫의 신의를 저버린 가책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자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무력화된 정생의 능력을 이조서리의 딸과 혈기에 내맡긴 연애에 정생 자신이 휘말려 들어간다는 사실과 함께 이 작품형성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미 말한바대로 정생이 출세의 한계성을 가진 향반층의 자제로서 꿈을 체념한 사람이라면 그런 무모한 연애의 과오를 저지르고서도 그 뒷일을 수습하지 못한 채 당시 사회의 제도적, 윤리적 제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장부 신의를 저버린 가책만을 되씹던 수많은 당시의 젊은이들을 대표하는 것으로 이런 과오된 연애나 정생의 무능력은 의욕이 좌절된 수많은 당시 젊은이들의 생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것은 또 행동성이 결여된 이조 知性들의 생활모형의 하나일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형들을 대표한 정생이므로 그는 광통교에서 만난 私生子를 떼어놓고 도망치게 되고 양반집 딸에게 장가가 아들을 낳고 일상적인 생활 安逸에 빠져 이조서리의 딸에 대한 죄책감은 망각해 버리는 것이며 이것은 큰 소망이나 신앙, 생의 목표가 없이 오히려 자랑스럽지 못한 생을 영위해 가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소망스럽고 손쉽고 안일한 생활윤리일 수도 있는 것이다.
前半에서 망각된 정생의 죄책감을 깨우치기 위하여 이조서리의 딸의 혼령이 나타나는 것은 작자의 인도적 신의감의 발동이라 봐야 할 것이며 그러면서도 이 죄책감 망각을 불교적 인생관으로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작자 자신의 여성관이나 당시 사회의 당연적인 통념이었던 여성관을 반영한 것이라 보여진다.
▣ 김윤만 -
▣ 김태서 - 잘 보았습니다.
▣ 김항용 -
▣ 솔내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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