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135) 우리 곁을 떠나시는 선생님- 경교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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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6-14 19:19 조회1,527회 댓글0건본문
哀傷보다는 遺業을 繼承하자
감히 앞길을 재촉하는자 없건만
靈 는 무겁게 움직이도다.
임이여! 背恩한 이 땅에 광명주소서
비극의 역사의 밤은 마곡사에서 백범선생의 英靈을 위하여 상경한 金正濟 住持스님의 념불
목탁소리부터 깊어갔다. 우리나라 역사이래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민족의 한없는 울음을 자
아낸 백범선생의 서거! 어느덧 비애와 애석 속에서 9일이 지나고 10일로 발인식을 목전에 둔
7월 4일 오후 기울어져 가는 황혼부터는 마직막 선생의 英靈에 배례키 위하여 첫날과 같이
조문객은 장사진을 이루었던 것이다. 마이크 소리로 들려오는 선생님의 略史와 노산 이은상
작사의 弔歌의 구슬픈 노래를 눈물 흘리며 들어가며 빈소에 이르는 사이 그들 본노에 잠긴
계승자요, 義憤에 가슴 터지는 애국애족의 남녀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맹서하였을 것인가.
경교장 내 1,2층 각방에는 식전준비에 바쁘고 이웃 녀인들은 상복을 제조하는데 한눈 팔 여지
조차 없었다. 잔디뜰과 대문 밖 그리고 동양극장 앞에는 덕석 또는 이부자리를 깔고 선생의
英靈이 최후로 우리 민족들이 정의의 호흡을 하고 있는 대지위에서 계시는 것을 동반위로하기
위하여 밤새도록 쏟아지는 여름 이슬을 맞아가며 밤을 새웠던 것이다. 가끔 이곳 저곳에서
터져오르는 원통함에 기절할 듯이 선생의 이름과 선생은 떠나셔도 우리 민족의 피에서 선생의
영혼은 떠나지 않는다고 절규하는 비통한 소리! 건설동지들이 연습하는 弔歌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늙은 할아버지와 그의 나이어린 손자, 손자 손목을 힘있게 쥐고 끊임없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는 것이었다. 목탁소리는 밤의 적막을 끊고 처량하게 들리고 멀리서는 개 짖는 소
리가 마치 동물마저 선생이 떠나시는 것을 슬퍼하는 것처럼 애처럽게 들려온다. 무상하게도
시간과 부질없는 지구는 돈다.
그리하여 선생이 우리들 곁에서 떠나시는 시각은 자꾸 가까워진다. 4일의 밤은 끝나고
시계소리가 12시를 울리니 그곳에서 밤을 머물고 있던 조문객들에는 그야말로 사형선고가 내렸다.
아른거리는 전기불 밑에서 오늘 부를 弔歌를 외우는 소리조차 멈치고 멍하니 별빛만이 한없이
쓷아지는 하늘을 쳐다보는 그들의 공허감이야말로 어찌 그들만의 것일 수 있으랴. 지금 이
조선의 각지 뿐만 아니라 온 아세아의 하늘에서는 위대한 巨星이 땅속으로 떨어져 가는 것인데
누구든지 어이없는 설음에 울고 울고 하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닐까? 경교장의 밤은 밝아진다.
발버둥 치며 땅을 치고 하늘을 부르며 울고 울어도 시원치 못한 그 시간을 소리 없이 공포에 실려
사정도 기약도 없이 가까이 온다.
빈소에 안치되었던 관머리에는 국내 각처에서 보내온 생화와 중화민국행정원부원장 주가엽씨가
올린 조화와 선생이 민족자주독립.평화통일울 부르짖었던 건장하시던 지난날의 모습을 그린
두쪽의 그림이 추억도 새롭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어리게 하였을 뿐.. 동녘이 훤하게
터오름에 이르러 념불 소리는 한동안 높아가고 여학생 성가대가 부르는 찬송가의 애달푼 노래는
어느듯 천국의 낙원으로 이르게 되는 선생의 장송곡으로 변하여 경교장내 구석 구석은
선생님 선생님 하고 또 다시 시작된 언제 그칠줄 모르는 輓歌가 연속 터져 나왔다.
위대하였던 지도자가 영영 이 땅에서 떠나시게 되었다.
수 많은 동지와 선생을 따르는 무수한 인민대중을 뒤에 남기시고 선생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멀고 먼 나라로 가시게 되었다. 일년전 인도의 영웅 간듸옹이 동족의 흉탄에 쓰러져 떠나듯이
우리의 영원한 지도자 민족의 태양 백범 김구선생은 오늘이야 말로 경교장의 문을 지나 또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시는 것인데 이미 태양이 땅에 떨어지고 보니 암담한 우리의 갈 길은 어디냐
이 미로에서 헤매이는 옳은 길을 찾으려고 헤매는 겨레들은 가혹한 현실과 중첩된 증오 속에서
살아갈 것인가.
차마 볼 수 없는 結棺式이 끝났다. 유가족의 부풀어 오른 핏대 시름없는 눈동자 거기에 흐느껴
우는 여인들, 날이 훤해지니 경교장문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남대문 교회를 비롯한 서울시내
기독교 신자들이 교회연합 영결식을 하기 위하여 뜰은 발들일 틈도 없이 가득하다. 오전 7시 반
선생의 英靈을 안치한 관을 현관 앞에 모시고 김치선목사의 기도가 있자 엉엉 우는 울음이 또다시
터져 나왔다. 곧 한국기독교대표 박학전씨의 조사에 이어 [요단강 건너 가 만나리라]는 찬송가가
끝인 후 8시 30분 경교장내에 있어서의 간단한 영결식은 끝났다.
잡는 손 뿌리치고
선생은 떠나가시도다
이리하여 오전 9시 40분 영구를 모시어 경교장 앞 대로에 준비하였던 상여에 안치하고 이어서
상여 양편에 줄을 지어 늘어섰던 建實員 백여명은 영구에 향하여 최후의 배례를 끝마치고 정숙히
들어서며 상여를 메니 서울시악대의 弔歌秦樂이 애끓는 발인을 슬프게 재촉한다. 주악이 끝나고
메었던 상여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을 한발 두발 힘없이 내디딘다. 이때 아침 새벽부터 발인을
보려고 문자 그대로 도로 양편 담장 발코니 할 것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수많은 군중들은
참고 참았던 울음이 복바쳐 저마다 통곡하니 주위는 갑자기 울음의 바다로 화하고 상여를 메었던
젊은이들도 가슴이 아파 좀처럼 앞길이 트이질 안는다. 그 중에도 목을 놓아 [아이고 아이고,
서러워 저렇게 장하게 간들 무엇해]하면서 땅을 치며 울고 있는 노파의 울음은 이 얼마나 억울한
선생의 죽음을 절박한 표현으로 포상하는 것이냐?
그러나 떠나지 않으면 안될 길이다. 이 나라 이 겨레의 그 누가 앞길을 재촉하고 있으리요만
그래도 떠나지 않으면 안될 길손이라. 樂隊,弔歌隊의 장송곡에 발맞추어 붉은 명정
[大韓民國臨時政府主席故白帆金九之柩]
는 선생의 靈柩를 안내하여 서울운동장으로 향하니 때는 10시 40분이었다.
▣ 김항용 -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발용 - 감사합니다.
▣ 김태호 - 잘보고 가슴으로 비통합을 간직하고갑니다.
▣ 김재원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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