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144)경교장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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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6-24 20:49 조회1,587회 댓글0건본문
경교장의 역사
서울 종로구 평동 108번지. 지금은 강북삼성병원의 본관으로 쓰이는 경교장 의 몸채 2층에서 백범 김구가 오랜 망명생활을 청산한 때는 1945년 11월 23일이었다. 바로 그날 임시정부 요인 1진 14인과 함께 미군 비행기를 타고 중국 상해를 떠나 여의도 비행장에 내린 김구(중경 임시정부 주석·한국독립당 위원장)를 주인으로 맞이한 경교장의 원 소유주는 [광산왕]이라 불릴 만큼 당대의 자산가였던 최창학이었다.
내력을 따지고 보면 경교장은 스스로를 내세울 만한 건물은 아닐 듯 싶다. 식민지 착취구조 하에서 절대 빈곤을 이기지 못해 숱한 사람들이 만주로 떠나가는 일제 시대에 지붕의 돌기와에서부터 마루에 까는 널빤지에 이르기까지 모두 외제를 들여와 초호화판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처음 지었을 때 [죽첨장]으로 불렸던 이 2층 석조건물에 [경교장]이란 이름을 붙인 이가 바로 김구요. 구 한말시대의 동네 이름이 경교동이었던 데서 따온 이름이란다. 경교장의 주인이 최창학에게서 백범 김구로 바뀐 내력을 선우진씨(백범의 비서 역임)는 이렇게 전한 바 있다.
[8·15 뒤 국내에서는 중경 임시정부요인들의 환국에 대비해 임정귀국 환영위원회가 조직된 바 있었지요. 주로 좌파의 세력확장을 경계하는 우파 인사들이 중심이 된 이 위원회의 위원장은 김여식씨, 부위원장은 김석황씨였습니다.
그런데 김석황씨가 한때 광산업에 손을 댔던 관계로 최창학씨와 친분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최씨가 경교장을 백범선생의 숙소로 내놓은 것은 그런 사정에서였다고 들었습니다.]
일제 식민지 착취체제와 타협, 많은 재산을 모았던 최창학으로서는 임시정부의 주석에게 경교장을 숙소로 제공함으로써 지난날을 속죄하는 마음이 있었겠으나, 다른 한편으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기득권을 그대로 지키려는 계산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라는게 선우진씨의 짐작이다.
훗날 백범이 서거하자, 최창학은 경교장을 도로 회수했다. 그후 경교장은 지금은 없어져버린 사이공정부의 월남대사관으로 쓰이다가 1968년부터 고려병원으로, 오늘에 이르러는 강북삼성병원 본관 건물로 쓰이게 된 것이다
▣ 김항용 -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윤만 - 최창학이 경교장을 도로 회수했었군요. 재미있는 일화입니다.
▣ 김발용 - 경교장의 내부는 현대화 되어있고 근무자 조차 경고장의 의미를 모르는 현실입니다. 애통한 노릇입니다.
▣ 김태영 -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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