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캠프2003 (10-1)---수안김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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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7-10 04:15 조회2,447회 댓글1건본문
여름캠프2003 (10-1)---수안김씨1
일전에 태완 님께서 지적하신 충렬공 묘 실전 문제의 충렬공 장자 장손계인 수안김씨(김방경-김선-김자-김위-김득남-김정-) 관련설에 대하여 일면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안사연 여름캠프 2003 일정중에 충렬공 묘역과 재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영덕의 수안김씨 집성촌 답사도 가능할 듯하여 우리 게시판에 소개된 수안김씨 관련자료를 모두 모아 한번 검토하는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 김태완 - 충렬공할아버지의 자손은 참으로 많으나 묘관리는 장손이 하는 것이 유교적 통례입니다 장손은 수안김씨로 개명했는데 수안의 위치가 지금의 이북 황해도로 알고 있습니다 가정입니다만 죽송동에서 묘지석만 묻어놓고 황해도 수안으로 이장하면서 지손들(안동김씨)은 모른채 200여년 실전했다고 합니다, 그많은 자손들 수대에 걸친 명신들이 등장한 가문에서 실전을 했다는 건 말이 안됩니다.전쟁이 나서 분단된일도 없는데 무슨 실전입니까?
▣ 김태완 - 말못할 사정이 있을 겁니다.기록할 수없었던ㄴ 사정이 있을 겁니다 장손인 수안김씨측에서 의논없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수안으로 이장해 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장손이 이장해 간다는데 지손들은 아무말도 못한거죠
▣ 김태완 - 그리고 200여년 세월이흘러 가며 흐지부지되다가 묘지석 발견으로 봉축해서 같은시기에 할머니 설단을 만들어서 지금까지 유지해 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 김태완 - 그러나 수안김씨의 자손이 번성하지 않았고 수안지역에 세거지가 없다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진짜로 실전하고 있다는 사실도 꼭 연구해야 합니다
▣ 김태완 - 고려말 이조중기까지 그렇게 털치던 명문가문에서 전쟁도 없었고 분단도 없었는데 김방경할아버지 산소를 실전했다는 건 말도 안됩니다.기록에 의존해서 풀을 문제가 아니며 문제제기를 새롭게 합니다
▣ 김태완 - 실전한 200여년동안에 정승과 판서들이 즐비했던 우리가문에 할아버지 산소를 잃어버렸다구요.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산소에 관한한 장손에게 밀린겁니다.다시 찾아야 합니다
▣ 김태완 - 수안김씨 이북 분포도는 모르겠으나 경상도 몇집 살고 있는 것 외에 몇명 안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 김윤식 - 새로운 문제 제기 감사합니다. 지난 해 김동식 원장 특강시 김해 공 장례 때 충렬공 할아버지 묘지석이 출토된 것으로 추정하는 내용에 약간 수긍이 가는 부분이 없지 않으나 솔직히 아직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 김윤식 - 태완 아저씨 문제 제기도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장자 장손인 수안김씨와의 관계 때문에 아버지께 수안군에 거주하는 수안김씨에 대해 여쭈어 본 적이 있습니다.
▣ 김윤식 - 저희 본래 집이 수안군 천곡면입니다만, 아버지 말씀은 수안김씨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시며 수안군에 수안김씨 세거지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셨습니다.
▣ 김윤식 - 또 수안읍지, 신계읍지 등에서도 수안김씨에 관한 기록은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태완 아저씨 문제 제기는 새로운 가설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각도에서 검토해 보았으면 합니다.
▣ 김태완 - 가문이 가장 왕성했을때 명장명상이였던 충렬공 할아버지 산소를 잃어버렸다는 건 말도 안됩니다
▣ 김부회 - 장자집 현손이 수안 현감인가를 했죠 그래서 수안김씨로 했고 그때 장손집에서 문제를 만든 거라 보여 집니다
■ 인터넷상 검색자료
시조 ★김선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설(殷說)의 8세손인 김방경(구안동 김씨의 1세조)의 장남이다. 그는 고려때에 보정공신으로 벼슬이 부지밀직사사, 전법판서, 상장군에 이르고 수안군에 봉해져서 후손들이 본관을 수안으로 하였다. 후손 전리판서 ★김위(金爲)를 중시조로 하고 있다. 4,567명이 있다.(1985년)
■ 김씨의뿌리 (범우사, 1997)
시조 ★김선(金 )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아들 김은열의 9세손이다.
김선은 고려후기의 명장인 김방경의 큰아들로 전법판서 상장군으로서 수안군에 봉해져 후손들이 수안을 본관으로 삼았다. 수안(遂安)은 황해도 북부에 위치해 있는 지명이다.
김선의 아들 ★김자(金資)는 도첨의사사를 역임했고
3세손 ★김위(金爲)는 전리판서를 지냈으며
4세손 ★김득(金得) 또한 전리판서를 역임했다.
8세손 ★김순몽(金順蒙)은 조선 중종때 당상관 도제조 통정대부를 지냈고
11세손 ★김난서(金鸞瑞)는 임진왜란때 김성일과 더불어 전공을 세워 2등 공훈록에 올랐고, 울산부사와 어해장군 훈련원정을 역임했다.
김난서의 아들 ★김건(金腱)은 ★이순신의 막하에서 적선을 격파하여 공신의 반열에 올랐다.
14세손 ★김도장(金道章)은 호군으로서 나라에 공을 세워 좌승지에 증직되었고
16세손 ★김하구(金夏九)는 영조4년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여 동추부사, 도산서원장을 역임했다.
수안김씨가 생겨나기까지의 세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경순왕 김부 (金傅)
② 김은열 (金殷說) (4남)
③ 김숙승 (金叔承) (2남) ★구안동김씨 시조
④ 김일긍 (金日兢)
⑤ 김이청 (金利請)
⑥ 김의화 (金義和)
⑦ 김민성 (金敏成)
⑧ 김효인 (金孝印) (2남)
⑨ 김방경 (金方慶) ★구안동김씨 중시조
⑩ 김 선 (金 ) ★수안김씨 시조
■ 작성자 :김윤만 작성일 : 2002/05/15 23:04 (from:61.75.16.16) 조회 : 55
분관성씨순례1.(서와 수안김씨편)
선안동김씨에서 분관된 성씨 족보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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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동김씨대동보(1979년 기미) 권지1에 의거 선안동김씨에서 분관된 7개 성씨
의 선계(先系)는 다음과 같습니다.
(1)수안김씨 : 효인→ 방경(장자) → 선(장자) → 자(장자) - 후손★위수적수안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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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분관된 7개 성씨족보의 근거와 그분들의 족보에서 주장하는 선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1)수안김씨(수안김씨대동보 권지상. 1986년 병인)
---효인→ 방경(장자) → 선(장자. 시조) → 자(장자) → 위 → 득남 → 이(履),
---수(綏), 정(精)
■ 영환 종친께서 소개하신 "소천서원과 청원정 (蘇川書院과 淸遠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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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가야리에는 이곳 龍宮全氏(용궁전씨)의 시조이신 菊波 全元發(국파 전원발) 선생은 모신 서원이 있다. ★전원발 선생과 척약재 ★김구용 선조와는 각별한 사이었으며,
더욱이 우리 안동김문의 장손은 方慶(★방경)- (★선)- 資(★자)- 爲(★위)- 得男(★득남)- 精(★정)으로 이어오다
金精공은 척약재의 아우인 ★金齊顔공과 더불어 신돈을 제거하려다 실패하여 김정공의 후손은 수안김씨로 , 김제안공의 후손은 사천김씨로 분적하였다. 바로 안동김문의 장손인 ★김정공의 배위가 국파 ★전원발선생의 따님이었다.
■ 디지털한국학 홈페이지(http://www.koreandb.net/)에 게재되어 있는 수안김씨는 2명(김하구, 김덕오)이고, 조선 문과방목에는 3명(김인도, 김정구, 김하구)입니다.
★김하구(金夏久) 1676-1762(숙종2-영조38)
★김덕오(金德五) 1680-1748(숙종6-영조24)
수안(遂安) 김(金)씨 입격자들
총 3명 입격
★김하구(金夏九) 정보(鼎甫) 숙종45(기해, 1719) 증광시(增廣試) 丙科23
★김정구(金鼎九) 경종3(계묘, 1723) 증광시(增廣試) 丙科7
★김인도(金仁燾) 순조16(병자, 1816) 별시(別試) 丙科16
▣ 김항용 -
▣ 솔내영환 -
▣ 김태서 -
▣ 김재원 -
▣ 김윤식 -
▣ 김윤만 -
댓글목록
김윤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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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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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11.23.(월) 안동 세향 때 문경 국파(菊坡) 전원발(全元發) 선생 묘, 청원정, 물계서당을 들렸습니다.
∎우리 홈페이지에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가야리에는 이곳 용궁전씨의 시조이신 국파 전원발 선생을 모신 서원이 있다. 전원발 선생과 척약재 김구용 선조와는 각별한 사이었으며,
더욱이 우리 안동김문의 장손은 方慶(방경)-愃(선)-資(자)-爲(위)-得男(득남)-精(정)으로 이어오다 金精공(★방경의 6세손)은 척약재의 아우인 金齊顔공(★방경의 현손<5세손>)과 더불어 신돈을 제거하려다 실패하여 김정공의 후손은 수안김씨로, 김제안공의 후손은 사천김씨로 분적하였다. 바로 안동김문의 장손인 김정공의 배위가 국파 전원발 선생의 따님이었다.》
∎국파 전원발 선생 묘와 재실(사현재) 옆에 근사한 묘와 재실(퇴산재)이 있어 묘비를 살펴보니 개성고씨 용궁(문경) 입향조 고사원(高士原)의 묘인데 「배위가 수안김씨로 이(履)의 녀, 득남(得男)의 손, 축산 전원발(全元發)공의 외증손녀.」 라는 것입니다. 즉 김득남의 배위가 전원발의 따님이라는 뜻으로 김정의 배위라는 우리 홈페이지와 다른 내용입니다.
∎그래서 소천서원의 전원발 선생 신도비문을 살펴보니 국파선생은 1남2녀를 두셨는데 장녀가 김득남에게 출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즉 척약재의 6촌 형수(장손계이므로) 되시는 분이 국파선생의 따님이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