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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캠프2003 (10-2)---수안김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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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7-10 04:17 조회1,4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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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캠프2003 (10-2)---수안김씨2



■ 작성자 :김윤만 작성일 : 2002/01/19 02:36 (from:61.74.254.87) 조회 : 83

수성최씨. 수안김씨. 사천김씨 그리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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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안김씨(遂安金氏)는『경순왕의 제4자 대안군 은열의 8세손 상락군(上洛君) 방경의 장자 선( ) 시조님이 수안군(遂安君)에 봉해지신 이후로 수안으로 위관(爲貫)되었다.』하고 있어 예상밖으로 다음 세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는 바 사실 여부는 좀더 연구하여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하겠습니다.

--1. 본 세보에서도 사천김씨 족보와 마찬가지로 어김없이 충렬공의 작위가 上洛君으로 잘못 기록된 점.

--2. 충렬공의 장자이신 선( )께서 수안군에 봉군(封君)되셨다는 기록.

--3. 선( ) - 자(資) - 위(爲) - 득남(得男) - 이(履). 유( ). 정(精)으로 이어지는 세계중

아래 후손 중에서 시조가 아니되시고 우리 안동김씨 선( ) 할아버지를 시조로 하고 있는 점.

--(판서공 선은 군사공파, 문온공파, 도평의공파 등의 직계 선조이심)

--수안김씨 또한 충렬공의 장자이신 판서공 선( )을 시조로 하고 선의 장자 자(資)는 수안김씨로 차자(승용)와 삼자(승택)는 안동김씨를 계승한 것으로 기록한 것은 어찌보면 충렬공의 적통이 수안김씨라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다만 판서공 선의 묘소 실전 사실과 안동김씨로 승계된 후손 등이 합모출력(合謀出力)으로

1967년 전남 강진군 작천면 토마리에 설단(設壇)하여 매 음 3월16일에 시향하는 기록을 남겨 주었습니다.





● 분관성씨순례Ⅰ.(수안김씨)

수안김씨 대동보중 서문 일부.(상기족보 pp2∼6)



서기 1986년 병인보 발간에 즈음하여

(전략)

---아무리 종시속(從時俗)이라 하나 여사자세(如斯姿勢)가 과연 타당하다고는 생

각되지 않을 것이다. 이유인즉 내가 어찌해서 김씨성을 갖게 되었으며 김씨성

중에서도 유독 수안(遂安)이란 본관을 갖게 된 것인지를 지실(知悉)코저 한다면

족보의 필요성은 설명을 불요하는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 시조님께서 물려주신 수안김씨의 유래를 살펴보는 것이 긴

요하며 순서라 생각됨에 그 내력을 약술코져 한다. 구보서문에 누누이 상술되

어 다시 복언할 필요가 없다 하겠으나 구보서문은 순 한문이라 번역을 하여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기에 송구불이(悚懼不已)이오나 후세들이 고열

(考閱)에 편의가 될까 사료되어 감히 첨기(添記)하는 바이다.



---즉, 김씨라는 성은 신라 대보공 알지께서 금궤에서 탄생하셨기에 사성(賜姓)

되었으며 그후 왕성씨(王姓氏)로 계승되어 왔으며, 28세손이신 경순왕의 제4자

대안군『은열(殷說)』의 8세손 상락군(上洛君)『방경(方慶)』의 장자『★선( )』

시조님이 수안군(遂安君)에 봉해지신 이후로 수안으로 위관(爲貫)되었다.



---『★선』시조님께서는 려조 중신으로서 원충단력안사보정공신봉익대부지밀직사

전법판서상장군(元忠端力安社保定功臣奉翊大夫知密直司典法判書上將軍)으로 계

셨다. 또한 8세조이신 휘『★순몽(順蒙)』께서는 이조 중종 18년 2월 계미 당상관

도제조통정대부(堂上官都制調通政大夫)로서 이조정원실록일지에 과적(科績)이

등재되었으며, 10세손 휘『★필경(必慶)』께서는 성균진사로서 성품이 순후하시고

학덕겸비효우돈독하시며, 향리 후진 양성에 유공하셨고, 11세손이신 울산군 (휘

★난서(鸞瑞))이 무과에 급제출사하신 후 수차 승급되시어 울산부사를 역임하셨으

며 임진왜란 당시는 학봉 ★김성일선생의 영막에서 전략을 모의 혁혁한 전공을

세워 2등공훈에 기록되었으며, 울산공의 증손이신 14세손 평천공(휘★도장(道章)

은 호군으로서 국가에 유공하셨기에 좌승지에 증직되셨고 15세손이신 애헌공

(휘★덕오(德五))께서는 성균진사이시며 성리학자로 박학다식하시어 향리인 영해

면 괴시(槐市)에서 후진양성에 기여하신 공로가 지대하시였기에 우금까지도 문

도의 후예들이 수계(授契)라는 명칭으로 년1차식회합하여 공의 유덕을 추모하

고 있으며 문집도 전승되어 숭앙받는 분이시며 16세손이신 이 ○암공(휘★하구

(夏九)께서는 문과에 급제 출사하신 후 영조 무신년(서기 1978년) 역란을 평정

하시고 문과동추부사를 지내신 후 도산서원원장을 역임하신 공적이 찬연하며

(○암공의 방주요참조) 그 외에도 역대에 선( )하여 대소 관직에서 유공하신

분이 여러분 계시나 일일이 열거키 지남함에 이만 생략코저 한다.



---이와 같이 위대하신 선조님의 혈맥(血 )이 면면히 승계된 종족임을 자부함

과 아울러 자손된 자 만의 일이라도 조상에게 누가됨이 없도록 항상 명심하고

행동해야겠다.



---대략 서술한 바와 같이 가문임을 자처하며 지대한 공훈을 쌓은 선대의 얼이

담긴 실로 필요하고도 소중한 족보를 편집함에 있어서는 구태의연한 방식을 탈

피하여 현세대에 적합한 보다 현대화된 보첩을 발간하여 현세대들이 족보에 대

한 당위성과 필요성을 깊이 인식토록 누구나 보기쉽게 편찬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할 것이다. 현재 보전된 보책중 제1차 발간분이 계유보(서기 1873년)이고 2

차분이 갑진보(서기 1904년)이며 3차분이 임술보(서기 1922년)고 가장 가깝게

발간된 것이 30수년전인 갑오보(서기 1954년)인 바 계유보이전 보책은 임진병

화 등으로 소진되어 상계를 상고함에 다소의 소루(疏漏)함이 있어 휘★위(爲)자를

중시조로 뫼셔 1세로 하여 편찬하였으나 갑오보시에 휘★선( )자의 장자이신 휘

★자(資)자를 각종 문헌에 의해 찾았으나 중시조이신 휘위(爲)자가 휘 자(資)자와

의 관계가 불분명하여 그 전보와 같이 편집하였으나 금보에는 구보와 달리 수

안군이신 휘★선( )자를 시조로 뫼셔 1세 휘★자(資)자를 2세 전보에 중시조로 등

재되신 휘★위(爲)자를 3세로 뫼셔 보계를 명백히 하였음은 세와 세간의 년수차

를 계산한 결과 직계로 계승되었음이 명백함에 기인하였음을 부연(敷衍)하여

둔다. (후략)



-----------------------------------------서기 1986년 6월 일 전종원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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