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현리-고락리-내판리 익원공파 세거지---02[청주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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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7-14 20:18 조회1,531회 댓글0건본문
궁현리-고락리-내판리 익원공파 세거지---02[청주시지]
■ 청주시지 (충북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97)
(52) ★김작(金 . 1427∼1488)
---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위경(衛卿). 등가(登可), 본관은 안동, 개국공신이며
좌의정(註 : 좌정승이 바른 것임) 사형(士衡)의 증손이며, 종숙(宗淑)의 아들이다.
1477년(세종 29년) 생원시에 급제하고, 1454년(단종 2년) 음보(蔭補)로 선공감에
녹사(錄事)되고, 춘천부사. 군기감(軍器監) 정(正)을 역임했다. 1477년(성종 8년)
중시(重試)에 급제하여 병조참지(兵曹參知) 등을 거쳐 형조판서(刑曹判書)에 이르
렀다.
---성효(誠孝)가 출천(出天)하여 사형제가 한집에 기거하며 구경당(俱慶堂)이라
(편액)偏額하고 정성(定省)을 어기지 않았으며 부모의 병환이 급함에 단지(斷指)
주혈(注血)하였다. 여막(廬幕) 삼년을 지내니 왕이 효례를 듣고 예로써 우대하였
으며 특히 미찬(美饌)을 하사하였다. 시호는 효소(孝昭)이다.
(문헌 : 성종실록, 청주지)
※정성(定省) : 혼정신성(昏定晨省), 조석으로 부모의 안부를 물어 살피는 일)
(134) ★김헌광(金獻光)
---본관 안동, 1564년(명종 19년)에 진사 지내고 서사(筮仕)로 별제(別提)에 이르
렀다.
(53) ★김성진(金聲振)
---본관은 안동, 벼슬은 집의(執義)를 지냈는데 품성이 질실(質實)하여 허교(虛
嬌)함이 없었다. 4세에 모친을 여의고 농사를 지어 정성껏 부친을 모시어 조금도
뜻을 거슬림이 없었다. 일찍 당한 모상(母喪)이 한이 되어 부상(父喪) 때에 병설
(竝設)하여 삼년상을 복상(服喪)하였다. 송시열이 글을 짓고 쓴 묘갈이 있다.
(문헌 : 청주지)
(69) ★김찬(金瓚)
---문정공(文靖公) 질( )의 5세손이며 문과에 올라 벼슬이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33) ★김제(金濟)
---본관은 안동으로 뽑히어 별제(別提)에 이르렀다.
(34) ★김미(金미(湄))
---본관은 안동으로 벼슬이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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