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필원잡기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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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3-09-16 06:27 조회1,612회 댓글0건본문
필원잡기 해제
서거정(徐居正) 저
본서는 서거정의 수필집이다. 권두에 성화 병오(成化丙午 성종 17년, 1486)에 저자의 친질(親侄) 팽소(彭召)와 그 문인 표연수(表沿洙)의 서가 있고 그 다음에는 성화 23년(성종 18년), 함양 군수 조위(曺偉)의 서가 있다. 말미에는 성화 23년, 그의 문인 이세우(李世佑)의 발이 있다.
본서는 앞에 적은 표연수의 서에 적혀 있는 것과 같이 우리 나라의 역대 왕세가(王世家) 및 공경 사대부들의 도덕ㆍ언행ㆍ문장ㆍ정사들 중에서 모범이 될 만한 것과, 또는 국가의 전고, 여항의 풍속으로서 사회교육에 관련되는 사례로서 특히 국사에 잘 기재되어 있는 많은 것들을 추려 모은 것이다.
저자 서거정은 본서 이외에, 자신이 저술 또는 관여한 《역대연표》ㆍ《동문선(東文選)》ㆍ《동국통감(東國通鑑)》ㆍ《신찬 동국여지승람(新撰東國輿地勝覽)》ㆍ《사가집(四佳集)》 등이 세상에 전할 뿐 아니라 세조 때부터 성종 말경까지 경연(經筵)의 시독관(侍讀官)으로서 오랫동안 문단을 지도하여 왔으므로 본서의 기사 중에도 후세에 남겨둘 만한 중요한 시화들이 적지 않게 수록되었다.
본서의 판본은 이세우의 발에 성종 18년(성화 23년)에 경상도 의성군(義城郡)에서 처음으로 간행된 것이라고 적혀 있고 명종 9년(1544)에 어숙권의 《고사촬요》의 팔도책판목록에도 의성군의 장판(藏板)으로 수록되었다.
그후 저자의 후손 서정이(徐貞履)의 숭정 중간(崇禎重刊)의 발이 있는 청풍부(淸風府) 중간본이 있는데 《조선도서 해제》나 서울대학교 《규장각 도서목록》에는 모두 사본으로 되어 있으므로 중간본이 널리 유포되지 않은 것 같다. 본 《대동야승》의 〈조선고서간행회본〉에는 〈숭정중간〉의 발문이 누락되었으므로 본 채집본의 원본은 서정이의 중간본이 아니고 팔도책판목록에 적혀 있는 〈의성군〉의 초간본에 의한 것일 것이다.
김두종 씀
▣ 김윤만 - 잘 보았습니다.
▣ 김윤식 -
▣ 김주회 -
서거정(徐居正) 저
본서는 서거정의 수필집이다. 권두에 성화 병오(成化丙午 성종 17년, 1486)에 저자의 친질(親侄) 팽소(彭召)와 그 문인 표연수(表沿洙)의 서가 있고 그 다음에는 성화 23년(성종 18년), 함양 군수 조위(曺偉)의 서가 있다. 말미에는 성화 23년, 그의 문인 이세우(李世佑)의 발이 있다.
본서는 앞에 적은 표연수의 서에 적혀 있는 것과 같이 우리 나라의 역대 왕세가(王世家) 및 공경 사대부들의 도덕ㆍ언행ㆍ문장ㆍ정사들 중에서 모범이 될 만한 것과, 또는 국가의 전고, 여항의 풍속으로서 사회교육에 관련되는 사례로서 특히 국사에 잘 기재되어 있는 많은 것들을 추려 모은 것이다.
저자 서거정은 본서 이외에, 자신이 저술 또는 관여한 《역대연표》ㆍ《동문선(東文選)》ㆍ《동국통감(東國通鑑)》ㆍ《신찬 동국여지승람(新撰東國輿地勝覽)》ㆍ《사가집(四佳集)》 등이 세상에 전할 뿐 아니라 세조 때부터 성종 말경까지 경연(經筵)의 시독관(侍讀官)으로서 오랫동안 문단을 지도하여 왔으므로 본서의 기사 중에도 후세에 남겨둘 만한 중요한 시화들이 적지 않게 수록되었다.
본서의 판본은 이세우의 발에 성종 18년(성화 23년)에 경상도 의성군(義城郡)에서 처음으로 간행된 것이라고 적혀 있고 명종 9년(1544)에 어숙권의 《고사촬요》의 팔도책판목록에도 의성군의 장판(藏板)으로 수록되었다.
그후 저자의 후손 서정이(徐貞履)의 숭정 중간(崇禎重刊)의 발이 있는 청풍부(淸風府) 중간본이 있는데 《조선도서 해제》나 서울대학교 《규장각 도서목록》에는 모두 사본으로 되어 있으므로 중간본이 널리 유포되지 않은 것 같다. 본 《대동야승》의 〈조선고서간행회본〉에는 〈숭정중간〉의 발문이 누락되었으므로 본 채집본의 원본은 서정이의 중간본이 아니고 팔도책판목록에 적혀 있는 〈의성군〉의 초간본에 의한 것일 것이다.
김두종 씀
▣ 김윤만 - 잘 보았습니다.
▣ 김윤식 -
▣ 김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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