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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익 20주기 추모기념집 출판식 (신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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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10-10 16:01 조회1,7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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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03년 10월8일 오후 6:00

[분수대] ★김재익

[중앙일보 이세정 경제부 차장]



정확히 20년 전인 1983년 10월 9일. 당시엔 한글날이 공휴일이었다. 이날 낮 동남아를 순방 중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노린 북한의 테러가 미얀마(전 버마)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발생했다. 全전대통령을 수행했던 서석준 경제부총리, 이범석 외무장관, 함병춘 청와대 비서실장, ★김재익 경제수석 등 17명이 순직했다. 미얀마의 국부 아웅산이 묻혀 있는 국립묘지의 건축물과 함께 대한민국의 동량(棟梁)이 쓰러졌다.



지난 6일 ★김재익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20주기 추모 기념집 출판식이 열렸다. 많은 사람들이 ★김재익이 젊은 나이에 숨지지 않았으면 나라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38년생인 그는 만 42세인 80년 청와대 경제수석에 발탁됐지만 저서 한 권 없고 언론과의 인터뷰도 극력 기피해 이렇다할 외형적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를 기리는 작업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한결같이 그를 한국 경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앞당긴 인물이라고 칭송한다. 안정.자율.개방의 경제철학으로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김재익의 안정화 정책 덕분에 80년대 후반 경제 호황이 가능했다는 평가다. 정보통신산업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해 이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도 ★김재익이다.



한국은행 출신인 ★김재익은 남덕우 경제부총리에게 발탁돼 경제기획원으로 옮긴다. 南전부총리는 정부 직제까지 바꿔 그를 경제기획국장으로 임명했다. 80년 5월 하순 사표를 내고 한국개발연구원(KDI) 객원 연구위원으로 가려던 ★김재익을 전두환 전 대통령이 경제 담임교사로 차출한 것은 全전대통령뿐 아니라 한국 경제에도 행운이었다.



당시 대학생이던 ★김재익의 아들이 아버지가 독재정권에 협력한다고 항의하자 그는 "경제의 개방화와 국제화는 결국 독재체제를 어렵게 하고 시장경제가 자리잡으면 정치의 민주화는 자연히 따라온다"고 타일렀다. 또 친구들이 그가 전두환 정권에 참여한 데 대해 "★김재익은 김일성 밑에 가서도 일할 사람"이라고 비난하자 그는 "만약에 내가 김일성을 설득시켜 그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해야지"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부인 이순자 여사의 회고다. 한국 경제가 다시 구조적 위기에 빠져들고, 국가보다는 정파의 이해관계가 더 앞서는 요즘 ★김재익 같은 인물이 더욱 그립다.



이세정 경제부 차장









■한국일보 2003년 10월6일 오후 6:05

아웅산 순직 ★김재익 前경제수석 추모식



1980년대 한국경제의 밑그림을 그린 ★김재익(金在益ㆍ사진)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의타계 20주기를 기리는 추모식 및 ‘80년대 경제개혁과 ★김재익 수석-20주기추모집’ 출판기념식이 6일 오후6시 서울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렸다.

42세의 나이로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에 발탁된 김 전 수석은 당시 우리 경제의 고질병이었던 연 15%의 고 인플레이션을 잡았을 뿐 아니라 저성장과노사 갈등, 유가 불안 등의 어려움을 딛고 우리 경제를 견실한 성장 기반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전두환(全斗煥) 당시 대통령은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며 그를 깊이 신임했다.



특히 김 전 수석은 개발독재의 유산이 짙게 깔려 있던 당시에는 혁명적발상이나 다름없었던 ‘안정, 자율, 개방’의 경제철학을 실천한 ‘용기있는’ 관료였다는 것이 주위의 회고다.



국적 항공사의 경쟁 체제를 도입한 것도 그의 공이다.



김 전 수석은 그러나 1983년 10월 미얀마 ‘아웅산테러사건’으로 안타깝게 순직했다.



이번에 나온 회고집은 남덕우 전 국무총리,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사공일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전 재무부 장관), 김기환 골드만삭스 국제고문 등고인과 함께 일했던 관료 및 학자들과 부인 이순자 전 숙명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등 9명이 고인과의 일화 및 고인에 대한 아쉬움을 담아 공동저술하고 삼성경제연구소가 출간했다.



남 전 총리는 머리말에서 “정치는 싸움판이고, 노조는 타협보다 투쟁을내세우며, 기업은 실의에 빠져 있고,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있는 상황에서뚜렷한 리더십까지 없으니 공무원들은 방황을 거듭하고 있는 것 같다”며“★김재익 같은 공직자가 지금 청와대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든다”고 밝혔다









■머니투데이 2003년 10월6일 오후 5:01

★김재익 전 수석 20주기 추모식 열려



[머니투데이] 지난 1983년 10월 9일 미얀마 아웅산 폭탄테러로 순직한 ★김재익 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을 기리는 추모식이 6일 저녁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식에서는 또 남덕우 전 총리등 고인의 지인 9명이 "80년대 경제개혁과 ★김재익 수석 20주기 추모 기념집"출판 기념회도 가졌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출판한 이 책은 남 전 총리를 비롯,강경식 전 부총리,김기환 골드만삭스 고문,백완기 고려대 명예교수,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정홍식 前정보통신부장관, 손광식 상지경영컨설팅회장,L.B.크라우스 미국 UCSD명예교수 등 9명이 1980년대 초기 전환기의 경제개혁 작업을 이끌었던 ★김재익 전 수석과 당시 경제관료들의 신념과 이상을 회고하는 글을 담았다.



남 전 총리는 머리말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임자가 경제 대통령이야"라고 할 정도로 김 전 수석에게 매료돼 있었다고 소개하면서 "그지없이 겸손하지만 자기의 생각을 윗 사람에게 구김없이 직언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 파묻혀 있었으며,부정이란 티끌만큼도 모르는 ★김재익과 같은 공직자가 지금 청와대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현 소장의 사회로 열리는 이날 추모식에는 강영훈 전 총리, 김만제.조순.최각규.홍재형.나웅배.임창열.진념.전윤철 전 부총리 등 경제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했다.

< 저작권자 ⓒ머니투데이(경제신문) >

이미숙 기자 /bullish@moneytoday.co.kr









■한국경제 2003년 10월6일 오후 3:32

★김재익 전 수석 20주기 추모식 열려



지난 1983년 10월 9일 미얀마 아웅산 폭탄테러로 순직한 ★김재익 전 대통령 경 제수석비서관을 기리는 추모식이 6일 저녁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식에서는 또 남덕우 전 총리등 고인의 지인 9명이 "80년대 경제개혁과 ★김재익 수석 20주기 추모 기념집"출판 기념회도 가졌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출판한 이 책은 남 전 총리를 비롯,강경식 전 부총리,김기환 골드만삭스 고문,백완기 고려대 명예교수,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정홍 식 前정보통신부장관, 손광식 상지경영컨설팅회장,L.B.크라우스 미국 UCSD명예 교수 등 9명이 1980년대 초기 전환기의 경제개혁 작업을 이끌었던 ★김재익 전 수 석과 당시 경제관료들의 신념과 이상을 회고하는 글을 담았다.



남 전 총리는 머리말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임자가 경제 대통령이야"라고 할 정도로 김 전 수석에게 매료돼 있었다고 소개하면서 "그지없이 겸손하지만 자 기의 생각을 윗 사람에게 구김없이 직언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 파묻혀 있었으며,부정이란 티끌만큼도 모르는 ★김재익과 같은 공직자가 지금 청와대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쓴소리"를 했다.



김 전 수석이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 재직시절 사무관으로 일했던 현오석 무 역연구소장은 "김 전 수석을 중심으로 한 당시 경제팀은 우리경제의 안정화와 개방,정보화의 기틀을 닦았다"면서 "그 때가 우리 경제의 전환점이었다"고 말했 다.



현 소장의 사회로 열리는 이날 추모식에는 강영훈 전 총리, 김만제.조순.최각규 .홍재형.나웅배.임창열.진념.전윤철 전 부총리 등 경제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 했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그러고보니 김재익님 미망인도 이순자 여사이고, 전두환 전 대통령 령부인도 이순자로 동명이인이네요.

▣ 김정중 - 감사합니다 일주전 임진각 위령탑과 그 밑에 오석에 새겨진 고인의 이력을 새긴 사진을 한번 더 들여다 보았습니다

▣ 솔내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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