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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선을 넘어서 (시월에 마지막 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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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 작성일03-11-01 18:17 조회1,4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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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옜추억을 더듬으며 ♬

  포천 일동에서 연대B표시를 3개 샀다(누가 보면 이상 함) 추억의 그림자는 ,시월의 마지막 밤을 책장을 넘기며 보내게 하질 않는다.

 빡빡머리 이등병이 되려고 38선을 넘는다.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인가?,구미열강의 이데올로기와 동아시아 세력다툼의 틈바구니에서 광복 후 다시 갈라진 한반도를 휴전협정이라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조인으로 38선을 다시 긋는다 그것은 주전자의 물로 족구장을 그리듯 하는 놀이가 아니기에 오십여년 동안 끄떡없다.

한 때는 남북한이 주인을 달리하던 땅(그리하여 개성지역 인민들이 수복지역이라하여 차별 받기도 한 원인이 되기도 함)을 상기 시키려 하는 것인지 東쪽으로는 설악산 넘어 화진포 까지도 "38선 휴게소","더이상 갈 수 없는 곳","철마는---"등의 안타까운 글로 국토를 도배 하고 있다.

 일에 쫓기어 해는 기울고 날은 저물어 이젠 고석정(관군에게 쫓기어 임꺽정이 은거하던 한탄강 상류에 외로이 떠있는 바위섬)까지 가려던 것을 접고 그 하류의 영노교위 오래된 한탄강댐 근처에 있는 아무나 갈 수 없는 비둘기낭<잘 알려지지 않은 절경이기에,철원에서 화산폭발이 일어 이곳을 움푹 패인 모양으로 만들었다(마치 제주의 산굼부리를 연상 시키면서도 하절기엔 폭포와 어우러져 수려한 산수가 동양에선 비할데가 없슴),그리하여 인적도 드물어서 주류회사나 미용,당구재료상,이발소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보나 달력의 요망한 포즈의 누드촬영을 자주 목격 했다는 동료들의 말을 전해 들을 수 있었고필자는 하필이면 그 때마다 초소근무 중이라서 국토방위에만 열중 하였기에 현실감이 다소 떨어진다 ,또한 용암의 흔적은 서해로 흘러 임진강가의 "숭의전" 담벼락의 소재로 쓰인 현무암에서 찾을 수 있다>

 모 방송사에서 <그곳에 가고싶다>라는 프로그램에 소개(당시 가슴이 철렁 하였다,홍보가 되어 비경이 훼손 될까 싶어)될 때는 코끝이 찡 하였다.

낭유리 고개를 넘기전 보병발사단(군사기밀이라 대충표기)의 신교대 뒤에 산정호수를 찾아 들 무렵 겹겹이 둘러진 산세여서일까?,추위가 엄습한다.군복무 시절 철원,포천,연천등지의 비포장 군사도로를 100Km,200Km 행군 하던 생각이 난다.

당시 양력 시월 일일 낭유리 언덕은 얼음이 얼었었고 기온이 영하 32도에 이르자 행군도 멈춘 채 숙영 하던 아련한 기억들 속에 지친 나그네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쿵--쿵--쿵-- 때린다,무너트린다!,군인들이 새벽에 이동하고 있다.육십미리 똥포,팔십일밀리등의 포신,포대도 보인다.후배들이 이어 나가기에 안심하고 떠나온다.

오는 길엔 아쉬움으로 광릉(조선 세조의 능)을 들렀다.고려조 탄문대사가 창건 한 후 세조(수양대군)의 사 후 정희왕후가 봉선사로 거듭나게 하였다.국내유일 인지는 모르겠으나 대웅전 현판이 <큰 법 당>이었다.능의 조성과 사찰의 창건과 중수에 부역으로 고생 한 민초들의 삶을 생각 해 보며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돌렸다.

 

 

 

▣ 김항용 - 늘 신선이십니다. 부럽습니다. ▣ 김윤식 - 대부님 발걸음이 오늘은 게까지 가셨군요. 대웅전 대신 큰법당이라...... ▣ 김영윤 - 아직도 이어지는 님의 발길이 내일이면 다시 안동으로..... ▣ 김윤만 - 참 좋은 여행을 하고 계십니다. 저도 오대산 산행을 하고 지금 돌아와 이 글을 보고 있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 김태서 - ▣ 김주회 - 신선처럼 바람처럼 흘러가는 발걸음!!! 부럽습니다. ▣ 솔내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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