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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의 주변인물들 (54) 김준(金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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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11-17 18:21 조회1,5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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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金俊)

?∼1268(원종 9). 고려시대의 무신. 초명은 인준(仁俊).
아버지는 최충헌(崔忠獻)의 가노인 윤성(允成)이다.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하였고, 협기가 있어 최우(崔瑀)에게 발탁되어 전전승지(殿前承旨)가 되었으며, 최항(崔沆)이 정권을 세습하는 데 공이 있어 별장이 되었다.
그러나 최항의 뒤를 이은 최의(崔#의26)가 최양백(崔良伯)·유능(柳能) 등을 신임하고 자기를 멀리하는 데 불만을 품고, 1258년(고종 45) 유경(柳璥)·박송비(朴松庇) 등과 모의, 최의를 죽이고 왕정복고를 꾀하였다. 그로 인하여 장군에 오르고 위사공신(衛社功臣) 2등이 되었다.
그러나 정치의 실권이 유경에게 돌아가자 동생 충(#충01)과 함께 고종에게 참소하여 유경의 승선직을 파면하게 하고, 그의 일당인 우득규(禹得圭)·김득룡(金得龍) 등을 참살하고 경원록(慶元錄)은 유배보냈다.
대권을 잡은 뒤 1259년 고종이 죽고 원종이 즉위하자, 위사공신의 차례를 고쳐 자신을 제1로 하고 추밀원부사 어사대부 주국 태자빈객 익양군 개국백(樞密院副使御史大夫柱國太子賓客翼陽郡開國伯)에 봉하도록 하였다.
1263년에는 수태위 참지정사 판어사대사 태자소사(守太尉參知政事判御史臺事太子少師)의 직위에 올랐다.
1264년 8월 원종이 몽고로 가기 전에 교정별감(敎定別監)에 임명되어 관리의 비위를 규찰하는 일을 담당하였고, 뒤이어 감국(監國)의 임무를 담당, 왕의 부재시에 국정을 보살필 수 있는 권력을 장악하였다. 원종이 귀국한 후에도 최우의 구례에 따라 시중에 임명되고 해양후(海陽侯)에 책봉되었다.
이리하여 권력의 절정에 오르자 그의 일족이나 자신들도 탐학을 일삼아 물의를 빚었고 백성을 괴롭힐 뿐만 아니라, 궁실에 바치는 내선(內膳)까지도 탈취하였다.
(충렬공=1265(을축)  54세 1월에 광평공 순과 함께 진봉사로 원에 가서 5월에 돌아옴)
 
1268년 몽고에서 사신을 보내어 징병에 관한 조서를 전하는 동시에 그의 부자 및 아우를 모두 연경(燕京)으로 입조하도록 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두려움을 느껴 장군 차송우(車松佑)와 의논, 몽고 사신을 죽이고 원종의 제거를 꾀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우 충의 반대로 그 계획이 실현되지 못하였다. 왕권강화를 위해 몽고와의 강화를 도모하던 원종은 몽고 사신을 반대하는 김준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되어 강윤소(康允紹)·임연(林衍) 등을 시켜 참살하였다.

(충렬공=1268(무진)  57세 2월에 상장군 전분의 무고로 인해 남경수로 좌천, 3일만에 판례빈성사 서북면병마어사와 내각으로 형부상서 추밀원부사에 승진,북계로 감. )

 




▣ 김항용 -
▣ 김윤만 - 잘 읽었습니다.
▣ 김정중 -
▣ 김주회 - 김준과 유경과 원종의 관계, 오늘 새롭게 알게 됩니다.
▣ 김태영 -
▣ 김영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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