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소태면 오량동 소재 청룡사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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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식 작성일03-11-25 22:05 조회1,469회 댓글0건본문
충주시 소태면 오량동 소재 청룡사는 주봉인 청계산 자락에 위치해 있습니다. 융성한 사찰이었으나 조선말 민비의 오빠 소실의 묘를 쓰기위해 불태웠다고 전해집니다. 대대로 양천허씨의 원찰 역할을 했으며 저희 안동동김문의 많은 선조님들이 깊은 연관을 맺으셨다고 전해집니다. 지금은 재건된 조그만 사찰로 남아 있으며 아래의 유물외에 청룡사 에서 출판된 많은 불경이나 서책들이 중요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보각국사비(보물 제 658호)
위 치 :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동
고려 공민왕과 공양왕 및 조선 태조의 국사로 있던 고명한 승려인 보각국사의 공적비이다.
문인선사 희달이 태조 3년(1394년)에 태조의 명을 받아 세운 것으로, 비문은 풍우로 인하여 손상이 많이 되었다.
보각국사는 경기도 사람으로 성은 조씨이며,법명은 혼수이다.
고려 충숙왕 7년에 출생하여 우왕때 국사가 된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에 걸쳐 존경을 받았던 덕이 높은 분이었다.
대사가 돌아가신 후 태조 임금이 슬퍼하며 내린 시호가 보각이고, 탑의 이름은 정혜원 융이라 하였다.
이 비석은 윗 부분의 양면을 접은 간략한 형태로 고려 말기 비석의 형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정혜원 융탑 사자석등(보물 제 656호)
위 치 :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동
조선왕조 태조 3년에 왕명으로 세원진 보각국사비와 보각국사정혜원융탑과 함께있는 것으로 보아 같은 시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추측된다.
석등의 하대석은 희귀한 예로서 경주 남산 천룡사자귀부와 같은 형식으로 한마리의 사자가 앞을 향해 엎드려 있다.
간주석을 비롯하여 화사석 옥개석은 방형으로 고려이후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조형미가 부도와는 수법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바 조선 중기의 것으로 정혜원 융탑이 조성된 후에 세운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보각국사 정혜원 융탑(국보 제 197호)
위 치 :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동
이 부도는 고려말의 고승인 보각국사(1320-1392)의 묘탑이다. 편평한 대지에 잘 다듬어진 장대석으로 1단의 축대를 쌓고 그 중앙에 팔각원당형의 부도를 건립 하였다.
기단부는 복련을 새긴 하대석 과 안상안에 사자상과 운룔문을 새긴 중대석,그리고 앙련을 새긴 상대석으로 이루어졌다.탑신부는 반룡이 감긴 엔타시스의 우주를 조각하였고 그 위에는 창방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각면에는 무기를 든 신장상이 1구씩 양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밑면 처마에 탑신 우주위에 창방머리와 접촉되는 부분이 보머리형으로 이루고 있으며 추녀와 사래를 양각하였고 연화문을 조각하였다.
옥개석의 낙수면은 상단부가 급경사이며 기왓골은 없으나 각 함각마루에 용두를 조각하였다. 옥개석정상에는 복련을 조각하여 상륜부를 받치고 있다. 상륜부는 복발, 보륜,보주가 남아있다.
탑신 우주의 엔타시스와 창방의 조각,옥개석의 보머리형조각, 추녀와 사래의 표현, 지붕 합각부의 용두 조각등은 당시의 목조가구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부도의 앞에는 배례석이 있고 주위에 탑비 와 사자석등이 있다.
목계 반공의사비
가금면 장천리 솔밭에 높이 1.53m 폭 0.65m의 비로써 6.25전란때 반공활동을 하다가 순국한 이선규,권중대,변용출,김용기,홍선식,박삼수의 여섯 애국지사들이 잠든 무덤앞의 한 옆으로 대한노인회 중원군 엄정면 목계회에서 1977.1월 세운비석이다.
이 비석의 위치는 행정구역으로는 가금면 장천리이나 보통 목계 솔밭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이 비석에 적혀있는 사람들은 목계에서 활약하던 사람들이다.
소태면 청룡사지 석종형 부도 & 부도부재석
소태면 오량동의 보각국사 정혜원 융탑과 보각국사비 및 석등과 함께 청룡사지 안에 있는 전형적인 조선 초기의 돌종 모습의 높이 1.7m의 화강암 부도이다.
하대석은 단석1매로 3단의 괴임이 있고 탑신의 윗 부분은 보발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적운당 사리탑이라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다.
석종현 부도 앞에 파손된 채 놓여 있는 부도재로 옥개석,상대석,하대석등이 남아 있고 탑신석이 없어졌다. 부재들이 모두 6각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이하고 구름무늬등이 장식되어 있다.옆에는 다시 사리공이 뚫어져 있는 방형의 돌이다.
청룡사 위전비
소태면 오량동 청룡사 정혜원융탑 남쪽으로 약간 떨어진 거리에 있으며 조선시대에 청룡사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신도들이 기증한 논과 밭의 내역을 적은 높이 1.65m 폭 0.75m 두께 0.23m의 비이다.
비석과 비석을 세운 돌만 있는 모습으로 매우 단조롭다.
소태 오량동에는 허적의 조부인 잠의 신도비도 있습니다. 이 분의 시호를 받는 날 잔치를 벌리는데 궁중의 유악을 가져다 썼다해서 허적이 정승나리에서 쫒겨나고 고향인 소태 오량으로 낙향했다고 합니다.
허잠 신도비
소태면 오량동(청룡)에 있는 비로써 허잠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으로 영의정 허적의 할아버지이며 청백리로 뽑혔었다.
양천 허씨로 시호는 충정이다.
▣ 김윤식 -
▣ 김항용 -
▣ 김윤만 - 감곡, 노은에도 명성황후 관련 유적지가 많이 있습니다.
보각국사비(보물 제 658호)
위 치 :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동
고려 공민왕과 공양왕 및 조선 태조의 국사로 있던 고명한 승려인 보각국사의 공적비이다.
문인선사 희달이 태조 3년(1394년)에 태조의 명을 받아 세운 것으로, 비문은 풍우로 인하여 손상이 많이 되었다.
보각국사는 경기도 사람으로 성은 조씨이며,법명은 혼수이다.
고려 충숙왕 7년에 출생하여 우왕때 국사가 된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에 걸쳐 존경을 받았던 덕이 높은 분이었다.
대사가 돌아가신 후 태조 임금이 슬퍼하며 내린 시호가 보각이고, 탑의 이름은 정혜원 융이라 하였다.
이 비석은 윗 부분의 양면을 접은 간략한 형태로 고려 말기 비석의 형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정혜원 융탑 사자석등(보물 제 656호)
위 치 :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동
조선왕조 태조 3년에 왕명으로 세원진 보각국사비와 보각국사정혜원융탑과 함께있는 것으로 보아 같은 시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추측된다.
석등의 하대석은 희귀한 예로서 경주 남산 천룡사자귀부와 같은 형식으로 한마리의 사자가 앞을 향해 엎드려 있다.
간주석을 비롯하여 화사석 옥개석은 방형으로 고려이후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조형미가 부도와는 수법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바 조선 중기의 것으로 정혜원 융탑이 조성된 후에 세운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보각국사 정혜원 융탑(국보 제 197호)
위 치 :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동
이 부도는 고려말의 고승인 보각국사(1320-1392)의 묘탑이다. 편평한 대지에 잘 다듬어진 장대석으로 1단의 축대를 쌓고 그 중앙에 팔각원당형의 부도를 건립 하였다.
기단부는 복련을 새긴 하대석 과 안상안에 사자상과 운룔문을 새긴 중대석,그리고 앙련을 새긴 상대석으로 이루어졌다.탑신부는 반룡이 감긴 엔타시스의 우주를 조각하였고 그 위에는 창방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각면에는 무기를 든 신장상이 1구씩 양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밑면 처마에 탑신 우주위에 창방머리와 접촉되는 부분이 보머리형으로 이루고 있으며 추녀와 사래를 양각하였고 연화문을 조각하였다.
옥개석의 낙수면은 상단부가 급경사이며 기왓골은 없으나 각 함각마루에 용두를 조각하였다. 옥개석정상에는 복련을 조각하여 상륜부를 받치고 있다. 상륜부는 복발, 보륜,보주가 남아있다.
탑신 우주의 엔타시스와 창방의 조각,옥개석의 보머리형조각, 추녀와 사래의 표현, 지붕 합각부의 용두 조각등은 당시의 목조가구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부도의 앞에는 배례석이 있고 주위에 탑비 와 사자석등이 있다.
목계 반공의사비
가금면 장천리 솔밭에 높이 1.53m 폭 0.65m의 비로써 6.25전란때 반공활동을 하다가 순국한 이선규,권중대,변용출,김용기,홍선식,박삼수의 여섯 애국지사들이 잠든 무덤앞의 한 옆으로 대한노인회 중원군 엄정면 목계회에서 1977.1월 세운비석이다.
이 비석의 위치는 행정구역으로는 가금면 장천리이나 보통 목계 솔밭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이 비석에 적혀있는 사람들은 목계에서 활약하던 사람들이다.
소태면 청룡사지 석종형 부도 & 부도부재석
소태면 오량동의 보각국사 정혜원 융탑과 보각국사비 및 석등과 함께 청룡사지 안에 있는 전형적인 조선 초기의 돌종 모습의 높이 1.7m의 화강암 부도이다.
하대석은 단석1매로 3단의 괴임이 있고 탑신의 윗 부분은 보발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적운당 사리탑이라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다.
석종현 부도 앞에 파손된 채 놓여 있는 부도재로 옥개석,상대석,하대석등이 남아 있고 탑신석이 없어졌다. 부재들이 모두 6각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이하고 구름무늬등이 장식되어 있다.옆에는 다시 사리공이 뚫어져 있는 방형의 돌이다.
청룡사 위전비
소태면 오량동 청룡사 정혜원융탑 남쪽으로 약간 떨어진 거리에 있으며 조선시대에 청룡사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신도들이 기증한 논과 밭의 내역을 적은 높이 1.65m 폭 0.75m 두께 0.23m의 비이다.
비석과 비석을 세운 돌만 있는 모습으로 매우 단조롭다.
소태 오량동에는 허적의 조부인 잠의 신도비도 있습니다. 이 분의 시호를 받는 날 잔치를 벌리는데 궁중의 유악을 가져다 썼다해서 허적이 정승나리에서 쫒겨나고 고향인 소태 오량으로 낙향했다고 합니다.
허잠 신도비
소태면 오량동(청룡)에 있는 비로써 허잠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으로 영의정 허적의 할아버지이며 청백리로 뽑혔었다.
양천 허씨로 시호는 충정이다.
▣ 김윤식 -
▣ 김항용 -
▣ 김윤만 - 감곡, 노은에도 명성황후 관련 유적지가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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