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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旦暮賦(단모부)에 대한 충렬공의 답장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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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4-01-16 19:42 조회1,7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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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之答示。[金方慶]



昨得所寄古賦一篇。以老病未遑酬答。今玆[ ]韻。寄示遯軒。天地高下兮爲經。聖賢往來兮如[ ]。或行或止兮不失時。其出其處兮各以彙。處則山林兮或江湖。出則卿相兮又將帥。之無咎兮在六三。遯之好吉兮當九四。唐高垂衣兮莫不稱。許由洗耳兮亦所美。但復姓命兮忘其聲名。不必
舒兮由乎亂理。先賢後賢兮或同。彼時此時兮何異。今吾聖主兮德如高。適有隱士兮姓其李。立朝廷兮朝廷。還鄕里兮鄕里。道緖不墜兮深於老莊。儒門復開兮比之 泗。旣淸淨兮終其終。何忠義兮始乎始。餐霞服氣兮有眞功。談經禮佛兮無他事。如我功名兮豈君心。如君德行兮是我意。



元貞二年二月日



공(公=김방경)이 보내 준 답서



전에 붙여 준 고부(古賦) 1편을 받았는데,
늙고 병듦으로 해서 미처 답할 겨를이 없었다가,
이제야 화답하여 돈헌(돈=豚밑책바침=軒)에게 부쳐 보인다.
천지(天地)가 높고 낮음이여! 씨줄로 삼고,
성현(聖賢)이 오고 감이여! 날줄과 같도다.
그 나가고 취함이 있음이여, 무리와 더불어 했도다.
벼슬하지 않으면 산림에 있거나, 혹 강호에 있었고
세상에 나가서는 정승도 되고 장수도 되었도다.
박(剝)이 허물이 없음이여 육삼(六三)에 있도다.(1)
돈(돈=豚밑에책바침한글자)의 길하고 좋음이여 구사(九四)에 있도다.(2)
당(唐)의 요(堯)임금이 팔짱만 끼고 다스림이여! 칭송하지 아니함이 없었고,
허유(許由)3)가 귀를 씻음이여 또한 아름답게 여기는 바이다.
오직 성명(性命)만을 회복하려 함이여!
그 명성(名聲)은 의식하지 않으며,
반드시 나가고 물러날 필요가 없음이여,
세상이 어지럽고 세상이 다스려짐으로 말미암았도다.
선현(先賢)과 후현(後賢)이 한 것이 혹 같기도 하니,
그때나 이때가 어찌 다르겠는가.
지금 우리 성주(聖主)께서는 덕은 요(堯)임금과 같고,
마침 은사(隱士)가 있는데 성(姓)은 이(李)씨로다.
조정(朝廷)에 설 만하면 조정에서 벼슬하고,
향리(鄕里)에 돌아갈 만하면 향리에 살았도다.
도통(道通)을 떨어뜨리지 아니하니 노자(老子)·장자(莊子)보다 더 깊고,
유학(儒學)의 문을 다시 열어 줌이여, 수사(洙泗)4)에 비길 만 하도다.
이미 청정함이여, 그 마침을 잘 마쳤고, 어찌 충의를 처음에만 시작하겠는가.
노을을 먹고 기(氣)를 먹음이여! 참다운 공부가 있었고,
경을 말하고 부처에게 예를 말함이여! 다른 일이 없었도다.
나의 공명(功名)같은 것이야 어찌 그대의 마음에 있겠으며
공(公)의 덕행(德行)같은 것은 곧 나의 뜻이로다.



원정(元貞)2년(충렬왕22년=1296년)2월



(1)주역의 박괘 육삼 효의 뜻으로 소인은 음을 버리고 군자는 양을
취하기 때문에 허물이 없다고 하였음
(2)주역 돈괘 구사효의 뜻으로 사욕을 버리는 군자이기 때문에
길하다고 하였음
(3)허유 : 요임금이 허유를 찾아가 천하를 물려 주겠다고 하자
허유가 오늘 별소리를 다 들었다고 하며 귀를 씻었다는 옛일이 있다.
(4) 공자를 말함



윗 글은 이승휴가 지어올린 [단모부]에 대한 답신입니다.



서기 1296년에 쓰신 글이니 춘추 85세에 쓰신 글입니다.




 




▣ 김항용 - 홈에 없는 원문을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윤만 - 그야말로 완전한 한 세트입니다.
▣ 김주회 - 감사합니다. 지금 현재 1월 16일 밤 10시 반, 대구역 구내 인터넷방입니다. 오늘 대구시청에 출장차 내려왔다가 정중 종친님을 불러내서 한 대접 잘 받고 이곳에 와서 11시발 조치원행 기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경상감영공원에도 들려왔는데 1637년이후 경상 관찰사의 송덕비와 선정비 29개를 보고 왔습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쓰신 글씨도 빼어났다고 하는데 할아버지 답신이 적힌 편지를 상상으로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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