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의 주변인물(90)충렬왕-11- 고려 관제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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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4-01-29 21:47 조회1,680회 댓글0건본문
집중탐구 - 고려관제의 격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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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렬왕 원년(1275) 원에서는 고려의 관제가 참월하다 하여 사신을 보내 성(省)ㆍ원(院)ㆍ대(臺)ㆍ부(部)의 관명과 작호(爵號)기 그들의 것과 비슷한 것은 개정하도록 명하였다. 이에 고려는 관제를 개정해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을 합하여 첨의부라 하고 문하시중을 첨의중찬으로 고쳤으며, 상서 6부는 이부ㆍ예부를 합해 전리사(典理司)로 하고 병부를 군부사(君簿司), 호부를 판도사(版圖司), 형부를 전법사(典法司)로 하며 공부는 폐지하여 4사로 축소시켰는데 이때 4사의 장관도 상서에서 판서로 격하해 불려졌다. ▶ 충렬왕 원년의 관제개정은 원의 압력에 의해 할 수 없이 단행된 것이었다. 황제의 상국에 복속된 왕후국(王侯國)으로 참월하다는 이유로 격하시킨 개정이었던 것이다. 충렬왕대 원은 전방사령부로 고려에 정동행성을 설치하였는데 일본정벌을 단념한 후에도 그대로 존속시켜 고려 내정에 관여하였다. 정동행성의 정식명칭은 정동행중서성이었는데 ‘정동’이란 일본정벌을 뜻하는 것이고 ‘행중서성’은 지방 파견관을 뜻하였는데 정동행성으로 약칭되었다. ▶ 충렬왕대에는 원의 간섭으로 관제가 격하되었으나 그것은 상부관서에 한하였고, 고려 정치체제나 구 권력구조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원의 관부라 할 수 있는 정동행성이 고려에 설치되었으나 일반적으로는 형식적 의례적 기구에 불과하였다. |
▣ 김주회 -
▣ 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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