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양민속박물관 및 삼전도비 탐방
페이지 정보
김발용, 김윤식 작성일04-04-06 00:22 조회2,415회 댓글0건본문
<온양민속박물관 및 삼전도비 탐방>
지난 4월 2일 파종회 일로 영환·발용 두 분 대부님과 함께 온양에 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소식을 들은 주회 대부님은 발용 대부님께 꼭 온양민속박물관에 들러 복장 유물인 <영가군부인 발원문>을 친견하라고 당부하시더랍니다. 마침 약속장소도 박물관 주차장으로 정해졌습니다.(<영가군부인 발원문>은 주회 종친께서 최초 발견하여 우리 게시판에 소개한 글이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온양민속박물관 입구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니 안내소에 자원봉사를 하는 해설사가 계셨습니다. <영가군부인 발원문>을 볼 수 있는 방법을 물었더니 학예실장을 만나라고 알려줍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해설사분이 우리 종친인 재순 씨였습니다. 부친 함자는 춘묵 씨라 합니다. 어찌나 반갑던지요. 우선 용무를 본 다음 말씀을 나누기로 하고 학예실장을 찾아갔습니다.
영가군부인 발원문
학예실장(박종민 학예실장, 순천향대 겸임교수 및 성남문화원 연구위원) 방으로 들어서니 뺑 둘러 책꽂이가 서 있고, 고서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습니다. 아, 그런데 도평의공파의 천사(휘 종덕) 할아버지 문집인 <천사집> 10권이 첫눈에 들어옵니다.
우리 일행은 동시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 옆에는 김종직 선생의 <점필재집>이 나란히 쌓여 있었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학예실장께 용건을 밝히니 박물관 수장고가 폐쇄되어 자료 정리를 담당하는 그분도 기껏 10~20분 정도밖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합니다. 맥이 탁 빠집니다.
우리 성의 때문인지 학예실장은 도록 한 권을 꺼내 설명을 해 주십니다. 아쉽지만 도록에 실린 사진을 복사촬영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천사집>을 들춰 봅니다. 보관이 잘 돼서 뽀~얀 한지가 아주 깨끗하고 정갈해서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아마 할아버지 성품도 이러하셨겠지요. 원본을 대하기 어려운지라 조심스레 만져 봅니다. 그 옆의 <점필재집>도요.
도록 촬영을 하는 동안 바로 옆의 책꽂이를 보니 서운관정공파 관련 책자가 눈에 띕니다. 충북대에서 발간한 <壬亂 前後 出土服飾 및 喪禮>(조사보고 제8책)와 <出土遺衣 및 近代服飾論攷>(조사보고 제20책)이었습니다.
이 책자는 경기도 광주시 경수산 인근에 있는 서운관정공파 묘역에서 출토된 의복에 대한 조사 보고서로서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현지 사정상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워 뒤에 관련 자료를 입수하기로 하고 서문을 살펴보았습니다.
“전략 - 현재는 중부고속도로가 이 묘역을 지나가 이를 밀어제쳤으므로, 이 묘역은 그보다 동남으로 300m 정도로 옮겼다. 이 묘역은 지금 곡장을 두르고 정화하였으며, 여기에 허난설헌의 시비가 서 있고, 사적지로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필자는 이 묘역을 사적지로 지정하는 데에 신청인이 되었다.
애초부터 조선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연고지를 드나들언 필자로서 이를 사적지로 지정하는 데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 일에 관여한 것이지만, 항간에서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허난설헌의 남편 김성립도 녹녹한 선비는 아니었다.
안동김씨 족보에는 김성립이 젊어서 기개를 숭상하였고, 임진란에는 선정릉을 수호하기 위하여 능군(陵軍)을 모집하여 항적하다가 전사하였고, 족보에는 의관장(衣冠葬)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번 파묘에 양 무릎 아래가 없는 그의 시신을 발굴하였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의 부(父)가 되는 하당공(荷塘公) 첨(瞻)과 그의 딸도 미이라가 되어 출토되었고, 이들의 유의(遺衣)도 출토되었으니 - 후략”
이 묘역은 중부고속도로 상행선을 지나실 때 조금 주의를 기울이시면 쉽게 찾으실 수 있습니다. 경수산 인근을 지날 때 왼쪽 산중턱에 곡장을 두른 반듯한 묘역입니다.(안사연 제7회 탐방행사 보고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고 이왕 들어왔으니 잠시 짬을 내 박물관을 둘러보았습니다. 제1 전시실로 들어서니 구한말의 후김 관련 자료들이 눈에 띕니다.
김병국 부실 허씨 지석, 김수근 지석, 김수근 부인 신씨 지석 등이 발굴·전시돼 있었습니다. 이외에 타 성씨의 지석들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중 김병효 지석은 청화백자인지 청화분청인지 모르겠지만, 크기가 손바닥만한데 네모반듯한 도편(陶片)에 글자 한 자씩을 적은 것으로 실로 볼 만합니다.
김병효(金秉孝) 지석
김수근(金洙根) 지석
관재(棺材) : 관재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담는 관(內棺) 측면에 부착되었던 목재 장식물로서 순정공주(順正公主 : 1274~? : 고려 충렬왕의 따님)의 관에서 출토된 것이다.
박물관 내부를 주~욱 둘러본 다음 정문으로 와 재순 씨께 같이 점심을 드시자 청하니 조금 전에 요기를 했다며 한사코 사양하십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뜻밖의 반가운 일이라 기념사진을 한 장 찍고 헤어졌습니다.
여행길에 우연히 일가를 만나는 것은 또 하나의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좌로부터 영환. 재순(익). 윤식
서울로 올라온 우리 일행은 ‘2003편람집’ 헌정식 행사가 아직 시간이 남아 인근의 삼전도비를 찾아갔습니다. 예전 한강변에 서 있던 삼전도비는 그야말로 모래밭은 사라지고 손바닥만한 동네 놀이터처럼 변해 있었습니다. 거대한 비석만 아니었다면 전혀 사람들 눈길을 끌지도 못할 것 같습니다.
삼전도비에 대한 내용은 다들 잘 아시고 계시는 내용이라 생략합니다. 전면은 한자, 여진어, 그리고 당시 국제어였던 몽골어로 적혀 있다고 하는데 마모가 심해 글자를 알아보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후면은 한자로 적혀 있는데, 전면보다는 풍화가 덜합니다.
다음 산행 예정지인 남한산성과 관련이 깊어 삼전도비와 좌대 2개를 유심히 살펴봅니다. 삼전도비 옆의 거북 좌대는 비신이 없어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그렇게 봄날 한때를 보내고 헌정식 장소인 대치동 삼성역 인근으로 향합니다.
감사합니다.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몇 자료는 홈에 올리겠습니다.
▣ 김태서 - 잘 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
▣ 김정중 - !!!
▣ 김주회 - 귀한 발걸음을 하셨군요. 감사합니다. 옛 선조님과의 인연을 더하고, 또 새로운 인연도 맺으셨군요
▣ 솔내~~~~ -
▣ 김태영 - 잘 읽었습니다. 영가군부인 발원문이 무슨 내용인지?
▣ 김주회 - <1302년 아미타불 복장유물> 속에 들어 있는 한 가지로 (불제자인) 영가군부인 김씨가 친정, 시댁 분들의 복을 비는 발원문을 만들어 넣은 것 같습니다. 친정 식구로는 김민성, 김효인/송씨부인, 송기, 상락공김씨(=김방경)/박씨부인이 있고, 시댁쪽 식구로는 최문본, 최온/전씨부인이 있습니다. 1992년인가 온양민속발물관에서 <1302년 아미타불 복장유물> 연구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고, 그 결과를 책자로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복장유물이 어느 절에서 발굴되었는지 발굴경위는 밝혀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궁금합니다. 현재 실물은 온양민속박물관 수장고에 있는 것 같습니다.
▣ 김주회 - 본 자료는 대단히 중요한 자료일 수 있습니다. 발원문에 (?어미니)송씨부인, (?외조부)송기 가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영가군부인은 상서공(효인)의 따님일 것 같습니다. 상서공은 1남 방경, 박주수령 강분, 연주수령 권천에 출가한 두 딸이 있는 것으로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고, 족보에는 2남 현경, 3남 지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발원문으로 최문본에게 출가한 따님(영가군부인 김씨)이 더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