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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좌의난(1728년)과 우리가문 (10) --- 김중기 (金重器,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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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5-29 16:45 조회1,5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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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중앙박물관 인명사전

김중기 (金重器)



?∼1735(영조 11). 자는 대기(大器)로서 조선 후기의 무신(武臣)이다.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여러 무직(武職)을 거친 후 숙종 29년(1703) 함경남도 병마절도사사가 되었다가 1706년에 총융사(摠戎使)가 되었다.



그가 총융사로 임명되었을 당시에는 서인(西人)과 남인(南人)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사회적인 혼란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기왕 의존해 오던 남한산성(南漢山城)과 강도(江都)를 중심으로 한 수도(首都) 방어체제보다는 도성(都城)이나 북한산성(北漢山城)을 수축하여 대비하려는 논의가 일어났다.



결국 숙종 37년(1711) 2월 총융사인 그가 직접 왕심(往審)하고 온조구기(溫祚舊基)로 알려진 구성기(舊城基)를 중심으로 산성수축(山城修築)의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민진후(閔鎭厚)를 북한 구관당상(北漢句管堂上)에 임명하고 총융사와 포도대장(捕盜大將)을 겸하고 있던 그로 하여금 포도대장 직을 교체해주고 오로지 북한산성 수축의 감독(監督)을 전담하도록 하되 3군문(軍門)의 재력(財力)을 동원하여 그 해 10월에 일단 축성역(築城役)을 마무리하였다.



그러나 이 일이 끝난 후 12월에 장령(掌令) 홍우녕(洪禹寧)이 왕의 허락없이 북한성대(北漢城臺)에 집을 짓고 군기(軍器)를 조비(措備)한다는 이유로 영남면포(嶺南綿布) 150동(同)을 비국(備局)으로부터 대출(貸出)하여 이를 왜관(倭館)에 전매(轉賣)하여 거만(巨萬)을 식리(殖利)했다는 탄핵을 받기도 했다. 결국 이듬해 10월 병을 앓아 총융사를 사임했다가 1713년 10월 포도대장(捕盜大將)에 임명되었다.



숙종 45년(1719)에는 통제사(統制使)로 나아갔으나 여기서도 그의 복심과 결탁하여 몇 천금(千金)의 재화(財貨)를 출급(出給)하여 헤아릴 수 없는 식리(殖利)를 했다는 탄핵을 받았다. 그러나 숙종이 끝내 받아 들이지 않았다고 하니 무장으로 국왕의 신임을 많이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경종(景宗)이 즉위한 1721년 7월 7일에 다시 관직(官職)으로 돌아와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을 거쳐 북병사(北兵使)로 임명되었으나, 이듬해에 포도대장(捕盜大將)으로 다시 돌아오고, 1722년 10월에는 병조 참판(兵曹參判), 이듬해 2월에는 다시 한성부 좌윤 · 어영대장 · 훈련대장을 역임하고, 영조(英祖) 즉위년에는 다시 포도대장 ·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가 소론파(少論派)로 몰려 삭탈관작되었다.



영조 3년(1727) 노론(老論)이 물러난 정미환국(丁未換局) 때 다시 총융사(摠戎使)로 기용되었다.





이듬해 이인좌(李麟座)의 난(亂)이 일어나자 총융사(摠戎使) 겸 순토사(巡討使)로 임명되었으나, 반란군 주동자의 한 사람인 이유익(李有翼)이 그의 아우의 처남이라 하여 미온적 태도를 취하다가 의금부에 오래도록 구금되었다.



그뒤 석방하려는 주장도 있었으나 감옥의 벽을 뚫고 내왕한 혐의를 받아 처형되었고, 총융사(摠戎使)가 반군(叛軍)과 짝한데 충격을 받은 영조(英祖)는 도성(都城) 수비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 디지털한국학

김중기(金重器)



?∼1735(영조 11). 조선 후기의 무신. 자는 대기(大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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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순토사(巡討使)로 출정의 명령을 받았으나 타고갈 말이 없다는 핑계로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또한 반란 주동자의 한 사람이며 사돈간인 이유익(李有翼)을 숨겨주었다 하여 의금부에 구금되었다. 그뒤 석방의 주장이 있었으나 감옥의 벽을 뚫고 내왕한 혐의를 받아 처형되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景宗實錄, 英祖實錄. 〈朴定子〉







작성자 :김태영 작성일 : 2003/10/24 08:34 (from:211.239.250.199) 조회 : 84

■ 역대 통제사(안김)



안김삼도수군통제사(安金三道水軍統制使)

35대 김응해(金應海) 1646. 3. ~ 1648. 3. 만기.(副使)

43대 김 적(金 적) 1659. 8. ~ 1660. 1. 병으로 사임.(翼元)

63대 김세익(金世翊) 1685. 3. ~ 1686. 6. 병으로 사임.(應海의孫)

71대 김중기(金重器) 1695. 8. ~ 1695. 11. 잡혀감(이인좌의난).(應河曾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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