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의 어머니는 상서공(휘 孝印)의 따님???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4-07-14 07:38 조회1,643회 댓글0건본문
이진(1244-1321, 경주이씨, 이제현의 부)은 忠烈公(휘方慶)과 과갈(瓜葛, ★사위)의 친분(親分)도 있었고, 1300년 9월 충렬공의 장례시 묘지명을 찬하였습니다.
충렬공 묘지명 기록 중에 ---予有瓜葛之分--- 이 있습니다. 과갈(瓜葛)이라 함은 사위를 뜻한다고 합니다. 이진은 충렬공의 사위이었거나 사위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진의 아들 이제현(1287, 1367, 1332년 문영공 김순 배위 양천허씨 묘지명 찬. 익재난고에 수록)이 지은 역옹패설에 보면
1) 1320년에 아버지(=이진, 1244-1321))의 연세는 77세였고, 大夫人대부인(=★, 1251-?)은 70세였다는 기록
2) 조모는 김씨(=★)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진이 충렬공의 과갈(瓜葛, ★사위)이라면 충렬공 2남 김흔장군(1251-1309)과 충렬공 3남 문영공 김순(1258-1321) 사이의 따님일 것이고,
이진이 충렬공 집안과 과갈(瓜葛, ★사위)의 친분이라면, 이진의 부가 충렬공 집안의 사위라고 보고, 이진의 모, 즉 이제현의 조모 김씨(=★)는 상서공(휘 孝印)의 따님일 것입니다.
충렬공 묘지명 기록중 ---予有瓜葛之分---의 ‘有’로 볼때 이진이 충렬공의 사위라기 보다는 충렬공 집안과 사위의 친분이 있다고 생각해 보면, 상서공(휘 孝印)의 따님이 이진의 어머니일 확률이 많은 것 같습니다.
종친 제현의 검증과 판단을 기다립니다.
■ 高麗國上洛公之墓誌
-----
*予有*瓜*葛之分(*나 여 *오이 과 *칡 갈) 且別承知待者 又有嗣子相國之請 謹把筆而銘之曰
-----
大德四年庚子九月 日
前正獻大夫密直司左承旨判秘書寺事文翰學士充史館修撰官知制誥 李 瑨 撰
충렬공 묘지명
-----
나는 과갈(瓜葛, ★사위)의 친분(親分)도 있고, 또 특별(特別)히 알아 주시고 대우(待遇)를 받은 자(者)이며, 또 사자(嗣子)이신 상국(相國=나라의 재상, ?문영공 김순)의 간청(懇請)도 있음으로 해서 삼가 붓을 잡아 명(銘)을 쓰노라.
-----
대덕(大德) 4년(=1300년) 경자(庚子) 9월
전 정헌대부 밀직사 좌승지 판비서시사 문한학사 충사관 수찬관 지제고(前 正獻大夫密直司左承旨判秘書寺事文翰學士充史館修撰官知制誥) 이 진(李 ) 지음(撰)
■ 역옹패설 (이제현 지음. 이상보 옮김, 1999.5 범우사)
p.109
집안의 영화
-----
延祐연우 庚申年경신년(=1320년)에 내(=이제현)가 외람되게도 考試官고시관이 되었다. 그때 돌아가신 아버지(=이진, 1244-1321))의 연세는 77세였고, 大夫人대부인(=★)은 70세로서 모두 건강하셨다.
-----
선군(=이진)은 삼형제였다. 조모인 김씨(=★)는 성격이 엄하여 친히 書史서사를 가르치셨다. 伯父백부와 季父계부는 불행히 일찍 세상을 떠나시고, 선군이 홀로 연세가 八旬팔순에 이르렀다. 子姪자질들을 가르치고 길렀으며, 世傳세전해 온 家業가업을 보전했다. -----
그러므로 閔黙軒민묵헌(*충숙왕 때 문신인 閔漬의 호, 1248-1326) 이 선군을 축하하는 시에 이르기를,
-----
▣ 김항용 - 추론을 같이 연구해보십시다.
▣ 김윤만 - 즐거운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 김발용 - 영가군부인에 이어 안동김문 따님의 또다른 기록입니다. 경주이씨 이진의 행장 및 묘지명을 추적해야 겠습니다.
▣ 솔내 - 새로운 화제가 등장했습니다. 기억하고 찾아보도록하겠습니다.
▣ 김영윤 - 타 성 간의 인척인 경우로 보아 두 집안간이 사돈지간 인것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